[안보칼럼] 광복 81주년 자유를 지켜낸 선열들의 희생과 오늘의 안보
올해는 광복 81주년이 되는 해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은 우리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점이자, 국가의 중요성과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광복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수많은 선열(先烈)의 투쟁과 희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도 잠시, 3년간의 신탁통치와 극심한 국론분열은 물론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6·25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으나, 아직도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광복 81주년을 맞아 오늘날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을 이루는데 밑거름이 된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안보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광복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바친 선열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乙巳勒約)을 통해 우리나라의 국권은 일본으로 완전히 강탈당했다. 이후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빼앗긴 국권 회복을 위해 싸웠다. 이들의 투쟁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국내는 물론 미국과 중국 등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에 거주하는 동포들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의 독립군 활동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일제(日帝)의 무자비한 탄압 하에서도 이들은 굴복하지 않고 오직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걸 바쳤다. 체포와 고문, 투옥, 망명과 박해, 가족과의 이별,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처럼 자신의 안위보다 대한민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신을 다 바쳤다. 진정으로 숭고한 자기희생이고 나라 사랑 그 자체였다.
이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광복을 맞았어도 희생은 멈추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국토분단과 함께 동족상잔(同族相殘)의 6·25전쟁을 겪어야 했다. 수많은 국군과 UN군이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고, 3년여 동안의 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다. 전쟁은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상자는 수백만 명에 이르렀다. 정확한 피해 규모는 조사기관과 집계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6·25전쟁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민간인의 희생과 전쟁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전쟁을 피해 정든 집을 등지고 피란을 가야 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으며 부모를 잃은 고아, 그리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거리를 정처 없이 떠돌아야만 했다.
전쟁은 한반도를 이념과 국토를 갈라놓았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산가족을 만들어냈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가 헤어져야 했고, 다시 만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도 무수히 많으며 아직도 진행 중이다. 물적 피해 역시 막대했다.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와 농촌의 주거시설과 공공시설, 철도·도로·교량·항만 등 사회기반시설이 모두 파괴됐다. 산업시설과 생산기반도 잿더미가 되었다. 전쟁 직후 우리나라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국민은 폐허 위에서 다시 삶을 시작해야만 했다.
폐허에서 선진국의 기적을 이루다!
6·25전쟁이 끝난 1953년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갖춘 국가이자 민주주의와 첨단산업,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로 발전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드문 일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전쟁의 폐허를 딛고 오늘의 선진국을 이루었을까? 그 요인은 다음 네 가지라고 본다.
첫째, 사람에 대한 투자였다. 자원이 부족했던 우리가 희망을 걸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 인적자원이었다. 당면한 난제를 타개할 수 있는 것은 교육임을 알고 부모 세대는 자녀 교육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정부 또한 이러한 국민적 정서를 고려하여 교육 시스템 마련과 교육 저변 확대와 함께 인재를 선발하여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등 인재 양성에 주력했다. 이 전략은 주효(奏效)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산업과 기술 경쟁력을 갖추게 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육을 통한 인재 확보였다고 확신한다.
둘째, 수출 중심의 산업화와 기업의 도전이었다. 대한민국은 좁은 국내시장과 부족한 자원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경공업부터 시작하여 철강, 조선, 자동차, 전자산업으로 산업구조를 고도화했고, 이후 반도체와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으로 경쟁력을 확대했다. 정부의 산업정책과 기업의 투자, 노동자들의 헌신이 맞물리면서 산업화를 고도화할 수 있었다.
셋째, 투철한 근면성과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이었다. 6·25전쟁 이후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강한 열망이었다. 농촌에서는 생활환경 개선에 집중하였고, 도시에서는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산업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기업인들은 불확실한 해외시장에 도전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이러한 개인과 기업의 노력과 헌신이 어우러져 고도의 경제성장과 함께 세계가 놀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넷째, 소프트파워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국민적 관심이 적었던 소프트파워에 문화인과 관련 기업이 꾸준하고 과감한 투자로 오늘의 문화 강국을 이루었다. 지금 세계는 K-팝을 듣고,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영화를 찾고, 웹툰을 읽으며, 한국 음식과 패션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 만들어져 해외에 수출되는 콘텐츠’에 머물지 않는다. 세계인이 일상에서 접하고 소비하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심지어 일부 나라에서는 국정 최고 책임자까지 나서서 K-팝 등 대한민국의 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국가의 자원이 없더라도 우수 인재 양성에 집중하고, 교육과 산업기술을 발전시키며, 세계시장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도전하면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흔들리지 않는 안보태세를 마련하자
광복 81주년을 맞아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 세대들이 걱정하지 않고 선진화된 나라에서 자기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게 확고한 안보태세이다. 북한은 지금도 ‘두 국가론’을 주장하며 휴전선 일대에서 국경화 작업을 하고 있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이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가 이룬 성공의 금자탑을 결코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다음 세 가지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첫째,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다.
둘째, 국가 안보와 국가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셋째, 미래 세대가 세계 어디에서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와 과학기술, 교육과 문화 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konas)
이영석 : 한국의병연구소장,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안보전략연구원 및 논문심사위원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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