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통해본 미-러관계
지난 5월 10일 푸틴 대통령은 2006년도 국정연설문을 발표하였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국회에서 대내외 정책의 기본 방향을 설정, 제시한 것이다. 금년도는 상대적으로 국제경제에서 러시아의 위상, 인구감소의 심각성, 그리고 이례적으로 러시아군의 위상에 초점을 두었다. 발표된 순서대로 주요 내용 일부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러시아 국영석유회사인 ‘가스프롬’이 자산규모 세계 제3위의 기업체로 성장하기까지 국가의 역할이 컸다는 자화자찬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에너지 부문에서 좀 더 기술현대화가 요구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러시아 상품의 국제시장 진출이란 점에서 WTO 가입의 당위성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러시아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되어야 하며, 또한 이 기구와 무관한 다른 어떤 조건이 가입협상에 끼어들어서도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지속적 경제성장에 따른 일말의 자신감을 국민들에게 내비치려 한 것이 아닌가 보여 진다.
다음,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인구감소 문제를 들었다. 현재 1억 5천만 규모의 러시아 인구가 매년 70만 가량씩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 문제가 장차 병력부족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피력하면서 임신, 출산, 육아와 관련된 각종의 구체적 화폐 및 비화폐 지원방안을 제의하고 있다. 최고통치자가 국정연설을 통해 지원금액까지 세세히 논의할 정도로 러시아에 있어 인구감소 현상은 절박한 사안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러시아군과 관련하여 푸틴 대통령은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다. 자신이 집권한 이래 지난 5년 국방비가 매년 증대되어 왔으며 그 결과 상당한 긍정적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강조하였다. 그 징표로 푸틴 대통령은 올해 러시아 전략미사일군이 ‘사일로형 Topol-M 미사일’을, 그리고 미사일군이 ‘이동형 Topol-M 미사일’을 각각 수령하게 된다고 밝혔다. 더불어 Topol-M 체계와 함께 러시아 핵억지력의 기초가 될 ‘Blava 미사일’ 체계가 현재 건조중인 두 대의 핵 잠수함에 탑재될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2020년도를 목적으로 한 군장비 현대화 계획이 예정대로 착수되고 있음을 말했다. 또한 지도만을 펼쳐보던 5년 전과 달리 각군 내 고강도 작전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밝혔다.
미래 구상과 관련하여 푸틴 대통령은 향후 5년 전략 핵전력이 대폭 강화될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러시아의 평화를 담보하는 데 있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신념에 따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러시아는 냉전 중 미국과 군비경쟁을 치렀던 소련의 유산에 의거, 전략 핵전력에 관한 한 지구상 유일하게 미국과의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간주되고 있다. 한편 군조직의 전문화 및 기동화 차원에서 2008년까지는 계약지원병의 비율을 전군의 2/3수준까지 높이는 한편 징병 의무병역기간을 현재의 2년에서 1년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2006년 현재 체첸 주재 군병력이 모두 계약지원병이란 사실에서 보듯 더 이상 징병군을 반테러전에 동원치 않을 것이라 한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보건 및 복지 향상, 그리고 사기를 북돋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무엇이 푸틴 대통령으로 하여금 2006년 국정연설에서 이토록 러시아군의 역량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게 하였을까? 푸틴 대통령은 국제안보를 담보할 책임이 강대국들, 특히 핵무기를 소지하고 정치적, 군사적으로도 강력한 지렛대를 가진 국가들에 있다며 바로 이 점으로 인해 러시아 군의 현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동시에 군이 강할수록 외부로부터의 대러 압력 유혹이 줄어든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강대국, 특히 미국과의 균형 내지는 경쟁의식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04년 재선 성공 이후 정치의 안정화를 기한 위에 경제마저 회복기미를 보이면서 미국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해 적지 않게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왔다. 실제로 지난 2-3년 미러 간에는 반테러리즘과 비확산에 대한 공동의 이해에도 불구하고 이란 및 북한의 핵문제, 중동평화 과정, 러시아 정치의 권위주의화, 중앙아시아내 미군기지 등에 이르기 까지 광범위한 이견 내지 이해 불일치의 요소들이 부쩍 수면으로 떠 올라왔다. 급기야 체니 미부통령은 5월 4일 발트-흑해 지도자 국제포럼에서 푸틴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에너지를 유럽에 대한 정치적 압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푸틴 대통령 스스로 지적하였듯 러시아의 절대 국방비 규모는 미국의 1/25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인구학적 문제마저 심각한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이 경제, 사회적 발전을 희생하면서까지 군비증강에 힘을 쏟던 소련의 실책을 21세기 초, 다시 반복할 것인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또 그렇게 되기 어려운 여러 제약요인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겠다.
정은숙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chunges@sejong.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