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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 노병 故 안종복씨에 도움 손길 이어져

장례식 치룬 후에도 향군회원·독지가 등 조의금 답지
Written by. 김 철   입력 : 2006-09-05 오후 4: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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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서울시청 앞에서 있었던 전시작통권 단독행사 반대 집회에 참가했다 귀갓길에 숨진 안종복(80)씨에 대한 향군회원들의 애도의 손길이 발인이 지난 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향군이 주관한 이날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고향인 강원도 횡성에서 동료 재향군인회원들과 함께 버스로 상경한 고 안종복씨는 집회를 마치고 오후 5시30분쯤 귀갓길에 올랐다가 자신의 집을 10여 km 남겨두고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안타깝게도 숨지고 말았다. 이 소식은 재향군인회 일부 간부들을 제외하고는 발인 날자인 4일에야 신문 보도를 통해 일반 회원들에게 알려졌다.

 박세직(朴世直) 재향군인회장은 3일 안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곧바로 비서실장을 빈소로 보내 조화와 조의금을 전달하며 조문을 했고, 강원도 재향군인회(회장 申吉龍)와 회원, 횡성군 재향군인회(회장 全相奎)와 회원들도 조의금과 조화 등을 전달하며 발인하는 날까지 안씨의 빈소를 지켰다.

 6·25참전유공자회 채명신(蔡命新) 회장도 조화와 조의금을 전달했고, 향군은 고 안종복씨에게 '향군공로휘장'을 추서할 예정이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전국의 향군회원들은 안씨의 사망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조의금이라도 보낼 수 있게 연락처를 알려 달라며 재향군인회 본부에 문의하고 있다. 경남 함양에서 올라와 2일 서울시청앞 집회에 참석했다는 6·25참전용사 조 모씨는 5일 코나스에 전화를 걸어 "전우로써 최소한의 예의를 표해야 되겠다"며 조의금을 전달할 방법을 묻기도 했다.

 또 횡성군 재향군인회에 따르면 타 지역 향군회원들도 안씨 가족을 돕겠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횡성군 재향군인회 김현창 사무국장은 5일 코나스와 통화에서 "신문기사를 본 부산에 사는 독지가 두 분이 어제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며 "안씨를 도울 수 있게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농협 305086-51-128592 횡성군 재향군인회] 계좌번호를 알려줬고 5일 확인해 보니 부산대 철학과 교수 최우원씨와 부산의 독지가 양진국씨 이름으로 각각 10만원씩이 입금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고 안종복씨는 지난달 11일 서울역에서 성우회 등이 주최한 '한미동맹 파괴공작 저지 국민대회'에도 참석해 작통권 단독행사 반대 목소리를 내는 등 평소에도 향군회원으로써, 6·25참전용사로써의 자부심이 대단했고 향군의 일에는 앞장서 나서는 열성을 보여왔다고 김 사무국장은 밝혔다.

 고 안종복씨는 1952년 7월에 군에 입대해 8사단 16연대 3대대에 배속돼 참전했다가 강원도 화천 백암산 전투에서 적군의 포탄으로 온몸에 파편상을 당하는 부상을 입었다. 이 때 등을 뚫고 왼쪽 가슴 쪽으로 들어간 파편은 끝내 제거하지 못한 채 안씨는 50여년의 세월을 고통 속에 살아왔다. 

 안씨는 오래전에 부인과 사별하고 동거녀와 함께 생활보호 대상자로 어렵게 살아왔으며 6·25참전 유공자로 월 6만5천원의 생활비 지원을 받아왔다.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국가유공자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올 10월 국회에서 통과되면 안씨의 경우 '참전유공자'에서 '국가유공자'로 인정돼 예우가 상승되는데, 안타깝게도 혜택을 받지 못하고 타계한 것이다.

 안씨의 아들 범순(54)씨도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몸을 다쳐 장애판정을 받아 생활이 어려운 형편이다.

 횡성군 재향군인회는 안씨를 돕고자 하는 사람은 향군 사무실(033-343-2341)이나 김 사무국장 휴대폰(010-9750-2014)으로 연락해 주길 바라고 있다.

 한편 안씨의 사망 소식을 들은 ID '구국기도'님은 자유게시판에 안씨를 애도하는 시 한편을 올렸다. 이를 소개한다. (konas)

 제목: 전우여 전우여
                                       
- 글쓴이: 구국기도

 삼가 이 시를 안종복 老兵께 바칩니다

 전선의 달밤에
 스러져 가는
 전우들
 그 쏟아지는 선혈들
 속에
 애국 혼 다해
 우뚝 서 포효(咆哮)하는
 전우여, 전우여.
 
 그 한 목숨 바쳐 조국을 지키며
 조국의 자유를 지켜 너희 흘린 피 값을 보상해 주마
 굳게 다짐하고 다짐한 전우여.전우여.
 
 그렇게 맹세한 후
 5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서울 시청 앞의
 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받으신 전우여. 전우여.
 생명을 쏟아 맹세를 지킨 전우여. 전우여.
 
 전우여, 전우여, 전우여.
 
 戰友愛 끓는 가슴 다해
 조국을 위해
 한 알의 밀알로 죽어지고 죽어져,
 백만개 밀알 되어
 서울 시청 앞으로 몰려오게 하는 전우여, 전우여.
 백만 대군의 전우여. 전우여.
 
 조국의 자유를 위해
 붉은 피를 쏟아
 백만 송이 무궁화로 피어날 전우여, 전우여.

 김 철 기자 konasnet@korv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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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이 흐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9-06 오전 1: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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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1.5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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