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령장 전투를 아십니까?
오늘 오전, 경상도 상주 땅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에서는 각계 인사 1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 전사에 찬연히 빛나는 화령장 전투 전승기념 행사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회장 박희모) 주관으로 열린다.화령장은 속리산과 주흘산으로 연결되는 소백산맥 지대를 말하는데 800m 고지와 깊은 계곡으로 형성돼 있다.
또한 보은~상주 간의 25번 도로와 괴산~상주 간의 977번 도로의 접합점에 있기 때문에 소백산맥 방어에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불법 기습남침한 북한 인민군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후 7월 중순에 총력을 기울여 소백산맥 일대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다.
인민군 2군단은 국군의 대비가 없는 공백지대인 977번 도로에 예하 15사단을 투입해 조기에 상주를 점령하고 국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 이전에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직행하려고 했다.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국군 제2군단 예비였던 제17연대 1대대는 7월 17일 저녁 화령장 주변의 상곡리에서 적군과 1차 교전을 했다.
1대대 장병 400여 명은 미리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977번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일자로 된 진지선을 마련하고 매복해 대기하던 중 상곡리에서 목욕을 한 후 석식을 하려고 집결해 있던 적 15사단 48연대에 대해 집중 사격을 가했다. 이때 적 250명을 사살, 30명을 포로로 잡고 박격포 20문 등 다수의 전투장비를 노획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어 7월 21일 새벽에는 국군 제17연대 2대대가 화령장 주변의 동관리에서 적군과 2차 교전을 했다. 국군은 적 15사단 45연대가 접근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한 후 매복해 대기하던 중 적에게 일제히 기습사격을 가해 적 356명 사살, 26명을 포로로 잡고 박격포 16문 등 다수의 전투장비를 노획하는 큰 전과를 연이어 올렸다. 바로 59년 전 오늘의 일이다.
이 공로로 제17연대장(김희준 중령)과 전 장병이 1계급 특진하는 영예를 안았던 반면에 적 15사단의 상주 공격 시도는 무참히 좌절되고 말았다. 결국 화령장 전투는 가장 완벽한 매복 기습작전을 전개해 최소한의 희생으로 적의 주력을 섬멸한 공세적 방어전투의 모범적 전례가 되었고 ‘무적불패 제17연대’ 신화의 출발점이 됐다.
당시 17연대에 파견되어 있던 미 고문관은 “30년 군대생활 중에서 이처럼 통쾌한 전투는 처음 보았다”고 감탄한 바 있다.내년이면 6·25 60주년을 맞는다. 전 국민의 80% 이상인 전후세대들 가운데 대부분은 6·25전쟁을 누가, 언제 일으켰는지도 잘 모르고 있으며 6·25전쟁을 단순히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잊혀진 전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 행사를 주관한 6·25 참전유공자회에 경의를 표하면서 오늘의 이 행사가 우리나라를 이끌고 나갈 젊은 세대들에게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한 목숨 초개와 같이 버렸던 선배전우들의 위국헌신의 애국심을 피부로 느끼게 하고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는 북한의 한반도 적화야욕을 새삼 상기시키는 데 큰 전기가 될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http://kookbang.dema.mil.kr/)
김지욱(성우회 정책홍보실장 jeewo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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