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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신화를 창조한 한국원자력 기술”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 연구소장, "꿈이 있다면 이 땅에 우라늄 농축기술을 확보하는 것"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0-02-04 오후 9: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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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간에 있어서 새롭게 요청되는 원자력협정은 현재와 같이 한미관계가 좋으면 어느 땐가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리라 본다고 한국원자력 연구소장을 지낸 장인순 박사가 희망했다.

 장 박사는 또 원자력은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나서야 된다며 이번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할 수 있게 된 것도 결국 원자력을 잘 아는 이명박 대통령이 나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며 국가원수가 원자로 하나만 팔아도 대통령의 일을 다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 연구소장은 4일 아침 국제외교안보포럼(이사장 김현욱, 전 국회의원)주최 제455차 조찬 강연회에 초청강사로 참석해 지난 1979년 외국에 있다가 국가의 부름을 받고 한국원자력연구소장으로 일하게 되었다며, 자신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핵 물질을 만지고 산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장 박사는 "2006년 10월9일 밤을 결코 잊을 수 없다"며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한 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분노했었다"고 말하고 그러나 "작년 말 아랍에미리트에서의 낭보를 듣고 그렇게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원전 수출계약 타결 당시를 더듬었다.

 그러면서 1979년 국내에 들어와 의욕을 갖고 연구 업무에 매진하려고 했지만 1981년 당시 원자력 연구소를 없애라고 해 여기에 대응하면서 결국 한국에너지 연구소로 개명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를 일본 식민치하에서 우리민족이 일본의 강제에 의해 '창씨개명'을  하게 된 사실에 비유하기도 했다.

 ▲ 4일 아침 가락관광호텔에서 열린 국제외교안보포럼 제455차 조찬 강연회에서 장인순 박사가 강연후 참석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konas.net

 장 박사는 우리나라의 원전 역사를 설명하면서 건국 초기 불과 국민소득 70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 살림살이 속에서도 원자력 건설을 해야한다는 데 관심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국민소득 70달러 시대에 원자역 장학금으로 해외에 유학을 보내고 원전을 건설한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 외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1971년 고리 1호기건설을 시작해 78년에 건설했는데 최초 준비단계로부터 20년만에 1호기가 탄생했는데 인력도, 돈도 없는 나라에서 이렇게 한 것은 박정희 프로젝트 때문이라며 "(박정희 대통령의)미래를 보는 예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이를 기초로 해서 오늘 원자력 강국까지 왔다.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1971년 고리 원전 1호기를 만들 때 1기 건설비용은 당시 국가예산의 4배에 달했지만 지금은 1년예산으로 100기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국력이 커졌다고 말하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장 중요한 우라늄 농축기술은 지금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고 학자다운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내같이 평생 핵 물질을 만지고 산사람에게 꿈이 있다면 이 땅에 우라늄 농축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라면서 "2000년도 소장시절 원자력연구소에서 호기심과 순수한 학문적 동기, 그리고 평화적 목적으로 고난도 기술인 레이저 우라늄 농축 실험이 성공한 봐 있다. 이 실험이 왜곡되게 알려져 국내외에서 큰 논란거리가 되었으며, 거의 일년동안 국내외 언론과 씨름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이어 "그 논란을 지켜보면서‘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으로 평화적인 목적의 연구활동 마저 묶어버린 현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그 실험을 하도록 허락한 사람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있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국민에게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기관장의 고뇌, 과학자들의 호기심과 도전정신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며 "우라늄 농축시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라늄 농축기술만이라도 갖고 싶은 것은 평생 핵 물질과 함께 살아온 핵연료 전문가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그때 온 국민이 우리에게 보내준 성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으며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연구인으로 돌아가 "70년대 이후 이 땅에서 연구개발을 했던 사람들과 기업인들은 청계천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당시 부품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연구개발에 필요한 중요한 부품을 구하기 위해서 청계천 상가를 구석구석 찾아야만 했던 기억들이 있다"며 "청계천 상가가 그 당시 열악했던 부품시장에 가장 중요한 부품 공급처로써, 조국근대화에 큰 기여를 했었기에 조국근대화 공적비 하나쯤 세우면 어떨까"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다음은 이 날 강연한 장인순 박사의 주요 강연록 내용임.(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9holeekva@hanmail.net)

 ▲ 포럼에 참석한 김현욱 이사장을 비롯한 주요 참석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konas.net

                          역사와 신화를 창조한 한국의 원자력 기술

한국 원자력 기술독립국으로 태어나다

2009년 12월 27일 저녁 UAE에서 날아온 '400억불 UAE원전수출계약' 소식에 이 땅에 사는 원자력인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하고 행복했던 날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바로 한국이 원자력 기술식민지에서 원자력 기술 독립국으로 태어난 것을 전 세계에 공표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최초로 원자력발전 기술자립을 주도하고 기획했던 그 당시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인 한필순 박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온 국민이 그분을 기억해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이정오, 김성진 과기처 장관님과 박정기 한국전력 사장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년 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무모하게 원자력기술자립이란 사명감과 열정하나만으로 연구개발을 시작했을 때, 외국 선진국 자료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서 체면도 자존심도 모두 버리고 기술식민지의 과학인으로 기술구걸(?)을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떳떳이 원자력 기술 독립국으로써 세계 원자력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새로운 역사와 신화를 창조한 한국, 이 땅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뿐인가 이에 앞서 2009년 12월 초에는 한국원자력 연구원이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 수출의 길을 열어 놓았다.

5천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Land of morning calm)는 아름다운 산하를 가졌지만, 에너지를 포함한 천연자원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들어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문명에 동승하지 못해 외세의 침략과 조국분단, 그리고 민족상잔이라는 질곡에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허리가 잘린 나라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전쟁 후에,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시장경제를 도입한 대한민국은 우리국민 특유의 부지런함과 끈기, 창의성 그리고 수학, 과학적 잠재력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불 꺼진 대한민국"

얼마나 많은 국민이 "1948년 5월 14일"을 기억할까! 이날은 북한이 6.25 전쟁준비를 위해서 남한에 예고도 없이 송전을 중단해서, 한국은 전기가 없는 암흑의 나라가 된 바로 그 날이다. 북한이 단전하자 미국이 발전함인 일렉트라함(6900kW)을 인천항에, 자코나함(2만kW)을 부산항에 보내 선상에서 발전하여 전기를 공급했다.

그 당시 한국의 사정은 그만큼 절박했었다. 전쟁을 치르면서 남북한은 완전히 초토화되었지만, 57년 후인 2005년 3월 16일에 우리가 북한의 개성공단에 전기를 공급하게 되었다. 단전을 당했던 우리가 북한에 송전을 하게 된 것은 또 하나의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원자력 시대를 열다

배고픔과 가난이 상식으로 통했던 국민소득 80$ 시대에 이승만 대통령이 원자력 연구소를 설립하고 조그마한 연구용 원자로(미국이 건설비 반을 분담)를 건설함으로써 아주 기초적인 원자력 연구개발이 시작되었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이 조국 근대화에 가장 필요한 것이 산업의 꽃인 전기라고 생각하고, 에너지 자원이 없기에 원자력 발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70년에 미국으로부터 턴키로 고리 1호기 원전건설을 결심하였다. 역사상 고리 1호기 건설만큼 모험적이고 위험요소가 많은 사업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소득 200불 시대인 그 당시 돈도 인력도 전무한 상태에서 건설비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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