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야!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2년도 공익근무요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으로 선정된 글임.(편집자 주)
1982년 12월 4일, 테트라아멜리아 증후군 즉, 팔 다리가 없이 태어난 닉 부이치치는 어린 12살의 나이에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주변의 편견 없는 시선으로 성장하여 현재는 전 세계에 희망전도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현재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있다.
“형, 제가 할 수 있어요!”, “형, 저 춤 잘 추죠?” 1년 8개월 동안 유태호라는 장애아동과 생활하면서 태호 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이다. 초등학교 6학년, 고작 13살짜리 장애아동이 내 마음가짐과 그들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처음에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승가원 장애아동 시설을 지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모든 공익근무요원들이 긴장한다는 본인선택 시간에 1지망으로 지원했던 동대문도서관을 떨어진 뒤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남은 자리는 장애 아동 시설, 장애인복지관, 주간 케어 센터 등 절대로 2년 동안 일하기 싫은 사회복지시설들만 남아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지원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승가원 장애아동시설, 이곳에서 나의 소중한 인연의 시작되었다. 4주간의 기초 군사 훈련을 마치고 처음 승가원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풍경에 적지 않게 놀랐다. 다운증후군아이들, 침을 흘리는 뇌 병변 아이들, 혼자서는 거동을 못하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장애아동 들을 보면서 2년간 묶여 있어야 할 곳이 아닌, 2년 동안 내가 최대한 돕고 봉사해야 할 곳으로 나의 인식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처음 태호 라는 아이를 만났을 때 적잖아 당황했다. 작은 몸에 팔이 없고 허벅지가 없으며 발가락이 네 개 밖에 없는 아이. 이때는 몰랐지만 태호는 TV에도 출현을 많이 해 유명한 아이였다.
태호는 자신의 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누구보다도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이다. 어떤 일을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하려고 노력하고, 누구에게나 인사성이 밝으며,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가 태호가 낑낑대면서 하는 일을 도와주려고 할 때면 “제가 할게요!, 도와주지 마세요!”라는 말로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미래에 작곡가가 꿈인 태호는 음악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있으며, 불가능 할 것만 같았던 수영도 자유자재로 하고 심지어 최신가요를 섭렵해 춤까지 굉장히 잘 춘다. 승가원 장애아동 시설의 사회복무요원들의 주 업무 중 하나는 손발이 없는 태호를 위한 손발이 되어주는 것이다. 장애인들을 위한 학교에 다니지 않고 일반학교를 다니는 태호를 위해 학교를 따라가 태호의 학업성취를 위해 수족이 되어 도와주는 것이 사회복무요원의 업무이다.
3개월쯤 이 일을 했을 때 즈음 이었을까, 사회복무요원들의 식사자리에서 우연히 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우리가 태호의 가정교사가 되자는 것이었다. 태호를 일반학생들을 따라가게 만들기 보다는, 일반학생들과 다를 것이 없도록 태호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당시에 사회복무요원들은 신기하게도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다니고 있었던 요원들이 많았던 덕분에 , 공부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 사회복무요원들이었다. 약 70여명의 장애아동들이 함께 하고 있어서 개개인의 학습에 초점을 맞추기 힘든 사회복지시설의 특성상, 태호는 학교수업 외에는 체계적이거나 다른 공부를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각자 자신 있는 분야를 맡아서 태호를 개인 교습해주기로 결정한다. 공과대학에 다니고 있는 후임 형은 수학과 과학을 맡았고, 경영대학에 다니고 있는 형은 국어와 역사를 태호에게 가르치게 되었으며, 영어에 누구보다 자신이 있는 나는 태호의 개인 영어 교습선생님이 되었다. 다른 부분에서는 남들과 다를 것이 없지만 학습능력은 부족해 항상 시험에서 뒤에서 1등만 하던 태호였다.
우리는 일과 후 남은시간 마다 모여서 태호를 위한 공부 계획을 만들었다. 사무실에 있는 큰 화이트보드를 사용해 각자 가르쳐야 할 할당량을 나누었고, 태호의 강점 약점을 분석해 태호에게 적용할 공부 방법을 상의 했다. 상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매일 오후, 하루에 한 시간씩 태호에게 개인 교습을 해주었다. 우리는 태호의 공부를 위해 문제집이나 전과 등의 구입을 시설장님께 요청했고, 태호의 교육을 위해 열정적인 우리의 모습을 본 시설장님은 태호의 문제집이나 전과, 학용품까지 모두 구비해 주셨다.
하지만, 워낙 평소에 공부를 해본 적이 없고 놀기만 좋아하는 태호는 우리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숙제로 내준 부분은 거의 하지 않았으며,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등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루는 도저히 이건 아니겠다 싶어서 태호를 불러 처음으로 태호에게 혼을 내게 되었다. “태호야, 우리는 너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네가 이렇게 노력을 안 하면 어떡하니. 형들이 이렇게 노력하는데...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네이버에 네 이름 쳐봤어 안쳐봤어?” “쳐봤어요...” “사람들이 너를 보고 쓴 글 못 봤어? 많은 사람들이 너를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어, 나도 너를 보면서 배운것이 많고 다른 사람들도 물론 너를 통해 희망을 얻고, 열심히 살고 있단 말야! 이 사람들에게 미안해서라도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공부해야 하지 않겠니?” “네...”. 신기하게도 이렇게 태호를 혼낸 다음부터 태호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우리가 숙제로 내주는 부분은 꼬박 꼬박 전부 해왔고 우리가 전달해주는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태호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분들도 태호의 학업을 위해 열심히 뒷바라지 해주셨다. 이런 태호를 보고 우리는 퇴근시간을 초과해서라도 공부를 도와주었으며, 업무가 많아 태호의 공부를 도와주지 못하는 날에는 보강을 해서라도 태호의 학업을 도와주었다.
이렇게 태호를 가르치기를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ABC도 모르던 태호가 “Do you like playing soccer?” 이란 문장을 학교 외국인 선생님께 물어보게 되고, 5학년이지만 곱셈 나눗셈도 잘 못하던 태호가 5학년 수학 진도를 따라잡게 되었다. 우리의 목표는 중간고사였다. ‘유태호 반 절반 안에 들게 하기.’ 여름방학에는 태호를 도서관에 데려가서 공부를 도와줬으며, 공부에 열을 올린 태호가 먼저 우리에게 도서관에 가자고 말했다. 이러한 태호의 모습에 흐뭇한 우리는 더욱 태호 공부 도움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사회복무요원들은 태호를 위해 평소에 안 읽던 역사책을 읽고 초등학생 학습을 위한 인터넷 까페까지 가입해서 열심히 태호 공부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하고, 공부를 도우던 우리에게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그날이 다가오자 신기하게도 대학입학시험을 보는것처럼 우리가 더 긴장했다.
시험이 끝난후 “태호야, 어떻게 잘 본거 같아?” “잘 모르겠어요...”우리는 결과만을 기다렸고, 기적이 일어났다. 평소에 매번 꼴찌만 하던 태호가 드디어 반 중간정도 성적을 받은 것이었다. 지적수준이 일반 아동들보다는 약간 떨어질 뿐만 아니라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도 있는 태호가 반에서 절반정도의 성적을 받았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태호도 물론 매우 기뻐했고, 태호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 분들도 정말 기뻐하셨으며, 무엇보다 많은 시간 태호를 위해 쓴 시간들이 헛되지 않게 되어 우리 사회복무요원들 또한 무척 기뻤다. 우리가 태호를 가르치는 개인교사였지만, 태호 또한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우리는 태호를 통해 하면 된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얻었으며, 태호 또한 자신감을 얻었다. 최악의 상황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가꾸어 나갈지를 생각 하고 또 노력하는 자세를 배웠으며, 한 개인 안의 빨간 신호등을 파란신호등으로 바꾸는 노력과 열정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년이 지난 현재 태호는 작곡가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닉 부이치치라는 희망 전도사를 만나서 대화하기 위해 영어공부 또한 열심히 하고 있다. 피아노도 열심히 연습하여 독주회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태호의 공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지금은 소집해제를 했던 사회복무요원들은 종종 태호를 보러 승가원장애아동시설을 방문하곤 한다.
우리는 이렇게 태호와 소중한 인연을 만들었으며, 우리가 태호의 스승이 되었던 것만큼 태호도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고, 우리에게 13살의 작은 스승이 되었다.
글을 쓴 나는 소집해제를 2개월 남기고 있지만, 소집해제를 한 이후에도 태호는 내 마음속 한쪽에 항상 존재할 것이고 의미 있는 일을 반드시 성취해 내고 마는 태호에게 배운 많은 것들이 앞으로 닥칠 많은 것들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10년 뒤 훌룡한 작곡가 태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Konas)
유재민(승가원장애아동시설)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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