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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병 롤 모델 수기집〕나는 군사외교관이다

Written by. 이건희   입력 : 2013-01-27 오후 7: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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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2012년 8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등 현역병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에 실린 내용임. 이번 수기집은 실제 사례를 통해 현역병 모집제도의 장점을 소개하고, 입영대상자 스스로 복무 할 군과 복무분야를 선택해서 지원 입영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편집자 주)

 스무 살. 대학교 1학년 새내기로 얼떨떨하게 한 학기를 다 보낼 쯤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막막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군 입대. 친구들도 하나 둘 입영날짜를 정해놓고 훈련소로 가기 전에 다 함께 모여 군대에 대한 걱정에 밤새 이야기를 할 때, 입대 전 그것은 씁쓸함을 안겨주는 주제임에 틀림없다. 나에게도 입대는 걱정 그 자체였다.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영어공부를 하고, 전공이 영어영문학인지라 최대한 전공을 활용해보려고 사방팔방 알아보면서도‘덜 힘든, 조금이라도 편한 방법’을 찾기 급급했다.

 그러던 중 평택 미군기지에서 미국 독립기념일을 맞이하여 부대개방행사가 열렸는데 친구와 함께 구경을 가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미군 군복 위에 성조기 대신 태극기를 붙이고 거수경례하는 군인, 그날 카투사를 알게 된 건 내 인생의 변화의 시작이었다.

 카투사란 주한미군에 증원된 한국 육군으로 한미합동작전관련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이다. 국가에서 인정하는 공인영어성적을 제출하면 신체검사 3급 이내 장병 중 무작위로 선발되는데 한반도 내 미군부대에 배속되어 복무하게 된다.

 나는 용산에 위치한 미군 의무여단 군종참모실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미군 하사와 함께 미군 소령 목사님을 위해 통역 행정업무를 하는 것이 임무였다. 유학이라곤 경험하지도 못한 나에게 24시간 미군과 형제처럼 지내는 것은 크나큰 생활의 변화였다.

 몸집이 큰 것은 이루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식사 및 취침, 훈련을 함께 하며 문화의 벽을 허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미군과 같은 기준으로 체력을 측정하고 같은 위치의 계급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과 후 피나는 체력단련과 더 많은 언어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한 번은 이병 시절에 미 여군 하사 앞에서 기본적인 군사용어를 틀렸다고 된통 혼난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서러웠는지 눈물이 흘렀다. 임무를 잘 수행하면 자유가 보장되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뒤틀리면 엄격하게 책임을 묻는 미군 문화가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일병이 되고 후임들도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할 때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많은 미군들의 모습도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미군들도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전쟁의 위험이 있는 한국으로 파병을 온 안타까운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전입 초기 겪었던 어려움을 이야기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미군들이 한국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보통 미군들끼리는 하지 않는 말뚝 박기나 닭싸움은 미군들과 카투사가 정서적으로 단결할 수 있는 좋은 활동이었다.

 내 일이 아니지만 서로 돕는 것, 음식을 한 그릇에 나누어 먹는 등의 우리 문화 역시 미군들로 하여금 한국에 많은 정을 붙이게 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우리 부대 카투사들은 미군들과 우호활동을 하는 데 모두가 앞장서게 되었다.

 청계천, 인사동, 한옥마을을 구경시켜주고 비빔밥, 라면, 떡볶이를 같이 먹는 일을, 미군들은 주말마다 카투사들과 함께하곤 했다. 그리고 서로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쳐 주며 전우 그 이상의 친구가 되었다.

 나는 이 한국인의‘정’문화가 미래의 글로벌한 다문화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효율과 합리를 중시하는 미국문화와 한국의 ‘정’ 문화와 융합되어 나타나는 극대화된 업무 효율성과 가족같이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 지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군 장교의 비서로 근무하면서 하나의 임무를 맡게 되더라도 그것을‘해결해야 할 일’이 아닌 ‘사람 간의 협력으로 달성할 것’으로 보는 시야를 갖게 되었다.

 상병시절 틈틈이 공부하여 비서1급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이 일이 그동안 나도 몰랐던 나의 적성임을 알게 되었고 전역 이후 계획 수립의 기준이 되었다. 한번은 내가 모시는 장교께서 한미우호활동에 대한 기여로 여단장표창장을 추천하셔서 미군 여단장께 표창장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카투사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2011년 가을에 청계천 등불축제에 데리고 간 미군 부사관이 있었는데 그 미군이 한미우호활동 보고서에 상당한 만족을 표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먼저 손을 내밀고 적극적인 태도로 가족같이 대하는 카투사들의 태도가 한국군의 위상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뿌듯하기 그지없었던 기억이다.

 난 얼마 전 전역을 했고 현재 미국으로 교환학생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원래부터 내 꿈이었던 ‘세계 1등기업의 비서실장’이 되기 위해 심리학과 경영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이다. 입대 전 공인영어성적에 비하면 이제 하고자 하는 제 2전공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한편 근 2년간의 카투사생활 동안 배운 영어를 통해 당당하게 외국인을 대할 수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아직 군 생활을 함께 했던 미군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

 같이 땀 흘리며 산을 오르고, 땡볕 밑에서 하루 종일 트럭 정비를 하던 형제 이상의 친구들을 어떻게 잊겠는가! 또한 어느 나라든지 군사용어만큼 정의가 확실하고 기본적인 단어들은 없다. 영어영문학을 계속하면서, 군 시절에 배운 군사용어가 생활에 얼마나 실용성이 있는지 느끼게 되었다.

 한국어에도‘ 표준어’가 있듯 군사용어는 앞으로 배울 영어의 ‘표준어’로 작용하는, 가치 있는 기준이 될 것이다. 2년간 경험한 영어와 미국문화는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과 해외취업에 현실적인 경험으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군 경험에 대해 물어보는 누구에게든지 군 생활이 짧게 느껴졌다고 말하곤 한다. 한국인이었지만 몰랐던 우리 ‘정’ 문화의 소중함과 어떤 외국의 문화와 결합되어도 그 효율성을 극대화 시키는 그것의 독특함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다문화 사회’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는 미래에는, 말 그대로 다양한 문화를 자국의 문화와 잘 융합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 특별했던 2년간의 경험은 ‘1인자의 조언자’가 되고자 하는 내 꿈을 위한 날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은 적극적인 태도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젊음을 국가에 바치는 고귀한 의무를 넘어서 그 기간 동안 미래를 계획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 곳이 침낭속이라도, 지하 벙커라고 할지라도 모든 순간이 꿈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면서 또한 내 꿈을 새롭게 가질 수 있게 해준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요즘 잘못된 방법으로 입영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특성상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가 기본구조인 이상 최대한 그것을 자신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정치·경제가 그동안 대한민국을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게 한 동안 군대 또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변해왔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청년들이여, 적극적으로 기회를 찾아 젊음을 헌신하자!(Konas)

이건희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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