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병 롤 모델 수기집〕아름다운 꽃이 피기까지는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2012년 8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등 현역병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에 실린 내용임. 이번 수기집은 실제 사례를 통해 현역병 모집제도의 장점을 소개하고, 입영대상자 스스로 복무 할 군과 복무분야를 선택해서 지원 입영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편집자 주)
오늘도 나의 기상 시간은 6시다. 나의 기상은 창밖으로부터 스며들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따사로운 햇살의 기운으로 인함이 아니다. 입대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나의 생체리듬은 늘 나로 하여금 6시에 눈을 뜨게 한다. 나는 2007년 4월 2일에 입대했고 경기도 연천의 전차대대에서 2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입대 전 ‘전역 후에는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리라.’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의학에 관련된 어떠한 현실과 실질적 지식을 기반으로 했다기보다 아픈 이를 치료하며 그로 인해 낫게 될 때 흔히 느끼게 될 영웅적 감성으로 인한 탓이 더 컸던 꿈이었기에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게 하기에 부족했고 목표의식이 결여되다보니 학업에도 역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의무병을 지원하게 된 것도 직접 아픈 환자들을 대해보고 군의관으로 복무하고 있는 의사 분들을 만나봄으로써 막연하기만 한 내 꿈에 확실한 목표를 설정하고 싶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의무병을 지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군 생활의 첫 시작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27대대로 배치 이전 나는 57대대에서 근무 했었다. 당시 소대 선임과의 생각지도 못한 마찰로 선임은 징계를 받게 되었고, 나는 전출을 희망하여 27대대로 오게 된 것이다. 입대 전 가졌던 군 생활에 대한 나름의 기대감은 불미스러운 일로 인한 대대전출의 경험으로 오는 염증, 또 그로 인한 무기력함으로 이른바 ‘관심병사’가 되었다.
대대에선 군 생활 부적응 병사를 돕는 사단 프로그램인 비전캠프를 2회 이상 보냈으며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는 등 하루하루 지친 군 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병사들에게 “사랑한다. 전우야”라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던 내 인생의 멘토 지영하 대대장님은 내가 소문난 게임 실력자였던 것을 알고 게임 대회를 열어 주셨고, 그 대회에서 우승을 한 나에게 포상 휴가를 갈 수 있는 상장과 함께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곤 대대장님께서 내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지금 자네의 직책은 의무병인데 자네가 이렇게 아파하면 어느 누가 우리 대대를 책임지겠느냐! 누가해도 할 일이면 내가 하자, 언제해도 할 일이면 지금 하자, 내가 지금 할 일이면 더 잘하자” 그 날 대대장님의 짧은 훈시는 나로 하여금 남은 복무기간동안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무병이 되자!’라고 입대 전 가졌던 나의 다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기점이 되었고, 이후 나는 무엇인가를 너무 쉽게 얻으려 하진 않았는지 또는 그 욕심에 눈과 마음이 진정한 나를 들여다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더욱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대대장님의 따끔하지만 따뜻했던 그 충고 이후 항상 어둡고 무기력했던 나는 모든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적극적인 병사가 되었다. 그 이후 첫 대대 훈련 중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간이 화장실의 분뇨를 처리하는 일을 내가 먼저 나서서 하게 되었다. 비록 처리과정 중 실수로 인해 주임원사님의 얼굴에 분뇨를 끼얹는 일이 벌어졌지만 조금씩 군 생활에 적응하는 나의 모습에 주임 원사님은 웃으면서 “괜찮다.”라는 말과 함께 몸 전체를 덮어버린 분뇨를 씻기 위해 훈련장을 유유히 떠나셨다.
지금이야 웃으며 글을 쓰고 있지만 그때 당시는 영창 가는 줄 알고 나의 심장은 마치 짝사랑에게 고백할 때 보다 더 크게 요동을 쳤던 것 같다. 어찌되었건 그 이후 대대원들에게 많은 기대와 인정을 받게 되었고 점점 활기를 되찾으며 긍정적인 모습으로 군 생활을 임했다.
이런 나의 성실한 모습을 보고 대대장님은 사랑이 필요한 병사들을 보살피고 올바른 군 생활의 가이드 역할자로서 나에게 상담병이란 보직도 부여했다. 앞선 경험으로 몸이건 마음이건 군대에서 아프면 정말 서럽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나였기에 아픈 병사들이 오면 정말 성심 성의껏 간호하고 상담하며 환자의 환부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치료해주었다.
그렇게 군 생활을 하다 보니 고맙다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았고 덕분에 그 때 환자로 왔던 간부님을 비롯한 많은 병사들이 좋은 인연이 되어 지금은 형, 동생으로 연락하고 만나고 있는데 돌이켜보면 이런 좋은 인연을 만난 것은 군대에서만 받을 수 있는 커다란 축복이었다.
군 복무의 2년 동안 여러 가지 아픈 경험도 겪어 보았지만 분명 그 시간 동안 나는 인내와 끈기를 배웠고 궁극적으로 인생의 목표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이를 통해 나는 한 단계 성숙해질 수 있었고 책임감이 생기고 배려심이 더 커졌으며 인간관계, 공부하는 태도 등등 많은 분야를 배웠다. 부대에서는 군사 훈련을 가르쳐 주는 것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부분까지 병사들에게 신경을 썼다.
특히 영어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나를 비롯한 많은 장병들에게 동아리 시간 때 마다 영어에 능통한 병사들을 강사로 임명하여 영어 수업을 가르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군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병사들에게 타악기를 가르쳤다. 그때 난 타악기 동아리 회장을 맡아 여단 대회에 나가서 8개월 간 준비한 공연을 수백 명의 군 장병들 앞에서 실력을 뽐내며 여단 예하 부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부끄럽지만 내 인생에 있어 난생 처음으로 해본 1등이었다. 지휘관님의 조언으로 시작한 영어는 오늘날 나를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해주는 영어 선생님을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올해에 있을 미국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준비할 수 있는 빛나는 초석이 되었다.
사실 나는 입대 전 간수치가 매우 높아 2번 재검을 받았는데 조금만 더 수치가 높았으면 제2국민역 즉, 면제였다. 그때는 군대 가는 것이 참으로 싫었고 가지 않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방황했던 20살의 나를 이제 와 돌이켜 보니 군대를 가지 않았더라면 분명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을 하자면 힘들다고 꾀부리거나 피하지 말고 본인의 주어진 일에 대해서 항상 솔선수범 하는 습관을 길들이길 바란다. 그 습관으로 인해 나 같은 관심병사도 무사히 전역이란 걸 하고 지금은 어린 새싹들에게 비전의 역할을 하는 선생님이 되었으며 의무병이란 나의 군 복무 특기는 나의 삶을 도전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어 꿈꾸던 의사의 바람을 현실로 바꾸어 주고 있다.
군대란 분명 건강한 인생을 설계하기 위한 연습 기간이라는 것을 대한민국의 한 교직자로서 거두절미하고 말해본다.
지금까지 조언들은 어디선가 한번 씩 들었을 법한 이야기이고 조금은 식상하다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에 입대 하는 것이 시간낭비라 생각하는 청춘들이여 그런 마음가짐보다 ‘군대에서 그게 무엇이든 단 하나라도 배워보자.’라는 사고를 가져 보자!!! 군대의 2년은 인생의 낭비가 절대로 아니다.
조금은 힘겨워 보이지만 그래도 나 자신이 무언가를 느끼고 배운다면 이미 그 한 가지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잡초와는 달리 아름다운 꽃들은 쉽게 피지 않는다. 그대는 아직 뿌리지 않은 씨앗과 같다.
군대란 친구는 가끔 그대에게 거칠게 비도 뿌릴 것이며 때론 뜨거운 햇빛으로 그대를 곤고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이 힘겹고 고될지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음이 그대를 성숙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결국 군 생활이라고 하는 비옥한 거름은 앞으로 열릴 당신의 날들을 환하게 비쳐줄 수 바탕이 되어 그대란 꽃을 필 수 있게 도와 줄 것이다!
위병소를 떠난 지 4년이 지났지만 언젠간 아름다운 꽃이 되어 인생을 살아갈 장병들이 있던 우리부대를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나 예비역 김병장은 이렇게 오늘도 교단에 올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들을 생생하게 추억하며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고 있다.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전우들아!”(Konas)
김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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