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병 롤 모델 수기집〕군대여! 나의 열정을 부탁해!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2012년 8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등 현역병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에 실린 내용임. 이번 수기집은 실제 사례를 통해 현역병 모집제도의 장점을 소개하고, 입영대상자 스스로 복무 할 군과 복무분야를 선택해서 지원 입영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편집자 주)
“국제통상원론 A+, 거시경제학원론 A+... 와.. 너 이번에 우리 과 1등이네. 성적장학금 받겠다! 오늘 한턱 쏴!”드디어 이번 학기 최종 성적이 떴다. 4.5만점에 3.92, 4.20, 4.47... 지난 3학기 동안의 대학 성적이다.
전역 후 내 성적은 한 여름 폭염의 수은주처럼 눈에 띄게 상승했다. 이처럼 전역 후 달라진 나의 대학 생활과 성적을 보고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자 후배들이 가끔 나에게 고민 상담을 하러 오곤 한다.
후배들이 나에게 진로 문제와 대학 성적 때문에 상담을 신청할 때마다 나는 서론과 결론에 반드시 반복하는말이 있다. ‘일단 군대부터 현역으로 신청해라.’ 후배들은 툴툴대며 뻔한 소리를 한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그 말 속에 확실한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왜냐하면 군대를 다녀온 후 나의 삶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대학교 입학 후, 나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은 부모님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었다. 자신의 삶에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던 20살 시절에는 누구나 일탈을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야 말로 매일 술만 마시고 수업도 잘 들어가지 않는 막장 대학생이었다.
아까운 청춘을 흥청망청 써가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뭐? 상환이가 해병대를 들어갔다고? 에이, 무슨.. 걔 뚱뚱해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잖아?” 충격적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고도 비만이었던 친구가 해병대에 들어가고 싶어 열심히 운동을 해서 해병대에 입대했다는 것이다.
군인이신 이모부께서 내가 어렸을 때 보여주셨던 해병대 비디오에 나오는 그 힘든 훈련을 그 뚱뚱한 놈이 받는다니! 뭔가 대단해 보이면서도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친구처럼 ‘인간개조의 용광로’라는 그 곳에서 나의 죽어버린 열정을 살리고 싶었다. 바로 그 사건 이후, 나는 부모님과 상의도 하지 않고 해병대에 지원했다. (물론 후에 알게 되신 부모님은 많이 놀라셔서 계속 입대를 취소하라고 하셨다.)
지원 준비 기간 동안 많은 노력을 했다. 술도 끊고, 운동도 하고, 해병대 면접에서 물어볼 국가안보관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공부하였다. 길고 긴 노력 끝에 나는 부모님과 사회를 뒤로하고 눈물과 함께 해병대에 입대하여 포항 해병훈련단에서 훈련병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가장 강하고, 멋진 해병이 된다! 악! 감사히 먹겠습니다!”훈련병 시절, 가장 즐거운 시간은 밥 먹는 시간과 동기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살던 도시에서 벗어나 훈련단에 있으니 고향과 대학 생활이 그리웠다. 각개 전투, 행군, 전투수영, 목봉훈련 등 수많은 훈련들은 너무 힘들고 고되었다.
그럼에도 고된 훈련병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피 끊는 청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인생에서 언제 또 이리 고된 경험을 해보랴!'라는 생각으로 힘든 시간을 견뎌내었고, 이러한 경험이 결국 내 삶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랜 훈련 끝에 나는 경기도 김포로 실무부대 보병배치를 받게 되었고 이등병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엄격한 위계질서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상명하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곳에서 나는 한없이 작은 소대 막내 이등병이었다. 소대 선임들을 볼 때마다 남자답고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과연 저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한없이 하게 되었다. 당시 나를 많이 아끼셨던 중대장님과 소대 선임들은 내가 대학시절 응원단을 했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어느 날 우리 소대의 최고선임이 나를 따로 부르셨다. “이번에 대대 장기자랑 대회가 있는데 중대를 대표해서 팀을 꾸려서 대회에 나가볼래?”라고 제의하셨다. 사실 나는 이등병이었기 때문에 군대 생활에 적응하기도 벅찬 상황이었다. 하지만 장기자랑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응원해주겠다는 말에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다.
물론 이등병이었던 나 혼자 10명 정도 되는 선임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소대는 분위기가 좋았고 나의 응원단 경험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그만큼 배우고 싶어 하는 열의도 강했다. 결국 선임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간동안 우리 소대를 ‘치어리더’로 만드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이등병이 10명 이상의 소대 선임들을 가르치는 역(?)의 관계가 성립 된 것이다.
“노래 처음부터 다시 틀고 해보겠습니다!”, “ 팔 더 높이 올리셔야 합니다!”, “혼자 틀리셨습니다!”이렇게 버르장머리 없는 후임이 또 어디 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절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 사건, 후임이 선임들을 가르치는 기이했던 기억에 대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피나는 노력 끝에 2주 동안의 스파르타 교육을 마무리 지었다.
다음날 대대 장기자랑 대회가 시작되었다. 다른 중대들의 쟁쟁한 무대가 끝나고 우리 중대의 차례가 되었다. 치어리더의 무대가 시작되자, 앞에 앉아계신 대대장님과 모든 중대 간부님이 중심에 서있는 나를 쳐다보셨다. 긴장감 속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대학응원단 대표곡 중 하나인‘그대에게’였다. 노래가 시작되고, 이등병인 내가 대대 총원이 보고 있는 곳에서 좌우로 진두지휘하며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모든 힘을 바쳐 무대를 뛰었다.
공연을 끝낸 뒤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았고 그 결과 우리 중대는 대대 장기자랑대회에서 1등인 최우수상을 받아 3박 4일의 휴가를 받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군 생활 동안 자신감을 가지고 무엇이든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나의 군 생활도 차츰 시간이 흘러갔다. 영원히 막내 같았던 나에게도 드디어 후임들이 생겼다. 대학 생활 때 소심했던 나는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후임들을 받으면서 점차 단체생활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고 아랫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계급이 오르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배웠다. 또한 사회에서는 다루어보지 않았던 다양한 운동기구와 장비들을 능수능란하게 만지면서 점차 남자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누구나 군 생활을 하면서 여러 번의 위기가 찾아온다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군 생활동안에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을 경험했다. 당시 두 사건이 발발했던 지역은 해병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역이었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연평도 포격사건은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나에게는 큰 고비였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더욱 믿고 끈끈해지는‘전우애’를 느끼게 되었고, 지금도 전우와 만나 군대 시절을 이야기 하면서 당시의 사건들을 떠올리고는 한다. 전역한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나는 전역 전날 서해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전역 후에 사회로 나올 때 두 가지 마음을 절대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 ‘모든 것에 늘 감사하자’와 ‘이등병처럼 살자’라는 마음이었다.
내가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늘 지켜봐주고 응원해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이 컸다. 뿐만 아니라 내가 군대에 와 있는 동안에도 날 잊지 않고 전역 후 사회에 나와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 주변사람들에게 늘 감사한다.
또한 이등병 시절처럼 항상 당당하고 뭐든 도맡아 열심히 하는 마음가짐으로 행동하자고 생각했다. 이등병의 부지런함과 빠릿빠릿함을 갖춘다면 사회에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이승언’이라는 사람은 입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입대 이전의 나는 열정이 죽은 청춘이었다면, 입대 이후의 나는 열정을 가진 대한민국의 건아다. 전역 후 지금까지 학교에서 성실한 장학생으로, 수도권연합동아리 기장으로, 각종대회의 입상자로 입지를 세웠다.
하지만 나의 청춘은 이제 시작이다. 나의 인생, 100년을 산다면, 2%의 부족함을 군대를 통해 채웠다! 덕분에 나의 98년, 98%를 힘차게 전진할 수 있으리라!(Konas)
이승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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