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병 롤 모델 수기집〕입대후 추억을 쌓고 제대 후 경력을 쌓다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2012년 8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등 현역병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에 실린 내용임. 이번 수기집은 실제 사례를 통해 현역병 모집제도의 장점을 소개하고, 입영대상자 스스로 복무 할 군과 복무분야를 선택해서 지원 입영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편집자 주)
나는 군대 가기 싫었다. 지겹도록 갇혀만 있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대학생활을 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자유로움’ 자체를 뒤로 한 채 다시 갇혀야 할 군 입대를 해야 한다는 것은 그 당시 나에게 상당한 괴로움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강한 청년이라면 국방의 의무는 지켜야 하기에 나는 신체검사를 받았다. 나쁜 시력 때문에 신체등급 3급으로 판정되었다. 단지 시력 때문에 나의 건강한 몸과 정신이 1급이 아닌 3급이라는 판정에 나는 자존심이 구겨졌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이왕 군대 가는 거 해병대 자원입대하기로 결심했다.
해병대 1차, 2차 시험을 합격 한 후 입대하기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작별여행을 떠났을 때, 나는 불행하게도 집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 교통사고가 발생해 턱이 두 조각으로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나는 기절하여 응급실에 실려 갔고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걱정되는 것이 해병대 입대였다.
아버님 말씀으로는 나의 턱 상태로는 해병대에서 무사히 훈련을 마칠 수 없으며 의사선생님들 또 한 쉽게 다시 다칠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다. 친구들의 말에 따라 다시 재검을 받고 4급을 판정받아 입대를 피해볼까 했지만 군대를 다녀오신 아버님의 자존심과 남자로서의 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재검을 받지 않고 입대를 결정하였다.
턱 수술을 마치자마자 제일 빠르게 갈 수 있는 육군으로 지원하여 나는 2009년 2월 24일 306보충대로 갔다. 3일이 지난 후 내가 배정받은 곳은 바로 26사단이며 일반물자 저장관리병의 임무를 부여 받았다.
보수대대에 자대배치 받아 나는 1종 창고와 부식 창고를 동시에 관리하는 창고관리병사가 되었다. 처음 생활관에 들어가고, 나의 사수는 1종은 의식주 중 식(食) 먹을 것이라며 많이 먹을 수 있고 좋은 업무라며 1종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 정도 부대 적응기간을 마친 후 이제 나는 본격적으로 1종창고와 부식창고에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1종과 부식의 차이는 쉽게 말해 1종은 밥, 음료, 라면, 건빵 등과 같이 주를 이루는 음식이라면 부식은 김치, 고기, 생선 등과 같은 반찬이다. 하지만 선임의 말을 듣고 편할 것만 같았던 나의 생각과는 달리 처음 1종 창고를 들어가는 순간 그 충격과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창고의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컸으며 대형마트 물류창고를 본 듯 했다. 거대한 지게차가 이리저리 물건을 옮기고 있었으며, 병사들은 쉴 틈 없이 땀 흘리며 물건을 자리배치와 정리정돈하고 있었다. 우리의 업무는 군납업체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받아 창고에 보관한 후, 사단의 관할부대들이 직접 우리 부대로 수령하러 올 때 이들에게 정해진 양을 나눠주고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알맞게 가져가도록 감독한 후 우리는 창고를 재정리하고 남은 재고량 확인을 해야 한다. 부식창고는 1종 업무와 달리 일주일에 세 번 동이 틀 새벽에 업무를 한다. 농협, 축협, 수협 등 여러 업체로부터 그 날 새벽 납품을 받아 그 날 바로 모두 관할부대에게 나눠주고 멀리 전방에 있는 부대에는 우리가 직접 실어서 가져다 줘야한다.
나는 군대오기 전에 막노동도 해보고, 서빙, 편의점 등의 아르바이트를 해봤다. 그나마 편의점에서 재고파악과 진열할 때 선입선출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어 조금 수월했던 점은 있었지만 1종 창고와 편의점의 재고량의 차이는 엄청나게 차이 났기 때문에 버겁고 어려웠다.
또한 우리 창고병들은 물건을 이곳저곳 부대에 나눠주기도 하고 1종만 담당하는 큰 부대에서 대량 실어오는 업무도 있어 트럭에 최대한 꽉 차도록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해 적재하는 노하우 또한 중요했는데, 이 실력이 많이 부족하여 이등병 때는 선임들에게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실력은 쑥쑥 늘어만 갔고 나중에 부사수를 받아 적재방법을 교육시킬 때 그 기분은 묘하면서도 짜릿하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열심히 창고만을 지켰던 긴 시간이 지나 2010년 12월 30일, 나는 무사히 건강하게 제대를 했다. 나는 힘든 과정에서 입대한 만큼 많은 것을 배웠다.
첫째, 누구나 군에서 배워가는 인내심,
둘째, 상관을 대하는 태도와 아랫사람을 관리 통솔하는 능력,
마지막으로 창고병만의 실력인 누구보다 빠른 재고량 파악과 적재능력이다.
첫째, 둘째는 제대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배울 수 있겠지만 셋째는 남들과 달리 내가 얻은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제대 한 후 나는 복학하기 전 약 3개월 동안 시간이 비어 학업과 함께 대형마트 물류창고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하기 위한 면접시간에서 대형마트 담당관은 내가 군대에서 창고관리를 하다가 갓 제대했다는 이유와 군필자라는 점이 부각되어 다른 지원자들을 제치고 10분 만에 나를 채용하였고 그 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다.
역시 군필자는 특히 아르바이트 지원 때 우대받는다는 것을 느꼈다. 담당관님은 특히 나의 창고 공간 활용 능력에 상당히 만족해 하셨다. 군 시절 1종 창고와 다를 것이 거의 없었기에 같이 일하는 형들과 직원들에게 ‘에이스’라는 호칭을 얻었다.
창고병으로 사회에 나와 이렇게 인정받을 줄 몰랐기에 엄청난 뿌듯함과 자신감이 충만하여 인정받으며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참고로 나는 군 시절에 입대하자마자 매달마다 후임을 받았고 일병 때부터 나는 두 번째로 높은 선임이 되었다. 쉽게 말해 군번이 매우 잘 풀렸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즉 나는 현재 경영학과를 재학 중인데 제대하고 복학을 하니 우리 과의 후배들은 물론 동아리의 후배들이 엄청나게 늘어나 있었다. 입대하기 전 1학년 때는 그저 선배말만 듣고 막내로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바빴으나 제대하고 나니 후배들을 관리하고 동아리 멤버들을 통솔하기 바빴다.
나는 아직 취직을 하지 않았고 학생이기에 기업의 인사과처럼 인재를 발굴하고 평가하는 단계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나의 사람경영능력은 자신 할 수 있다. 나는 군 시절 후임에게 욕설을 하거나 가혹행위를 가하지 않았다. 후임이 뭔가 잘못했을 때 말로 뭐라 하기 보다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선임으로서 내가 모범을 보였다.
그럼 후임들은 자동으로 선임이 모범적으로 하기에 이를 보고 배워 따라하게 된다. 나는 후임을 빨리, 많이 받아서 그런지 학교후배들을 통제하는 능력은 물론 이들이 동아리를 좋아하게 하고, 선배를 잘 따르게 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에 자신 있었다.
이 자신감으로 나는 현재 동아리 회장으로 활동 중이며, 다음 학기에 복학하는데 경영학과 회장으로도 나의 선배들과 교수님들께 추천을 받은 상태다. 이는 결국 나중에 취직하기 위한 하나의 스펙으로 작용한다. 사람을 경영한다는 것, 이 능력은 군대로부터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입대를 하게 될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생각의 차이에서 인생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군대는 절대 시간 낭비하는 곳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 중요시하는 스펙을 키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군 생활을 한다면, 남들 가는 유학이나 해외여행보다 더욱더 얻는 것이 많은 시간, 값진 시간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면 좋겠다.(Konas)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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