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민들의 의식구조 변화
1990년대 이후 20여 년간 북한사회에서는 뚜렷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북한주민의 의식구조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에 기반을 둔 집단주의적 가치관을 중요시하며, 정치사상교육을 통해 부단히 주입, 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정치차원의 공식적 가치지향과 달리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면 뇌물 수수, 물자 유용 등의 부정부패로부터 절취와 강도, 암거래 등의 생계형 범죄 행위들이다.
아울러 국경지대로부터의 ‘황색바람(자본주의 문화)’의 확산이나 도박과 개인장사와 같은 비 사회주의적 행위도 만연하고 있다. 극도의 폐쇄적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집단이고 획일적인 사회화 과정에 대한 주민들의 심리적 압박과 염증이 가치관 변화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집단주의적 가치관 퇴조와 개인주의적 가치관 발달은 1990년대 이후 북한이 직면한 제반 요인으로부터 기인된다. 무엇보다도 식량난을 비롯한 경제사정의 악화와 지속, 부분적 체제 개방에 따른 외부 사조 및 문물의 침투 등이다. 물질적 결핍과 생활고는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개인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고, 물질적 가치와 경제적 풍요를 중요시하는 개인 중심적 가치관을 갖게 하였다.
이 같은 가치관의 변화는 부분적이나마 체제개방으로 인한 외부 사조 및 문물의 유입으로 인해 확산된 것이다.
북한의 경제난은 식량난·에너지난·생필품난·외화난 등 4가지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북한 주민의 가치관 변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 식량난이다. 식량난으로 인한 사회적 파급효과는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존 사회질서의 해체와 주민동요의 증대이다. 식량 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각종 사회의 일탈행위 및 가족 해체 현상이 급증했다. 사상적 해이와 자본주의 문화 가치관 형성 등의 현상도 현저하게 나타났다.
일부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시장통제와 단속에 대해 “배급도 안주는데 당신들이 자꾸 통제를 하면 우리는 뭘 먹고 살란 말이냐. 당신들이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겠느냐?” 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 환멸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식량 구입을 위한 주민 이동의 급증으로 주민 상호 간 정보유통의 증가이다. 식량구입과 장사를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유동인구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이들에 의한 대외 정보의 유입도 빈번해 졌다. 제한적이지만 북·중 국경 일대에서의 중국 상인들과 중국에 친척을 둔 주민들의 빈번한 출입이 의식 변화의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식량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친척방문을 목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일부 주민들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북한의 현실에 대한 회의가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대북식량지원 등과 관련한 남한 및 국제기구 관계자들의 잦은 방북도 북한 주민의 의식변화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부유한 바깥세상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정심을 동시에 갖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식량난이 초래한 공식 배급체계의 붕괴와 시장의 활성화는 주민들이 부분적으로나마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적 사고와 시장경제의 원리를 체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2년의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2003년도의 ‘시장자유화 조치’로 각종 전자제품, 공산품, 생필품, 농산품 등을 거래하는 ‘종합시장’이 전국 각지 300여 곳에 설치되어 운용 중이다. 그 중에서 40여 개 시장이 평양시에서 운영되고 있다.
초보적이고 단편적인 시장제도의 도입으로 말미암아 북한 주민들의 시장 의존도는 한층 높아졌다. 시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종래의 집단성이 악화되는 대신 개인적 성향이 강화되었다.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바탕으로 한 수동적 의식이 악화되는 대신 자신의 능력과 수단에 의존하는 능동적 의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의 중앙집권적 통제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최근의 북한주민들은 ‘자력갱생’이라는 당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집단주의에 의존하기 보다는 능동적이고 개별적으로 식량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체제의 부분 개방에 따른 외부 사조와 외부 문물의 침투도 북한 주민들의 사상적 동요와 가치관 변화의 주요 계기가 되고 있다. 1980년대 말 이후 귀국한 러시아 벌목공이나 재일 교포, 중국 조선족, 국경 밀수꾼, 각급 기관의 외화벌이 일꾼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입되고 있는 외부사회에 대한 정보로 인해 주민들 사이에는 북한의 사회주의와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청소년 계층에서는 자본주의 ‘황색 바람’에 빠르게 적응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 정권은 정권 수립 이래 청소년들이 장차 북한을 이끌어 나갈 차세대 후비대 라는 개념하에 그들에 대한 교육교양사업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진행해 왔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서구 자본주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청소년들의 사상적 이완은 물론, 가치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 이라는 체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서방 관계개선을 추구했고, 그 결과 서구 자본주의 사조 및 문물이 유입되면서 청소년들의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한 탈냉전의 여파로 인해 가장 민감한 시기에 청소년들이 가치관의 동요를 겪었던 것이다.
당시 경제상황의 악화로 인한 물질적 결핍과 가중되는 생활고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사상과 정치보다는 돈과 물질적 가치, 사회와 집단에 대한 헌신보다는 자신과 가족의 생계유지를 중요시하는 물질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한 것이다.
북한 청소년들 사이에 남한 대중가요와 디스코 음악 등 서구문화가 유행하고,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 등 외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서구문화와 함께 한류의 영향도 컸다. 그 결과 점차 자유주의 경향이 확산되고, 이로 인해 사상적 해이 및 혁명성 약화, 집단적 조직생활에서 일탈하는 행위가 증가하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와서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청소년들의 사상적 이완 현상과 무사안일 풍조, 개인주의적 생활 태도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사상의 해이현상은 혁명의식 악화와 노동기피 풍조를 가져왔다.
새로운 것에 민감한 청소년들이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가지는 현상에 대해 북한 당국이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당국의 지시에 따라 ‘비사회주의 그루빠’ 등 각종 ‘그루빠’를 조직하여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 파견하여 주민들과 청소년들에 대한 사상검토 사업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소년단과 청년동맹과 같은 청소년조직도 활용하여 청소년들이 자본주의 ‘황색 바람’에 물들지 못하도록 그들의 생활을 통제·감시하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북한 당국의 청소년들을 ‘주체사상의 가장 열렬한 신봉자, 옹호자’이며 ‘당의 믿음직한 전투부대, 혁명의 계승자, 당의 근위대 결사대’라고 선전한다. 청소년들은 조국의 미래이며 앞으로 국가와 사회를 담당할 주역이라고 추켜세운다. 그러면서 당과 수령에게 충실한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가’로 만들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사상교양사업이라는 미명하에 세뇌교육을 실시한다.
그러나 북한 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청소년들의 사상 해이 현상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북한은 청소년들이 사상적 해이와 일탈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청년 돌격대’를 조직하여 각종 건설장에 투입하는가 하면 ‘조직생활 참가 정형 도표’를 작성하여 청소년들을 집단적으로 집중 관리함으로써 청소년 조직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더욱 철저히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가요·영화·소설 등 대중문화에 서정성과 오락성, 대중성을 가미함으로써 청소년들이 ‘부르조아 날라리풍’에 현혹되지 않도록 계도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휘파람’, ‘도시처녀 시집와요’, ‘여성은 꽃이라네’ 등과 같은 생활가요와 대중가요의 창작과 보급이 많아졌다.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오락성이 강화되었다. 때로는 남녀 간 애정관계를 다룬 드라마를 방영하거나, 남녀관계를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등의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 당국의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서구 자본주의 생활양식이 청소년들에게 확산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북한 당국의 통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을 포함한 북한 주민들의 사상적 일탈 행위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성과 계속되는 경제난은 민심 이반을 가속화 할 수밖에 없다. “당에 정책이 있으면, 주민에게는 대책이 있다”는 말처럼 변호하의 물결을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김정은 정권이 해야 할 일은 소수 특권층 1%를 위한 전시용 평양건설이 아니다. 체제 생존을 보장한다는 미명하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붓는 핵과 미사일 개발은 더욱 아니다. 변화하는 주민 의식을 포용하여 제도와 규제를 푸는 것이다.
실현 불가능한 핵 무력 건설과 경제건설 병진 노선을 고집한 채 공개처형 등으로 주민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거역하는 자멸의 길임을 알아야 한다.
최정현 (前 북한군 상위)
* 출처 : 월간 자유 4월호









![[안보칼럼] 강한 국군이 곧 평화의 조건이다](/img_data/article/260930/260930_6303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