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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군 2018 국토대장정 소감문①] 나의 유일무이한 7일간의 일지

Written by. 이선민   입력 : 2018-08-16 오후 1: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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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향군인회는 6·25전쟁 68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선발된 81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11회 ‘대학생 휴전선․전적지 국토대장정’을 마쳤습니다.
6월 25일부터 6박7일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동해 통일전망대까지 총 618km를 횡단한 이들의 체험수기 공모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3편(이선민 경희대 1년, 이다운 경북전문대 2년, 박주희 동아대 2년)을 시리즈로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국토 대장정은 나의 대학생활 중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항상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지금이 아니면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더 이상 도전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에 들어오면 고민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환기시킬 만한 일이 필요하기도 했다. 마침 좋은 기회로 향군 국토대장정을 알게 되어 참여할 수 있었고, 어디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의 내용은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7일간의 기록이다.

 호국정신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 전적지 답사

 향군 대학생 휴전선.전적지답사 국토대장정이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열린 행사이기 때문인지 코스는 분단의 아픔과 관련된 장소들로 짜여 있었다. 현충원부터 시작해서 통일전망대, DMZ 박물관까지...

 대부분은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각 장소마다 누군가의 희생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모든 곳이 의미가 있는 장소였지만 나에게 직접적으로 그 의미가 와 닿은 곳은 현충원, 천안함, 월정리역 등이다.

 우리의 첫 번째 일정은 한국전쟁 발발 68주년을 맞아 열린 국가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잠실 실내체육관의 그라운드석에는 참전용사들로 가득 차고 2층 좌석도 절반 이상 차는 모습을 보니 어색했다. 이렇게 많은 수의 국가 유공자 분들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행사를 보는 내내 가슴 한편이 먹먹했다. 책상공부에서는, 학교 대신 전쟁터에 나온 여군들이나 지게를 지고 물자를 운반하던 민간인들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기에 처음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

 행사가 끝난 자리에서 국토대장정 출정식을 마치고 첫 번째 일정으로 현충원을 방문하였는데 그날이 6.25 상기 기념일로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인지 분위기는 더욱 엄숙하고 정적이었다. 잠시 동안의 묵념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큰 비석들이 여러 개 있었다. 희생자들 중 시신도 없는, 그러니까 실종상태이나 사망으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시신은 있으나 훼손이 심각하여 신원 파악이 어려운 사람들 등을 합쳐 약 십만여 명이 그곳에 잠들어 계셨다. 해설자 분께서는 자유와 평화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이렇게 국가 안보에 대한 큰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것은 70여 년 전에 전쟁터로 뛰어든 분들을 비롯하여 여러 크고 작은 희생들 덕택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해군 2함대에도 방문했는데 그곳은 실제 천안함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었다. 반으로 잘려나간 단면에는 전선들이 뒤엉켜 있었고 폭탄을 맞은 곳은 아예 찌그러져서 뼈대가 다 드러나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안보가 많이 강화되어서 제2의 천안함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해설자 분께서 설명해 주셨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해가 2010년,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인데 해설을 들으며 학교에서 장례식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며 묵념도 했던 기억이 났다. 그 현장에 직접 와보니 생각보다 너무나도 참혹해서 감히 그 배에 탑승했던 분들의 고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둘째 날에 월정리 역을 방문했다. 최근에 학교에서 DMZ 관련 프로젝트를 하면서 철원 안보관광 프로그램에 월정리 역이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직접 방문하게 되어서 좋았다. 역을 처음 보았을 때는 철도와 낡은 기차만 있고 아무것도 없기에 당황했었다. 하지만 북과 가장 가까운 마지막 열차역이라는 해설을 듣고 나니 올해 있었던 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회담이 떠오르면서 어쩌면 이 역의 열차가 다시 운행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짜릿했다.

 굳이 특정한 장소가 아니더라도 민통선 안쪽 길들도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길 중간 중간에는 지뢰를 주의하라는 문구가 붙어있었고 포탄이나 총알을 맞은 듯한 형상을 한 건물도 여럿 있었다.

 군인들이 출입을 통제하는 모습까지도 60년대의 상황과 현재를 잇는 가교와도 같아서 잠시나마 당시의 모습을, 그 고통을 공유할 수 있었으며,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적지에 방문할 때마다 묵념하는 것밖에 없었지만 나라를 위한 고귀한 희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이외에 태풍전망대 및 DMZ 전망대, 노동당사, 필리핀군 참전비 등에도 방문했는데 책이나 인터넷 만으로만 보아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용을 직접 현장에서 해설가 및 스태프 분들께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셔서 이해가 쏙쏙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하는 말을 전하고 싶다.

고생한 만큼 값졌던 행군

 둘째 날부터 대원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 날이 처음으로 걷는 날이었는데 출발하기 전부터 비가 와서 햇볕이 없으니 시원하게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힘들었다. 굳은 날씨 덕분에 우비를 입고 걸었는데 걸리적거리기도 했고 자꾸만 빗물이 옷에 스며들어 찜찜했다.

 걸을 때마다 철푸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진흙이 하반신에 튀었고 빗물 때문에 생긴 물웅덩이에 발이 안 보일 때마다 잘못 딛는 건 아닐지 걱정도 많이 했다. 그리고 평소에는 많이 걸어봤자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사이 동안만 걸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걷는 것은 처음이었다. 거기에 무거운 가방까지...

 궂은 날씨와 저질 체력이 합쳐져서 중간에 발목에 힘이 잠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내 눈에는 힘차게 걷는 대원들과 옆에서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스태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나에게 내 자신에 대한 승부욕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열외 없이 목적지인 6사단 신교대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인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왼쪽 발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었다. 단순하게 발이 삔 줄 알았는데 의료팀의 도움을 받아도 전혀 나아지지가 않았다.

 다른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싫기도 했고 내 스스로와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음날 억지로라도 걸어보려고 했는데 조금만 걸어도 욱신거려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셋째 날과 넷째 날에는 차를 타고 다녔다.

 함께 할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과 나와의 싸움에서 진 것에 대한 분노, 신경 써주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창피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뒤섞여 폭풍처럼 내 마음속에서 휘몰아쳤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웠던 것이지만 말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그 당시의 나는 그저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일정 중간에 병원에 다녀왔는데 “무리했기에 염증이 생긴 것이니 소염제를 먹으면 좋아질 것이다”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안심했다. 약을 처방 받은 날과 다음날 아침까지 약을 먹고 나니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그래서 다섯째 날이 마지막으로 걷는 날이었는데 이마저도 걷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가방도 메지 않고 최대한 가벼운 옷차림으로 7시간의 행군에 참여했다. 다행스럽게도 국토대장정이 끝나고 병원 치료로 이제 통증은 사라졌다. 나처럼 눈에 띄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다들 아픔을 참아가며 걸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자축의 의미를 담아 박수를 쳐주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 토닥토닥.

 특별했던 군부대에서의 생활

 이번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지만 가장 특별했던 경험은 군부대 내에서 생활한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데다가 장래 희망이 군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서 군대에 발 들일 일이 평생 없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동안 군대란 나에겐 미지의 세계임과 동시에 닿을 수 없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 부대에 도착하였을 때 너무너무 신기했다. 눈앞에는 TV에서만 보던 훈련하는 군인들의 모습과 관물대, 군용모포 등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사진도 여러 장 찍고 싶었지만 보안 때문에 그럴 수 없어서 아쉬웠다.

 부대 내에선 우리는 군인들과 같은 패턴으로 생활했다. 물론 진짜 군인들 보다는 훨씬 자유로웠지만 말이다. 아침과 저녁마다 점호를 하였는데 나도 인원보고를 해보고 싶어서 자원했다. 아직도 그 문구를 잊을 수 없다. 또한 순번을 정해 진짜 군인들처럼 불침번을 서기도 했는데 자원한 덕분에 편한 시간대에 배정받아서 그런지 재미있었다.

 첫째 날을 제외하고는 혼자서 침구 정리하고 규칙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흥미가 떨어졌는데 둘째 날에는 특별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앞서 말했듯 둘째 날에는 폭우가 쏟아졌는데 부대에 도착하니 마을 전체가 정전과 단수가 되어 빨래는커녕 샤워도 못할 지경이었다. 우리 조 여자들은 단수인줄도 모르고 샤워장에 들어가 샤워를 하다가 중간에 물이 나오지 않자 당황했었다. 결국 단체로 버스를 타고 근처 부대로 이동하여 샤워를 했다. 약 4~50여명의 인원이 좁은 목욕탕에서 한꺼번에 샤워를 하려니 전쟁이 벌어졌지만 그나마 씻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부대로 돌아와서 22시 정도가 되자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불이 한꺼번에 들어왔는데 그때의 희열은 정말... 다들 병사들이 잠들 시간인 것도 잊고 환호했다.

 또 셋째 날에는 신형 전투식량을 먹었는데 초등학교 때 미군 전투식량을 먹어본 경험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전투식량을 먹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고 구성품은 밥과 소스, 수저 및 김치가 있었다. 박스를 개봉하여 위에 있는 줄을 당기면 안에 있는 발열 팩으로 인해 음식들이 데워지는 시스템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원리를 알 수가 없어서 마치 내 눈에는 마법처럼 보였다. 이공계 최고.

 나는 제육볶음밥을 먹었는데 인스턴트 느낌이 강하게 있긴 했지만 맛있었다. 김치가 너무 뜨거워서 먹지 않았는데 이외에는 정말 싹싹 다 긁어먹었다. 그런데 나중에 전역한 사촌오빠의 말을 들어보니 전투식량은 특성상 엄청나게 고열량이란다. 진짜 밥풀 하나도 남김없이 먹었는데 어쩌나...

 이외에 특별했던 것은 밤마다 치킨을 제공해 주셨는데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치킨이었지만 그곳에서 먹으니 왜 이렇게 맛있던지, 매번 배부르게 먹었다. 그 덕분에 집에 돌아와서 몸무게를 재니 살이 빠져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1~2kg 정도가 쪄있었다. 치킨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공해 주셔서 고마워요!

 잊을 수 없는 1조, 그리고 대원들

 맨 첫날 오티 때 조를 지정받고 나서 걱정을 했었다. 나는 친해지고 나면 활발한 편이지만 낯을 오랫동안 가리는 편이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24시간 내내 함께 생활하며 계속해서 부딪혀야 하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온 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했었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조원들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손을 건네주었다. 갑작스럽게 전야제 때 공연할 춤을 연습하는 것도, 매일 짧지 않은 거리를 걷느라 힘들었을 텐데 중도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열심히 해주어서 고마웠고 부상 때문에 힘들어 할 때 괜찮냐는 말 한마디씩 해주고 신경써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나’와 ‘너’에서 비로소 ‘우리’가 되었을 즈음 국토대장정이 끝나버려서 많이 아쉬웠다. 각자 지리적으로 먼 곳에서 왔기 때문에 다 같이 뭉칠 일이 앞으로 몇 번이나 있겠느냐마는 다시 만나는 날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건효 오빠부터 시작해서 민기 오빠, 미선이 언니, 금희, 조장 창현이, 지선이, 아침이슬이, 동연이 그리고 태영이까지 정말 수고 많았고 고마워요. 이외에도 동갑임에도 끝까지 말을 놓지 못했던 세은씨(ㅋㅋㅋ) 외 다른 조의 참가자들과 단장님, 부단장님, 의료팀, 기사 아저씨들, 민아 언니를 비롯한 스태프 언니 오빠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느라 힘드셨을 분들에게 고생 많으셨고 고맙다는 말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konas)

이선민(경희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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