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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수기 ‘고개를 숙이고 다닌다면, 당신은 절대 무지개를 볼 수 없을 것이다’(입선)

Written by. 김성현   입력 : 2019-11-22 오후 3: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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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일기 예보 : 흐리고 비
 사관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내가 청각 장애로 병역판정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고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장교 생활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4급 판정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군 입대를 미루며 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 늦은 나이인 24살에 복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4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경남 농아인협회에 배정을 받았다. 처음 농아인협회에 배정을 받았을 때, 우선 농아라는 단어가 생소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청각 장애인과 언어 장애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다른 복지 센터처럼 대부분의 사회복무요원들이 꺼리는 장애인 복지관련 업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근무지 주소를 검색해 보았는데, 집에서 꽤 먼 거리에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당장의 첫 출근부터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통근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가 걸리는데, 버스 배차 간격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통근 버스가 내리는 정류장과 사무실도 버스 정류장으로 다섯 정거장 정도의 거리로 가깝지 않은데다, 인도가 없어 차가 다니는 도로의 끝에 붙어 걸어가야 한다. 근무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힘든 복무생활이 될 것이라며 푸념했다. 처음에는 청각 장애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나인데 내가 농아인지원센터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돌발적 난청으로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기에 언제든지 남은 한쪽 귀도 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남은 한쪽 귀도 들리지 않으면 나도 농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근무를 하면서 한쪽 귀라도 들리는 내 상황에 감사하게 되었다. 대부분 선천적으로, 또는 어린 나이에 후천적으로 양쪽 귀가 다 들리지 않는 농아인 분들은 언어능력의 습득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어 대부분이 말을 하지 못하신다. 나는 온전한 한쪽 귀가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다.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한쪽 귀만 들리지 않는 내 상황과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나의 장애만을 크게 생각하고 농아인분들의 청각장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빗 속 우산
 평소 근무지에서는 간단한 서류 작업과 청소, 손님 응대 등이 주요 업무이다. 크게 바쁘지도 않고, 힘든 일도 없다. 가끔 체육행사나 외근을 가게 되면 조금 챙겨야 할 것이 많아진다. 필요한 물품들 빠지지 않게 챙겨서 차에 실어 옮기고, 캠코더 녹화와 사진 촬영을 하고, 행사 진행을 돕는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하고, 가끔은 숙박도 해야 하는 외근도 있다. 피곤하고 힘들지만, 근무지에서의 일과는 또 다른 보람이 있다. 직원 분들과 손이 많이 가는 일을 함께 해낼 때다. 내가 있기에 조금은 더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 같아 성취감을 느낀다.

 또한 체육 행사나 세미나 등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재밌어 하시는 분들을 보면, 고작해야 보조 업무만 할뿐인데 괜스레 뿌듯하다. 사회복지사 분들이나 장애인 서비스센터 등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느끼는 보람을 조금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남은 8개월의 기간 동안에도 몇 개의 외근과 행사가 있겠지만, 기쁜 마음으로 소집해제까지 참여할 것이다.

 복무를 시작할 때 가장 큰 고민이었던 배차 간격에 길고 험난한 길을 걸어야하는 통근문제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해결되었다. 우리 사무실이 있는 경남 사회복지센터에는 내가 근무 중인 센터 외에도 많은 사회 복지단체가 있다. 몇 달 출근을 하며 다른 사무실 선생님들께 인사를 건넸다. 그랬더니 얼굴을 기억하셨는지 출근 하시는 길에 차를 갓길에 세우시고 태워주셨다. 건물 내 거의 모든 직원 분들이 내가 버스에서 내려 걷는 모습을 보시면 꼭 태워주신다.

 오가는 길에 이런저런 일상적인 이야기도 나눈다. 업무와 관련한 이야기도 조금씩 나누다보니 다른 센터 일도 조금씩은 알 것 같다. 선생님들의 배려 덕분에 통근도 한결 편리하고, 오가는 대화에 마음도 따뜻해질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업무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가 되었다. 매번 다들 그냥 가는 길이라 태워주신다고 말씀하시지만 정말 헤아릴 수 없는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예기치 못한 비에 어쩔 줄 모를 때, 같이 우산을 쓰자고 해주는 고마운 친구처럼 느껴졌다.

 내일 날씨 : 갠 뒤 차차 맑음
 앞서 말했듯 언제든지 나도 양쪽 귀가 다 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데, 양쪽 귀가 다 들리지 않아 일반적인 대화가 아닌 수화와 필담을 통해 대화해야 하는 농아인 분들을 보며 깨달은 점이 있다. 설령 나에게 양쪽 귀가 다 들리지 않는 시련이 찾아온다고 해도, 헤쳐 나갈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근무하면서 많은 농아인 분들을 보았는데,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장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당장 내가 근무하는 농아인 협회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 중에서도 농아이신 분들이 있으시다.

 또, 근무하는 센터에서 다양한 행사나 강의를 주최하면 오시는 분들도 대단하신 분들이 많았다. 강의하시는 내용을 촬영하다 보니 거의 빠지지 않고 듣게 된다. 장애를 극복한 과정과 그 결과 현재 하고 계시는 일들을 듣다 보면 매번 놀라게 된다. 각국 지도자들의 회의에서 수화를 하시는 분도 계셨고, 목사님도 계셨다. 체육대회에서 비장애인 분들보다도 높은 점수를 기록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주어진 상황과 능력 속에서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떠올리며 행복한 삶을 살면서도 절망적인 삶의 작은 부분들에만 몰두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복무 생활 덕에 개선된 생활습관도 참 많다. 첫째로 수면습관이 많이 개선되었다. 복무 전에는 늘 새벽 3시 근처가 되어 늦은 시간에 잠이 들고, 불면증에 시달려 3~4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런데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일어나다 보니 조금 더 일찍, 일정한 시간에 잠이 들게 되어서 불면증이 많이 완화됐다.

 또, 어머니가 좋아하는 개선점도 있다. 설거지나 빨래 같은 집안 일을 귀찮아서 미루는 경향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근무 중에 자주 하니 익숙해져서 필요할 때 바로 하게 됐다. 또한, 미리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습관도 없어졌다. 힘들기 전에, 힘들 것 같아서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힘들 것 같기만 했던 복무가 막상 겪어 보니 예상보다 덜 힘들었고,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됐던 경험 덕에 그런 습관이 자연스레 없어졌다. 내년에 소집해제를 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바뀐 생활 습관은 꼭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무지개를 보며...
 늘 고난은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이다. 계속해서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운명에 불만을 품고 살 것인지, 어떻게든 역경을 딛고 할 수 있는 일을 해 낼 것인지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사춘기에 찾아온 이유 없는 청각 장애는 나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지내게끔 했다. 학교 입시는 예비번호 1번을 남겨두고 탈락했다. 조금 힘든 통근이나 잦은 외근도 복무 초기에는 정말 힘든 부분이었다. 굴곡 없는 인생은 없다지만 나는 내 인생이 유독 시련으로 가득 찬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남 농아인협회에서 근무하며 만난 경남 각 지부의 농아인 분들 중 다수가 나보다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결코 순탄하게 살아오시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한 분 한 분 다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열심히 살고 계신다. 예고없이 불행이 찾아오듯 힘든 상황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다보면 좋은 기회가 갑작스레 찾아와 우리의 인생에서 먹구름을 걷어내기도 한다. ‘고개를 숙이고 다닌다면, 당신은 절 무지개를 볼 수 없을 것이다.’는 찰리 채플린이 한 말처럼, 당장의 역경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면, 좋은 기회, 행복한 순간마저 놓치게 될지 모른다.

 내년 1월 말 소집해제이기 때문에 어느새 복무가 7개월 남짓이 남았다. 하지만 D-DAY를 하나하나 세지 않으려 한다. 남은 복무일수가 그저 어쩔 수 없는 병역의무 때문에 했던, 빨리 끝나기만을 손꼽아 헤아리는 나날이 되지 않기 위함이다. 쉽고 순탄하기만 한 업무가 있진 않지만, 의미가 있는 날들인 만큼 남은 복무도 당장 주어진 하루 일과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김성현(경남농아인지원센터)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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