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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칼럼] 6·25전쟁 영웅 故 백선엽 장군을 추모하며...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21-07-06 오전 9: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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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에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해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한 故 백선엽 장군이 100세의 일기로 타계한지 1년이 되었다. 故 백선엽 장군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 평남 강서군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임관한 후 제1사단장, 제1군단장, 제1야전군사령부 초대사령관, 제7·10대 육군참모총장, 제4대 합참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태극무공훈장과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은성무공훈장, 캐나다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장군은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4월 제1사단장으로 취임해 그해 8월과 9월 6·25전쟁의 최대 격전인 낙동강지구 전선의 다부동전투에서 55일 동안 미군과 함께 인민군 주력부대 3개 사단의 예봉을 꺾음으로써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전기를 마련해 서울을 탈환할 수 있었으며, 동년 10월에는 국군 제1사단이 평양을 탈환해 민족의 자존심과 국민의 사기를 드높였다. 1951년 7월 휴전협상을 시작했을 때는 한국군 대표로 참석했으며 1952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어 미군의 벤플리트 장군과 함께 10개 예비사단 창설, 군 훈련체계 개혁 등 대한민국 정예군 건설의 초석을 다지고 한미동맹을 강화했다. 1953년 1월 대한민국 최초로 육군대장으로 진급했으며 1960년 5월 전역했다. 

 ▲ 6.25전쟁 당시 백선엽 장군의 모습.ⓒkonas.net


 故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 때 국군이 착용한 전투복을 수의로 입고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당시 국군은 전투복이 없어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이 입었던 군복을 착용하고 전쟁을 치렀다. 생전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장군의 유지에 따라 다부동전투 참전용사 4명과 육군 장병 4명이 다부동, 문산 파평산, 파주 봉일천 등 이른바 8대 격전지의 흙을 장군의 관에 뿌렸다. 백선엽 장군의 타계 소식에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1950년대 공산주의 침략자들을 격퇴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백선엽 장군과 모든 영웅들 덕분에 오늘날 한국이 번영하는 민주공화국이 됐다”는 애도의 글과 함께, 백선엽 장군의 영문 회고록인 ‘부산에서 판문점까지: 한국군 최초 4성 장군의 전시 회고록’ 표지 사진을 함께 올렸다.

 반면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장군의 만주군 복무와 간도특설대 경력을 두고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해 발표하였다. 장군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식민지 상황 하에서 평양사범학교 졸업(40년 2월) 후 배움을 갈구하던 중 후일 비행사로 이름을 날린 박승환과 이상렬 등 만주군관학교 생도들로부터 군인의 길을 권유받고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다.(「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 2010) 장군의 만주군 복무 관련 사항은 명확한 사실이나, 당시 암울한 나라 상황에서 꿈을 가진 젊은 청년의 진로 선택을 두고 이를 꼬집어 친일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또한 장군이 항일세력을 무력 탄압하는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에 근무했다는 이유로 친일 행위자로 선정한 것도 친일을 전제한 무리한 논리의 비약이며, 장군이 어떤 친일행위를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장군이 부임한 1943년에 만주 일대의 항일세력은 사실상 소멸상태였으며, 그 시기는 임관 1년 차인 중위(24세)에게 결코 중요한 역할이 주어질 수 있는 계급도 아니었다. 장군을 친일로 보는 세력들은 간도특설대 관련 회고록(「대 게릴라전」, 1993년, 일본어판) 내용을 자신들의 주장에 유리하게 해석하여 친일 행위자로 몰고, 일부 중국자료(중국 조선민족 발자취 총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자신들이 주장하는 친일행위에 초점을 맞춰 주장한 것이다. 더욱이 장군의 타계 직후인 7월13일 MBN 방송에 패널로 출연한 노영희 변호사는 “어떻게 저 분이 6.25전쟁에서 우리 민족인 북한을 향해서 총을 쏴서 이긴 그 공로가 인정된다고 하여 현충원에 묻히느냐?”고 말해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심지어 사회자가 당황하면서 “우리 민족을 향해 총을 쐈던 6.25전쟁”이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 수정할 용의가 없느냐?”고 묻자 “6.25전쟁은 북한하고 싸운 것 아닌가요? 그럼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반문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졌다. 

 또한 일부 정치권과 군출신 인사들이 故 백선엽 장군을 6·25전쟁 영웅으로 부르는 것을 두고 지나친 과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입증된 전사를 부정하는 것이며, 있을 법한 가설과 확증편향된 사고의 결과를 진실인양 호도하는 것이다. 역사가 故 백선엽 장군을 영웅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전쟁 초반의 시행착오를 딛고 낙동강 방어선 구축 이후 한국전쟁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과 전공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공을 입체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특히 북한군의 파죽지세로 남침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국토의 10%만 남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백 장군이 일궈낸 값진 승리는 전설로 회자된다. 다부동 전투와 관련한 백선엽 장군의 전공은 전황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북한 및 소련측 자료가 드러나 사실들이 검증되었으며, 북한 최정예 3개 사단 2만여 명의 공산군에 맞서 끝끝내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해 북진 반격의 발판을 마련한 결과는 어떤 억지주장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다부동 전투 시 북한군의 강력한 공격으로 공포에 질린 병사들을 향해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며 선두에서 돌격한 사실은 당시 같이 참전한 마이켈리스 미27연대장 등이 증언하고 있다. 현재 다부동전투가 벌어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는 장군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고, 이 전투는 미국의 주요 군사학교에서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을 수업 교재로 활용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 1950년 10월19일 평양 입성 후 제1사단장 백선엽 장군이 미 제1군단장 밀번 소장에게 평양 탈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6.25전쟁 기록 사진집」ⓒkonas.net

 

 故 백선엽 장군이 미 군사고문관의 입김으로 출세가도를 달렸다는 일부 주장은, 장군이 당시 미군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몇 안되는 한국군 지휘관이었던 점에서 일부 수긍이 되나, 당시 한국군 지휘관의 전반적 작전능력이 매우 미흡하여 미군 지휘 하에 연합작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동맹군과의 소통능력은 플러스 요인일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더욱이 故 백선엽 장군의 평양 탈환이 ‘무혈입성’이란 주장도 터무니없는 억지다. 국방부가 당시 전황에 대해 입체적(한국군+북한+소련+미군)으로 검증한 「6·25전쟁사」에 의하면 북한군은 수도 평양을 방어하기 위해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였고 아군의 우세한 공격과 공중, 포병 공격 등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결코 평양 방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더불어 미1기병사단보다 2일이나 늦은 ’50년 10월11일 38선을 돌파한 1사단은 기동력의 부재로 진격이 지지부진하였으나, 미1군단에서 전차를 지원받아 보·전·포·공의 ‘패튼식 전법’을 구사하며 전진해,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함으로써 북한군의 전의를 크게 약화시킨 성공적인 작전이었다.

 ▲ 평양 선착을 눈앞에 둔 백선엽 1사단장이 미군 군사고문과 회의를 하고 있다. 출처: 「6.25전쟁 기록 사진집」ⓒkonas.net

 지난 6월 25일 사단법인 국가원로회의와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 등은 경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故 백선엽 장군의 사망 1주기(7월 10일)를 맞아 추모행사를 열었지만 정부나 軍은 공식행사가 없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릇 개인의 전력과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치우침 없이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정당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장군의 친일 매도와 6·25전쟁 관련 주장은 사실을 왜곡해 영웅을 욕되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우리의 부모세대들이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켰듯이, 이제는 우리가 그 소중한 정신을 이어받아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할 때다. 청춘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킨 대부분의 6.25참전 용사들은 나라를 지킨 자신의 청춘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빛바랜 군복을 수의로 삼는다. 故 백선엽 장군은 국군 창군 멤버로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일군 국군의 아버지다.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장군의 빛나는 생애는 오늘의 젊은 국군장병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되신 故 백선엽 장군님의 영면(永眠)을 기원한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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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rusader(crusader)   

    @ ㅎ 태생이 좌빨인 교수는? 정년퇴임하면서도, 거짓말-선동으로 일관함~!!ㅎㅎㅎ(한신대라? = Dragon Kim) @ 한걸레로 등장햇던, 용공/진보-교수란 사람이, "종북-왕초", 김대중(= Super-liar)이가 공화-주의자래네~???ㅎㅎㅎ (DJ는, 평생~ 민주82~!ㅎ 공화-근처엔 없엇음~!ㅎ) 말이나 되는 소릴하네~???ㅎㅎㅎ 또, 그 좌익기자는~?? 저런 좌익-교수를 "합리적-보수" 라네~!!ㅎㅎㅎ

    2021-07-06 오전 10: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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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rusader(crusader)   

    @ 그런~ 이승만 대통령도... 419-[민주혁명]으로~~!!ㅎ @ [반공진리] 확립한...박정희 대통령도...1026-[민주혁명]으로~~!!ㅎ @ 그래서...그후~ [민주적]으로...결국~ [615-북핵-조공/용공-민주82들]이 득세하여...[북조선-노예그루빠]-주사빨-518-민주천국...Heaven-Chosun이 도래햇지~!!ㅎㅎㅎ == 민도의 수준과 그열매들~!!ㅎ

    2021-07-06 오전 10: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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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rusader(crusader)   

    @ The Republic of Liars...!!ㅎㅎ == 민주-Heaven-Chosun~!! + 북조선은...?? == 민주-Chosun~!! == "우리는 하나입네다~???ㅎ"(== 개정은-CNC의 의미인가~???ㅎ)...그래~ 너희는 하나다~!!ㅎ @ 민도가 정말~~ 그래...!!ㅎㅎㅎ

    2021-07-06 오전 1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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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rusader(crusader)   

    @ 6.25날...새벽 4시전후...전면전이 발생햇는데도...!!ㅎ @ 국방장관 신모는...??ㅎㅎㅎ 오전9시에야...이승만 대통령께 보고를 하면서도...또~! [거짓말]을 햇다더라~!!ㅎㅎㅎ == "개성에서 조그만 소란이 낫습니다~! 심려마십시요~!??"ㅎㅎㅎ (그냥~ 모르시고...!!ㅎ 서울에 계속 잇다가...이승만 대통령이 붙잡히고~ 적화-통일되길 원햇나보조~???ㅎ)

    2021-07-06 오전 10: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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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rusader(crusader)   

    @ 미군-장성들의 6.25전쟁후...회고~~!! == "당시~~ 한국군의 훈련상태는 정말 엉망이엇고...그나마~~ 제대로 훈련되고, 싸울줄 아는 군대는...백장군 휘하의 1사단 뿐이엇다~!!"ㅎ

    2021-07-06 오전 10:01:25
    찬성0반대0
1
    2021.9.18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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