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55) 예산 월남전 참전기념탑
예산의 월남전 참전기념탑은 예산의 핵심 도로를 관통하는 아리랑 삼거리에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대의를 위한 국가의 부름에 주저하지 않고, 이역만리 타국 땅에 피 끓는 젊음을 바치신” 모든 분의 충정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뒤로는 8년 8개월 동안 8개 부대가 참전하였음을 기리는 24m 높이의 태극기가 휘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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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이 발발하고, 다양한 부대가 베트남으로 파병되었으며, 수많은 전투에서 용맹하게 싸웠음은 모두가 아는 바일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승전 사례로, ‘해병의 신화’ 짜빈동 전투에 관해 설명하고자 한다.
1966년 9월 23일, 제2해병여단은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성 북부지역(쭈라이)으로 이동해 지역 평정 작전에 참여했다. 지역 평정 작전은 해당 지역을 점령한 후 민, 관, 군이 통합하여 해당 지역을 정상화하는 지원 작전을 말한다. 이론상으로는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지만, 당시 쭈라이지역은 베트콩의 활동이 매우 활발한 곳으로, 북베트남 정규군의 침투가 쉽게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1967년 2월 14일~15일 밤, 제11중대는 당시 짜빈동 지역에 구축하였던 전술 기지를 기습 공격당한다. 이 지역은 꽝응아이시 북쪽 12㎞ 지점에 위치했으며, 기지의 지형은 얕은 구릉으로, 둘레가 약 800m인 계란형 모양의 기지였다. 이러한 형태의 기지를 중대전술기지라고 하는데, 당시 주월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에 의해 고완 되었으며, 베트남전 특유의 상황과 맞물려 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이는 이후의 전술기지 교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적의 공격 가능성이 커지자 해병여단은 경계 강화 지시를 내린다. 제11중대는 지시에 따라 주변 지역 수색 정찰을 강화하고, 기지 방어력 보강에 착수했다. 주요화기 진지를 보강하고, 조명지뢰와 대인지뢰를 추가로 매설하여 방어태세를 강화하는 등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춘다. 적의 제1차 공격이 시작된 후, 중대는 그들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후 적이 도주하자 집중사격을 가해 대응한다. 이후 적의 제2차 공격에서 적이 기지를 점령하고 일부 진지를 돌파하는 등 11중대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중대는 필사의 저항을 펼쳤으며, 날이 밝을 무렵에는 무려 역습을 감행하여 적을 섬멸하고,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어낸다.
전투 결과로 적 243명이 사살되고 3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한국군은 전사자 15명과 부상자 33명을 기록한다. 그중에는 특히 교통호에 수류탄을 폭파하여 적과 함께 산화한 이학현 상병, 기관총 사수가 전사에 뒤이어 사격하다가 전사한 송용섭 일병 등 진정한 해병 정신을 보여준 여러 영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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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 이렇게 현충 시설과 참전기념물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엔 저러한 역사가 있었다는 점을 조금이라도 인지하였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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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내용 : 이역만리 열대의 나라 베트남(월남)에서 세계평화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몸바친 자랑스런 영령들이여! 승리를 위한 벅찬 감격과 보람을 안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역전의 용사들이여! 그날의 총탄은 멈추었고, 포성은 잠들었으되 영광스런 님들의 이름은 전 세계에 길이 빛날 것이다. 베트남(월남)전에 참전하여 백전 불굴의 투혼을 불태워 민족의 긍지를 세계만방에 떨친 우리의 자랑스런 전우들이여 여기 조용히 꿈틀거리는 아리랑 공원에 님들의 얼을 위로하고 참전 용사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후대에 빛내기 위하여 존경하는 예산 군민과 함께 이 탑을 세운다. (konas)
향군대학생 인턴기자 김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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