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52)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
종군기자는 ‘군대를 따라 전쟁터에 나가 전투 상황을 보도하는 신문이나 통신, 잡지의 기자’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6.25전쟁 당시 자유세계 곳곳에서 달려온 많은 종군기자들이 고귀한 목숨을 바쳐가며, 정의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국민과 유엔군의 투쟁을 생생히 기록하고, 전 세계에 알렸다.
이들의 희생과 공훈을 길이 추념하기 위해 언론인들은 1977년 파주 통일공원에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를 설립하고 이들을 추모했다. 추념비가 세워진 자리는 1953년 정전 협정 당시 종군기자들의 프레스센터, 유엔 종군기자센터가 있던 곳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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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한국전쟁을 전 세계에 보도하다 희생된 국내외 기자 18명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전국 일선 기자들의 성금과 사회 각계의 지원금에 의해 건립됐다. 이 비의 설계와 조각은 홍익대 최기원 교수가 맡았으며 비문은 유광열, 홍종인, 최석채, 윤종현씨등 4명의 언론인이 작성했다.
타자기 모양의 화강암으로 된 받침대 위에 저널리스트의 머리 글자 ‘J'자를 딴 텔리타이프 종이가 높이 솟아있으며 비 윗부분에는 승리의 월계수와 기자정신을 상징하는 팬을 쥔 손과 한국전쟁을 뜻하는 지구의가 조각돼 있다.
추념비 아래 비문엔 ‘여기는 보도의 명예와 승리가 서린곳. 공산군의 침략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인류의 자유가 위협 당했을 때 유엔군 용사와 더불어 필탄을 퍼붓다 젊음을 이 땅에 바친 여러 나라 펜의 기수 18명. 먹물은 스러져도 기자의 얼은 푸르다. 그 영광의 희생길이 정의를 밝히리’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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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약 300여 명의 국내외 종군기자가 전장을 누볐다. 이 중 순직한 기자는 18명으로, 기자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미국이 10명으로 가장 많았고, 영국 4명, 프랑스 2명, 대한민국과 필리핀이 각각 1명이었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한국기자는 서울신문 한규호 기자로, 전쟁이 터진 지 나흘 만인 1950년 6월 29일 종군기자 중 처음으로 순직했다.
한규호 기자는 개전 직후 ‘북한군이 국군 복장과 견장으로 위장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할 때 서울에 남아있던 한 기자는 신문 보도로 이름이 알려져 북한군에 체포돼 피살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18명의 순직 종군기자 명단과 국적, 소속 등이 소상히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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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는 매년 추모비 건립일인 4월 27일 당시 종군 기자들을 비롯한 언론계 인사들을 초청하여, 이 땅에 고귀한 생명을 바친 국내외 종군기자 18명의 영령을 추모하고 그들의 기자정신을 기리고 있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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