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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46) 홍천 부채뜰 전투 전적비

Written by.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입력 : 2024-03-19 오전 10: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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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산 안에는 울창한 숲과 계곡의 조화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휴양림 이용객과 등산객이 지나는 관리 사무소 앞에는 6.25전쟁 당시 미2사단 23연대 소속으로 가리산 ‘부채뜰 전투’에 참전한 유엔군 프랑스대대 전투 공병 소대 및 프랑스대대 소속 참전 군인들의 공훈과 희생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홍천군에서 2008년 12월 10일 건립한 ‘부채뜰 전투 전적비’가 서 있다.

 ▲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두촌면 천현리 가리산 자연휴양림 내 부채뜰 전투 전적비 ⓒkonas.net

 

중공군은 4월 내내 공격을 준비했고 5월 17일 부채뜰에서 가장 참혹한 전투 중 하나가 벌어졌다. 이것이 바로 일명 ‘5월의 대학살’이다. 중공군 수만명이 공격했고 반격을 위해 유엔군은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1951년 5월 16일 시작된 부채뜰 전투는 중공군이 미군의 전선을 돌파하여 미2사단 동쪽에 위치하고 있던 국군 5사단을 돌파하고, 5월 17일 중공군이 남진하여 가리산을 내려와 부채뜰 마을방향으로 전진하였다.

샤르만 탱크 5대의 지원을 받은 미 23연대 소속 2대대와 3대대 그리고 프랑스대대는 서로 고립되었지만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하며 지상포격과 공중포격 지원이 올 때까지 진지를 고수해야 했다. 

혼란스러운 전투 속에서 팔리즈(Falise)상사의 전투 공병 소대는 프랑스대대의 중대가 후퇴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진지를 지키며 엄청난 손실을 입는다.
 
5월 18일 늦은 오후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프랑스대대는 후퇴 명령을 받고 중공군의 소굴에서 기적적으로 빠져나왔다.

프랑스대대 눈앞에서 대규모 포 공격을 당한 중공군은 며칠 동안 심각한 손실을 입고 후퇴했다. 유엔군은 고지를 재탈환하여 부채뜰을 빠르게 다시 손에 넣었다.

프랑스대대는 ‘쌍터널 전투’에서 빛나는 전공으로 한국전쟁 참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표창을 받고,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에 대항하여 한국전 참전 이후 첫 승리를 거두고, 그 공적을 인정받아 두 번째 미국 대통령 훈장을 받았다. ‘부채뜰 전투’는 프랑스대대에게 세 번째 훈장을 안겨준 전투이다.

 ▲ 부채뜰 전투 전적비 세부내용(좌), 안내문(우) ⓒkonas.net

 

‘부채뜰 전투 전적비’는 중공군이 남동쪽 및 프랑스 대대 진지로 내려가기 위해 지나간 협곡주변으로, 프랑스 대대가 북쪽으로 전진했던 가장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가리산에서 남동쪽으로 4km 떨어진 곳이다.

전적비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미 2사단 23연대 소속 유엔군프랑스대대 지원병들이 이곳 가리산 자은리 부채뜰전투에서 한국의 전우들과 함께 맹렬히 싸우다.

또한 유엔군프랑스대대 공병 소대도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

자유를 위해 가장 소중한 자신을 희생한 프랑스대대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본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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