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칼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8.18 도끼 만행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벌목 작업을 지휘하던 UN군 소속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이 휘두른 도끼에 의해 참혹한 죽임을 당한 지 벌써 48년이 흘렀다. 이 도끼 만행의 교훈은 지도자의 강력한 대응 태세 천명과 압도적인 군사력만이 무도한 북한을 굴복 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당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곳이었다. 당시 UN군 측은 공동경비구역 내 ‘자유의 다리’ 남쪽에 있는 미루나무가 무성해 북한군을 관측하는데 장애가 되므로 시야 확보를 위해 가지치기에 나섰다. 오전 10시 30분, 작업에 참가한 인원은 경비대 중대장 아서 보니파스 대위, 소대장 마크 배럿 중위 등 UN군 소속의 장교 2명, 병사 4명과 우리나라 장교 1명, 병사 4명 등 총 11명의 장병, 그리고 한국인 노무자 5명이었다. 작업을 시작하자 북한군의 군관 2명과 하전사 8명이 와서 항의했다. 이에 UN군이 벌목이 아니라 가지치기 작업임을 설명하자 북한군도 상부에 보고 후 승인을 받은 듯 가지치기 정도는 된다고 하였고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심지어 북한군은 한국인 노무자들에게 가지치기에 대한 요령을 알려 주는 등 좋은 분위기였다.
10시 45분경 북한군 군관 박철 중위 등 군관 2명이 하전사 15명을 지휘하여 가지치기 현장으로 왔다. 박철은 오자마자 보니파스 대위에게 작업 중단을 요구하였고, 보니파스 대위는 북한군이 조금 전에 승인한 사안을 중단하라는 것은 억지 요구라며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할 것을 지시했다. 박철은 바로 북한군 1명을 자기들의 경비대로 돌려보냈고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11시 30분경 북한군 20여 명을 태운 트럭이 도착했고, 박철은 작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을 가했으나 보니파스 대위는 무시했다. 그러자 박철이 소매를 걷고, 손에 찬 손목시계를 풀어 호주머니에 넣으며 “죽여!”라고 소리치자 북한군 트럭에 있던 둔기와 가지치기에 쓰던 도끼를 빼앗아 집단 폭행을 가하였다. 기습적인 북한군의 폭행에 무방비 상태로 보니파스 대위가 가장 먼저 쓰러졌다. 이에 북한군 5명이 쓰러진 보니파스 대위에게 몰려들어 도끼로 머리를 쳐서 살해했다. 마크 배럿 중위는 구타당한 후 쓰러졌으며 만행 후 UN군이 도착했을 때까지 살아있었지만, 후송 중에 사망했다. UN군 소속 미군 장병 6명 중 병사 1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부상을 입었다.
이에 미국은 즉각 북한의 ‘판문점 만행’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면서 철저한 규명과 배상을 요구하였고, 북한이 이를 거부한다면 강력하게 보복할 것을 천명(闡明)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군 측이 나무를 자르는 것을 보고 우리 경비병들이 제지하러 나섰는데, 갑자기 미군이 자신들에게 도끼를 던졌다”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 당시 소련의 위성국들인 동유럽 국가들조차도 “북한 수정주의자들이 미친 게 틀림없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이들은 “설령 미군이 도발했다고 해도 비무장 상태인 미군 장교를 도끼로 찍어 죽이는 게 어디 있느냐?”고 북한 측에 강력히 항의할 정도였다.
미국은 8월 19일에 군사정전위원회 개최를 요구했으나 북한 측은 오히려 미국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결국 군사정전위원회와 경비장교회의가 동시에 열렸으며, 이 자리에서 UN군은 김일성에게 보내는 유엔군 사령관의 메시지를 통해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에 당장 나오라는 강경한 최후 통보와 사과 및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은 “UN군의 가담 주모자들을 처벌하라”고 억지 주장을 계속했다. 협상은 결렬되었고 워싱턴 국가안보회의에서 우리 국내 처음으로 데프콘 3를 승인하였다. 이는 6.25 전쟁 이후 최초로 주한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이 준전시 체제에 돌입했으며 북한군도 이에 맞서 북풍 1호(준전시 체제)를 발동해 전군 완전 무장으로 이어졌다.
8월 21일, 미국과 우리나라는 대응 보복 준비에 돌입했다. 이 일대에 데프콘 2를 발령하고, F-111 전폭기, B-52 전략폭격기, F-4 전폭기와 대한민국 공군의 F-5 전투기 및 F-86 전투, 함재기 65대를 탑재한 미드웨이 항공모함과 호위함 등이 공중과 해상에 배치되었다. 또한 병력 12,000명을 추가 요청했으며,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미 해병대 1,800명도 출동 명령을 받았다. 미 육군의 최정예병력으로 20여 대의 차량, 165mm M135 파괴포를 갖춘 M728 전투공병전차, 비무장지대 근방에 미군의 호크 대공미사일 전진 배치, 한·미연합군의 보병부대와 자주포 등을 배치한 후 한·미 양국군 300명을 판문점에 투입하여 문제의 미루나무를 잘랐다.
이 작전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은 “당장 내 철모와 군화를 가져와라.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고 하면서 육군 특수전사령부 64명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미루나무를 절단하는 미 육군 공병들을 엄호하였으며, 육군 제1보병사단 수색대는 이 일대에 매복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특히 특전사 결사대원들은 카투사로 위장하여 권총과 수류탄은 전투복 속에 숨기고 크레모아, M79 유탄발사기 등은 삽, 곡괭이 등 작업 도구 밑에 감추는 식으로 트럭에 탑승하여 공동경비구역에 들어가 북한군 초소 4개소를 파괴하였다. 대원들이 초소에 접근해 도끼와 소총을 들고 활보하며 초소를 난장판으로 만들자 북한군은 모두 도망쳤다. 이들은 소총으로 무장하고 군사분계선을 따라 대치 하였지만 우리나라 특전사의 위압에 초소가 파괴되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미국은 북한측에 해명과 배상을 계속 요구했고, 결국 김일성은 겁에 질려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김일성은 친서를 통해 미국 측에 정식으로 사과를 했다. 이는 정전 이후 북한이 한 첫 사과였다. 김일성의 사과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다. 한·미 양국 대통령의 강력한 대응 태세와 막강한 군사력 대응에 아무리 무도한 북한도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하고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아직도 북한은 호전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오물 풍선을 포함해 지금도 여전히 호시탐탐 대한민국의 전복을 노리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8.18 도끼 만행 48주기를 맞아 그 날의 만행을 절대로 잊지 말고, 이 만행의 교훈을 토대로 대북 방어태세가 더욱 공고해 지기를 희망한다. (konas)
이영석 : 한국의병연구소장,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안보전략연구원 및 논문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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