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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2) 한 걸음의 무게, 평화의 의미

향군 국토대장정 7박 8일간의 걸음
Written by. 김승호   입력 : 2025-08-18 오전 8:5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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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15기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지원 동기

나는 지난 학기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분단에 대한 이해와 그 시대 인물들의 내면 감정, 그리고 ‘밀실’, ‘광장’, ‘제3국’이라는 공간적 상징을 인물의 시선에서 해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분단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선택,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재 저는 4학년 졸업 작품으로 ‘분단 역사와 나의 정체성’을 주제로 탐구 중이다. 다양한 역사 자료와 함께, 최전방에서 군 복무를 마친 친구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현실적인 이해를 넓히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직접 현장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절감했다. 

이에 휴전선 전적지 답사라는 큰 의미를 담은 국토대장정에 참가함으로써, 분단의 상징적 공간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며 그 땅에 담긴 아픔과 사람들의 삶을 느끼고 싶었다. 또한, 또래 참가자들과 함께 걸으며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분단과 통일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졸업 작품뿐 아니라 제 삶과 정체성을 더욱 깊이 있게 성찰하고자 했다. 국토대장정은 제게 ‘광장’과 ‘밀실’의 경계를 넘는 실천의 자리이자, 글과 사유로만 접근하던 분단 문제를 실제 감각과 경험으로 치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지원하게 됐다.

1일 차 [집결 →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OT) → 금강산 콘도]

 ▲ 2025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첫날, 우리는 13시까지 재향군인회 앞에 집결했다. 참석 확인을 하고 명찰을 받은 후 각기 배정받은 호차에 앉아 어색한 공기를 느꼈다. 아직 얼굴도 낯설고, 이름도 모르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각자 어떤 다짐으로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됐는지 궁금해하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려 했다.

한참을 달려 우리는 통일전망대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OT를 진행했다. 조끼, 기능성 티셔츠 3벌, 반바지, 등산 모자를 비롯해 침낭, 가방 등 이번 국토대장정 기간 중 필요한 다양한 용품들을 지급해 주셨다. 더불어 전체적인 행사 안내가 이루어졌다. 처음 조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각자 어떻게 이곳에 참여하게 됐는지 이야기했다. 놀라운 점이 있다면 우리 조에는 말년 휴가를 나와서 7박 8일이라는 귀한 시간을 할애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후 여정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 친구 외에도 현역 장병들이 몇 명 더 있다는 거였다. 첫날은 금강산 콘도에서 묵었다. 숙소 앞 해변에서 한눈에 보이는 동해가 너무 예뻤다.

2일 차 [호림유격전적비 참배 → 717OP 견학 → 출정식 → 제진검문소(도보) → 12사단신교대대 → 안보 교육]

 ▲2025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호림유격전적비 참배를 첫 일정으로 717 OP 금강산 전망대를 견학했다. 실제 장병들이 근무 중인 곳인 만큼 할애된 시간이 제한되어 빠르게 살펴보느라 자세하게 다 감상할 수는 없었지만, 담당자님의 자세한 설명 덕분에 군사분계선, DMZ 등 용어에 대한 정리를 두 눈으로 보면서 실감 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신고 후 수시로 방문할 수 있는 통일전망대보다 2 km 정도 더 북측에 가깝게 위치한 최북단 관측소인 만큼 북녘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처럼 날씨가 맑은 덕분에 구성봉과 낙타봉, 감호까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70여 년 동안 사람의 출입이 제한된 만큼 거대한 자연 보호 구역으로 원시적인 생태계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신기하면서도, 저곳에서 역사 속 전투가 벌어졌으리라 상상하니 ‘전쟁’이라는 단어가 피부에 조금 더 와닿게 됐다.

오후 일정으로는 통일전망대에서 출정식이 진행됐다. 오와 열을 맞춰 한껏 열의로 가득 찬 대원들의 모습과 단장님의 신고, 그리고 웅장하게 울리는 군악대의 연주까지 더해져 드디어 국토대장정의 시작이 실감 났다. 출정식을 마치는 길로 바로 줄지어 행군을 이어갔다. 통일전망대에서부터 제진검문소까지, 달빛소리펜션에서부터 12사단신교대대까지 약 5km 정도 도보로 이동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줄지어 걸어가니 현역 시절 했던 행군 훈련이 떠올랐다. 

둘째 날 묵었던 곳은 12사단 을지신병교육대대였다. 이곳에서 들은 강동화 강사님의 안보 교육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강사님께서는 “전쟁의 본질은 결국 자연의 약육강식과 같다”고 말씀하셨고, 그 말을 들으며 ‘나라 또한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 이후 연이어 한국 전쟁까지 겪은 한반도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을까. 전쟁의 상처를 딛고 지금처럼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동안 전쟁과 분단의 역사는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교육을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편안함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어릴 적 지냈던 영천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용산 전쟁기념관에 담긴 전쟁의 아픔과 실상 모두 그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도 다시금 떠올랐다. 이번 교육은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의 시간과 노력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의 우리가 어떤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3일 차 [칠봉체육공원 → 섬강자작나무숲 둘레길  →  제8전투비행단]

 ▲ 2025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날씨 및 일정에 차질이 있어 오전에 예정되어 있던 내린천 래프팅은 취소됐지만, 이디오피아 참전기념비를 참배하며 한국 전쟁 참전 국가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기념비 앞에 서니, 낯선 땅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참전 병사들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지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타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다는 결심에는 두려움과 동시에 숭고한 사명감이 함께했을 것이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절대 잊지 않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을 당연히 여기지 않을 것을 이 시간을 통해 다짐했다. 점심에는 춘천의 명물인 장호 닭갈비를 맛보았다. 매콤하고 달콤한 양념이 부드러운 닭고기와 잘 어우러져, 함께한 사람들과 즐겁게 식사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3일 차 숙소는 공군 제8전투비행단이었다. 내가 복무했던 공군 시설에 들어서니, 왠지 모르게 익숙함과 반가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군 복무 시절 서울 ADEX(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를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이번 8비 방문에서는 운 좋게 그때 봤던 블랙이글스 홍보관은 물론, 실제 전투기를 정비하는 격납고 내부까지 견학할 수 있었다. 아주 어릴 적 사천 에어쇼에서 처음 본 블랙이글스의 화려한 곡예비행은 내게 항공우주에 대한 동경을 심어주었다. 그때 기념으로 샀던 후드티는 아직도 내 옷장 한쪽에 고이 걸려 있다. 그런 블랙이글스의 역사와 조종사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은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저녁에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님이 오셔서 군가를 가르쳐주셨다. 특히 ‘멋진 사나이’를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게 불러본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 조는 남학생 비율이 많기도 했고, 군사학과 학생 한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군 복무를 마쳤거나 복무 중이어서 군가가 익숙했지만, 다른 조의 외국인 친구들이나 여자 조원들에게는 군가를 접하는 것 자체가 생소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게임 형식으로 배우니 훈련소에서처럼 딱딱하지 않고 훨씬 친근하게 다가왔다. 오히려 그 과정이 더 즐거웠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날은 0230-0330 불침번을 섰다. 현역 시절 군사경찰 근무를 할 때면 새벽에 꼭 이런저런 생각이 들곤 했다. 오랜만의 새벽 근무에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그날 있던 일들을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번 국토대장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고,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는 것, 그리고 국가 안보라는 것도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관심과 친숙함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이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3일 차를 마무리했다.

4일 차 [백암산케이블카 → 평화의 댐 → 7사단신교대대(장비견학)]

 ▲ 2025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며, 오늘은 다시 DMZ와 가까운 곳들을 체험하게 된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컸다. 첫 일정은 강원도 화천군에 있는 대한민국 최북단 백암산케이블카 전망대를 방문했다. DMZ 위에 펼쳐진 최북단을, 남쪽으로 평화의 댐과 북쪽의 임남댐, 금강산까지 살펴볼 수 있는 장소였다. 이 백암산은 6.25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금성 전투를 치른 곳이자 중동부 전선 최고 높이의 고지였다. 안타깝게도 날씨가 흐려 흰 구름만 보일 뿐, 다른 풍경을 또렷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전쟁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금성전투의 현장에 가까이 와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오랜 시간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며 창밖을 바라보니, 풍경이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역사의 흔적으로 다가왔다. 한참을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높은 케이블카로 쉽게 오른 이곳을, 당시 병사들은 무거운 군장을 메고 목숨을 걸고 오갔을 것이다. 그들의 노고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아, 눈앞의 풍경이 한층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평화의 댐 세계평화의 종 공원에서 준비해주신 밥차로 점심을 먹었다. 먼 곳까지 와서 이렇게 따뜻하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챙겨주셔서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평화의 댐은 1986년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로 인한 수공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동시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세계평화의 종은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기증한 동판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 평화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이런 공간을 직접 방문해 견학해보니,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 곳곳의 의미 있는 장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됐다. 그리고 이런 장소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소중함이 널리 공유되고 관심받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풍산리 종점에서 7사단 신병교육대대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 7사단의 장비 견학이 있었는데, 현역 장병들이 직접 장비의 구조와 사용 목적을 설명해주셨다. 군 복무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꽤 익숙한 내용이었지만, 군대를 경험하지 않은 참가자들이 장비 하나하나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신선했다. 

저녁에는 조별 활동으로 장기자랑 준비가 이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단순한 여흥 거리로 여겼겠지만, 함께 걸으며 정을 쌓은 이들과 웃고 호흡을 맞추는 과정 자체가 이번 국토대장정의 또 다른 의미처럼 느껴졌다.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각기 다른 삶의 배경을 지닌 친구들과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라를 지키고 국가 안보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결코 단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오히려 이렇게 서로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몸소 느끼는 경험이야말로 안보의식의 깊이를 더하는 중요한 밑거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일차 [딴산 유원지 → 파로호 안보전시관 → 미륵바위 → 붕어섬 → 15사단신교대대]

  ▲ 2025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국토대장정 기간 중 많이 걸은 날로 손꼽히는 하루였다. 장거리 행군 전 딴산 유원지에서 국군 도수 체조를 진행했다.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이 앞에 나와 조교를 보였는데, 처음에는 다 까먹었다고 생각해 나서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다시 해보니 점차 몸이 기억하고 있는 듯 자연스럽게 다음 동작이 이어졌다.

딴산 유원지에서 파로호 안보 전시관까지 약 6km를 걸어갔다. 길게 이어진 산책로는 초록빛으로 가득했다. 한참을 걸어도 있는 물에 물살이 약한 강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큰 호수였다. 전시관을 들어가기 전, 딴산 유원지의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으로 이동했다. 이 위령탑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학살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1996년에 세워진 탑이다. 안내문에는 이름 없이 희생된 영령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는데, "자유수호의 의지를 다지면서 탑전에 오르시어 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묵념을 올립시다"라는 문장이 마음을 깊이 울렸다. 파로호 전시관에서 해설사님의 해설을 들었는데, 파로호 전투는 1951년 5월, 한국전쟁 중 국군 제6보병사단이 중공군과 벌인 치열한 전투로, 단 한 치의 땅이라도 내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전투의 승리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파죽지세로 적을 무찔렀다."는 뜻에서 ‘파로호(破虜湖, 오랑캐를 깨뜨린 호수)’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주었다고 한다. 

오후에는 미륵바위에서 붕어섬까지 이어지는 행군이 계속됐다. 바람이 뜨겁게 불어오는 오후의 햇살 아래,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옆에서 함께 걷는 동료들의 농담과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중간 잠시 쉬는 시간에 마신 커피차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단순한 커피 한 잔이었지만, 며칠 동안 이어진 강행군과 피로가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작은 위로이자, 함께한 사람들과 나눈 소소한 행복이 주는 특별한 선물 같았다.

오랜 시간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생각이 스쳤다. ‘왜 우리는 이 길을 걷고 있을까? 그리고 이 걸음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답은 단순하지 않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과거와, 지켜야 할 현재가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국경과 분단의 현실을 직접 두 발로 체험한다는 건, 책으로만 접하던 역사를 온몸으로 느끼는 과정이었다. 결국 이번 국토대장정의 진짜 의미는, 나라를 지키고 평화를 이어온 수많은 이들의 삶을 기억하는 동시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그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이렇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래서인지 이날의 행군은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마음만큼은 한층 단단해지는 느낌이었다.

6일 차 [제2땅굴 → 철원평화전망대 → 월정역사 → 노동당사 → 공작새능선전망대(도보) → 6사단신교대대]

 ▲ 2025년 향군 대 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제2땅굴에 들어서자마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입구에 들어서며 처음 든 생각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다"는 것이었다. 가파른 통로를 따라 지하 깊숙이 내려가니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감싸며 서늘함이 느껴졌다. 특히 돌아오는 길에 발밑을 바라보니,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을 과거에는 북측 병사들이 남쪽으로 내려오기 위해 걸었을 거라는 상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스치자 마음이 묘하게 서늘해졌다. "이 길을 따라 실제로 수많은 병사들이 넘어왔을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통로 벽에는 중간중간 하얀 동그라미 표시가 보였는데, 북측이 땅굴을 파기 위해 사용했던 굉이질의 흔적을 표시해 둔 것처럼 보였다. 평소 책에서만 보던 ‘땅굴’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오니, 북한이라는 존재가 우리와 맞닿고 있음을 다시금 실감했다.

다음으로 찾은 철원 평화 전망대에서는 날씨가 아쉽게도 흐려 멀리까지는 선명하게 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다른 전망대와 달리 뭔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흐린 날씨 때문에 특별히 눈에 띄는 풍경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풍경이 아니라 사람과의 대화였다. 이번 국토대장정 기간 중 우연히 GP(일반전초)에서 근무 중인 현역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 전망대에 전시된 분계선 모형을 보며 자신의 실제 근무 경험을 생생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덕분에 ‘전쟁’은 그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분단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식사 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월정역사였다. 역사 앞에 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총탄 자국과 녹슨 철제 외벽이었다. 마치 전쟁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진이나 전시관 속에서만 보던 전쟁의 흔적을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묘한 전율이 일었다. 월정역은 과거 경원선이 금강산까지 이어지던 시절, 기차가 오가던 종착역이었다고 한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 역도 전투와 함께 파괴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당시의 잔해라고 했다. 멀쩡했던 철로 위에 기차가 멈춘 채 녹슬어 가는 모습을 보며, 한때 이곳을 오가던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전쟁으로 인해 단숨에 끊겨버렸다는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노동당사 앞에서 해설을 들었다. 이곳은 1946년 초 북한 정권하에서 착공된 지상 3층, 연건평 580평 규모의 건물로, 당시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건축물이었다. 처음 마주한 노동당사의 인상은 그동안 보아온 전쟁의 흔적들과는 사뭇 달랐다. 무너진 벽과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음에도, 단순한 전투의 잔해라기보다는 이곳이 한때 ‘권력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히 건물을 바라보는 내 위치보다 한 단이 높게 설계된 건물에서는 어떤 위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해설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 건물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북한이 공산 독재정권을 강화하고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건립한 곳이라고 한다. 특히 건립 당시 북한은 성금을 걷는다는 명목으로 각 마을(1개 리)마다 백미 200가마씩을 강제로 징수했는데, 이는 주민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던 착취였다고 한다. 전쟁 이후 지금은 잔해로 남아 있지만, 이곳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당시 북한 체제의 억압과 공포의 상징이었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건물 앞에 서서 해설을 듣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무엇보다 이곳이 전쟁 이전에는 북한의 땅이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분명히 남한의 영역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북한 정권의 통제하에 있었다는 사실이 쉽게 실감 나지 않았다. 

 ▲ 2025년 향군 대 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그리고 우리는 오늘, 여러 해설사님께서 들려주셨던 백마고지 전투의 의미를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기 위해 백마고지 전적비를 찾았다. 백마고지는 한국 전쟁 당시 대표적인 격전지로,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간 이어진 전투 동안 무려 24번이나 주인이 바뀔 만큼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당시 중공군의 대공세는 상상을 초월했고, 전투가 끝난 후 산 전체는 흙먼지와 시체가 뒤엉켜 피비린내와 썩은 냄새가 가득했다고 한다. 해설사님은 “당시 이곳의 흙이 피로 물들어 붉게 변했다.”라고 설명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의 과거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 2025년 향군 대 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이곳을 방문하기 전날,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이 전투의 현장감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어 백마고지 전투를 모티브로 한 영화 《고지전》을 찾아보았다. 스크린 속 황량한 고지, 끊임없이 몰아치는 포화, 그리고 ‘전쟁’이라는 잔혹한 현실 속에서 무너져가는 병사들의 모습은 이곳에서 실제로 벌어졌을 참혹한 상황을 상상하게 했다. 전적비가 서 있는 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양옆에 늘어선 수십 개의 태극기 사이를 지나가자 가슴 속에서 묵직한 감정이 서서히 북받쳤다.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니, 이 평화롭고 당연해 보이는 풍경이 사실은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목숨을 건 희생 위에서 지켜낸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실감 났다. 지금은 고요한 기념비가 평화롭게 서 있지만, 그 고요함 속에 담긴 역사의 무게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오늘 이곳에 이렇게 서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교훈이라는 생각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애국심과 감사함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북받쳐 오르는 순간이었다.

 ▲ 2025년 향군 대 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7일 차 [장산1리마을회관 → 임진각 → 애기봉 주차장 → 덕산스포텔(소통의밤)]

 ▲ 2025년 향군 대 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7일 차, 어쩌면 이번 국토대장정에서 가장 긴 행군이자 마지막 행군이 될지도 모르는 날이었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길목마다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고, 흙길은 진흙으로 질퍽해져 있었다. 신발은 금세 흙탕물에 젖어 무거워졌고,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안전을 위해 모두가 천천히 걸었지만, 행군은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조의 선두를 맡은 나는 앞사람과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도 뒤따르는 조원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군 복무 시절 행군에서 “앞 사람과의 간격 유지가 행군의 핵심이자 전체 대열의 흐름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수십 명이 한 줄로 길게 이어진 상태에서 속도를 맞춘다는 건 쉽지 않았다. 진흙 길을 피하려는 작은 움직임에도 간격은 쉽게 벌어지고, 이를 다시 좁히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뒤 조원들과 멀어지기 일쑤였다.

 ▲ 2025년 향군 대 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조원들을 챙겼다. “조금만 더 힘내자.”, “여기 진흙 길이니까 조심하세요.” 하고 작은 목소리로 신호를 주고받는 동안, 이 행군이 단순히 나 혼자 잘 걷고 완주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나의 완주가 아니라, 조원 모두가 끝까지 함께 도착하는 것이 목표인 행군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기준과 타인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적당한 속도’가 누군가에게는 버거운 속도가 될 수 있었고, 반대로 내가 어렵게 느끼지 않았던 구간을 더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7박 8일 동안 함께 지내며, 내가 잘하는 것과 남들이 잘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나는 행군 자체가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대신 장기자랑이나 조별 활동에서 다른 친구들이 보여준 재치와 분위기 메이킹은 내가 쉽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반대로 나는 긴 행군에서 꾸준히 속도를 유지하며 조원들을 챙기는 데 강점이 있었고, 이 점이 조의 흐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이 행군은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단점을 인정하고 각자의 강점을 살려 함께 걸음을 맞추는 과정이었다. 누군가는 분위기를 북돋우고, 누군가는 무거운 짐을 나누어 들며, 또 누군가는 조의 속도를 이끌었다. 이 경험을 통해, 잘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건 오히려 우리가 함께 완주하기 위해 꼭 필요한 다양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박 8일의 시간 동안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법을 배웠다. 조의 선두에서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뒤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자연스럽게 채워주었다. 이 경험을 통해 “함께 걷는다.”는 것이 단순히 같은 길을 걷는 것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임진각에 도착하니, 작년에 뛰었던 파주 DMZ 마라톤 때 바라봤던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때는 숨이 차오르는 가운데 스쳐 지나가듯 보았던 풍경이었지만, 다시 이곳에 서니 그때 느꼈던 묘한 설렘과 긴장감이 함께 되살아났다. 마라톤을 마친 후에도 잠시 들렀던 임진각의 모습이 떠올랐는데, 이번에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며칠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상징적인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 감회가 새로웠다.

 ▲ 2025년 향군 대 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남는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안에 있는 바이킹을 타기로 했다. 성인이 된 이후 놀이공원에 온 적이 거의 없었는데, 막상 타보니 너무나 즐거웠다. 잠시나마 국토대장정의 긴장과 피로를 잊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소리를 지르며 웃었던 그 순간이, 며칠간 함께 걸으며 쌓인 정을 한층 더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순간에 느낀 작은 즐거움은, 오히려 국토대장정의 의미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점심 식사 후, 우리는 애기봉 전망대를 방문했다. 이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접경 지대에 위치한 곳으로, 북한 땅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중 하나로 유명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지금까지 방문했던 여러 전망대 중 처음으로 비교적 맑은 날씨 덕분에 경치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다른 전망대에서는 안개나 비로 인해 희미하게만 보이던 풍경이 이날은 또렷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북한의 초소, 넓은 들판, 그리고 선전용으로 지어진 선전 마을까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그동안 해설사님들이 며칠간 설명해주셨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한 장면처럼 연결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군사분계선 주변을 며칠간 다녀보며 느꼈던 점이 다시금 떠올랐다. 한국의 평야와 산하가 정말로 아름답고 멋진 곳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푸르게 펼쳐진 들판과 굽이치는 강줄기는, 분단이라는 현실만 아니었다면 그저 한 폭의 풍경화처럼 느껴질 만큼 평화롭고 고요했다.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여전히 긴장과 대립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풍경이 언젠가 진정한 평화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그 풍경은 단순한 경치 이상의 의미를 주었다. 이곳은 분단의 현실을 마주하는 자리이자, 동시에 평화와 통일에 대한 희망을 품게 만드는 자리였다.

오늘의 숙소는 덕산스포텔이었다. 이곳은 해병대에서 관리하는 시설로, 주로 군 관련 행사나 안보 교육, 국토대장정과 같은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이용하는 숙소라고 한다.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와 군에서 관리하는 특유의 단정함이 느껴졌으며,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히 쾌적한 공간이었다. 저녁에는 이번 국토대장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특별한 행사, ‘소통의 밤’이 열렸다.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하루하루 쌓였던 피로가 잊힐 만큼 따뜻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소통의 밤 1부에서는 각 조가 준비한 ‘나의 영웅’ 발표가 이어졌다. 발표를 들으며, 같은 여정을 함께하는 사람들이지만 각자가 바라보는 영웅의 모습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짧은 발표였지만, 각자의 이야기는 그 사람의 삶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은 인생 이야기 같았다. 우리 조는 발표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결론지었다. “비록 우리는 아직 영웅이라 부를 만큼 큰일을 해낸 사람들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영웅이 될 수 있는 씨앗을 품고 있다. 방학 중 이 더운 여름날, 편안함을 뒤로하고 이 길에 나섰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씨앗이 자라고 있는 증거일지 모른다.” 그 말을 전하며,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영웅이란 특별히 가진 능력이나 지위가 아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다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국토대장정에서 우리가 흘린 땀방울도, 언젠가 그 씨앗을 싹 틔우는 밑거름이 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1부가 끝나고 이날 저녁은 특별식으로 준비된 맛있는 고기와 시원한 음료 덕분에 한층 더 풍성했다. 며칠간 야외 활동과 행군으로 쌓였던 체력이 고기 한 점 마다 차오르는 듯했고, 함께 웃으며 먹는 자리라 그런지 더욱 꿀맛이었다. 배불리 먹고 나니, 오늘 하루뿐 아니라 지난 7박 8일간의 모든 여정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2부는 그토록 기다리던 장기자랑 시간이었다. 우리 조는 며칠 동안 틈틈이 준비했던 ‘멋진 사나이’에 맞춘 치어리딩을 선보였다. 비록 연습했던 기량을 완벽하게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그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얻은 배움이 훨씬 더 컸다. 서로 처음 해보는 동작에 도전하며 몸을 부딪히고, 박자를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했던 시간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다. 누군가는 동작을 더 잘 이해했고, 누군가는 체력이 좋아 반복 연습에 강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작은 디테일을 잘 잡아주었다. 이렇게 각자의 장점이 하나의 무대를 만드는 데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과정을 보며,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도전이 주는 가치를 다시금 느꼈다. 특히 나에게 이 무대는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협력의 본질을 배울 수 있었던 작은 경험이었다. 평소라면 익숙한 사람들과만 어울리거나 내가 잘하는 영역 안에서만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치어리딩을 준비하며 서로 다른 성격과 강점을 가진 사람들이 한 목표를 위해 호흡을 맞추는 법을 배웠다. 연습 중간중간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지만, 결국 웃으며 맞춰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잘하는 것’이 각자 달라도 그 다양성이 모여 하나의 완성된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다른 조의 공연들도 기대 이상이었다. 모두가 짧은 시간 안에 준비했을 텐데도 각자의 개성과 열정이 고스란히 무대 위에서 빛났다. 보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특히 행군의 고단함과 안보 교육의 진지함이 잠시 잊힌 채 순수하게 하나가 되어 즐기는 축제 같은 시간이었다. 이 짧은 무대들이, 어쩌면 지난 7박 8일간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의 축소판 같았다.

8일 차 [유엔군초전기념관 → 한미군 동반 트레킹(죽미령평화공원) → 해군2함대 → 천안함 헌화 → 해단식]

국토대장정의 마지막 날, 아침 공기는 한층 차분하고 묵직했다. 오늘 하루는 지난 7박 8일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마무리하는 의미 있는 일정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첫 일정은 유엔군 초전기념관이었다. 오늘 하루는 한미 장병 60여 분들과 함께 진행하게 됐다. 한국 전쟁에서 유엔군이 처음 전투를 벌였던 의미를 기리는 이곳에서, 우리는 초전 기념비 앞에 서서 묵념을 올렸다. 고개를 숙이니 며칠 전 다녀왔던 이디오피아 참전 기념비가 떠올랐다. 이 땅의 평화는 한국인만의 노력이 아니라,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다시금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이후 우리는 죽미령 평화공원에서 동반 트레킹을 진행했다. 이곳은 전쟁의 비극과 평화의 가치를 동시에 품고 있는 공간으로, 고요한 풍경 속에 서 있는 기념물들이 더욱 묵직한 의미로 다가왔다. 무더운 날씨에 모두 지쳐 있었지만,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끝까지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7박 8일 동안 함께 걸어온 시간이 이곳에서 더욱 끈끈하게 느껴졌다. 특히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달래주듯 특별한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었다. 〈6시 내고향〉 ‘오! 만보기’를 진행하는 이정용 배우님이 직접 찾아와 미니 콘서트와 한미 댄스 배틀을 열어주신 것이다. 배우님과 참가자들이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자, 잠시나마 더위와 피로가 잊히고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번졌다. 그 순간, 이 국토대장정이 단순히 걷는 여행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가 쌓이고, 함께 웃고 땀 흘리며 만들어낸 소중한 추억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후에는 해군 제2함대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단연 천안함 견학이었다. 실제로 절단된 함체 앞에 서자, 2010년의 비극이 단순한 뉴스 속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사실이 실감 났다. 함체의 단면을 마주한 순간, 예전에 보았던 영화 〈연평해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영화 속 병사들의 긴장된 표정과 절박했던 상황이, 눈앞에 놓인 어뢰에 의해 절단된 천안함의 모습과 겹쳐지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배의 단면을 보며 느껴진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어뢰가 명중했던 방향과,  그 충격으로 순식간에 잘려나간 듯 크게 손실된 함체의 모습은 말 그대로 전쟁과도 같은 공포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단 한 번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바다 위의 긴장감과 그날 희생된 장병들의 마지막 순간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 앞에 서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이 비극이 누군가의 가족과 친구를 앗아간 실제 사건이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 2025년 향군 대 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마지막 일정은 해단식이었다. 단장님의 힘찬 구호에 맞춰 모두가 목소리를 모아 “향군!”을 외치자, 지난 7박 8일 동안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동안 걷고 배우며 느꼈던 수많은 순간이 이 짧은 한마디에 모두 담긴 듯했다. 수료증과 군번줄을 받는 순간, 이 여정이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 특별한 시간이었다는 걸 다시 느꼈다. 땀에 젖은 발걸음, 힘들어도 서로를 격려하며 웃었던 장면들이 떠오르며, ‘끝까지 함께 걸어냈다.’는 성취감이 가슴을 채웠다. 이 길은 나에게 단순한 행군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 작은 이정표였다.

 ▲ 2025년 향군 대 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마무리하며

이번 향군 국토대장정은 나에게 단순한 체험 프로그램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한 깊은 여정이었다. 7박 8일 동안 수많은 길을 걸었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으며, 그 모든 경험이 하나하나 소중한 의미로 다가왔다. 처음 이 길을 시작할 때는 단순히 졸업 작품을 위한 자료를 얻고, 분단의 현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면 이 여정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길은 내 안에 깊이 자리한 무관심을 깨우고, 스스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지 질문해보게 만든 소중한 기회가 됐다. 이제 나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번 7박 8일간 내가 밟고 걸어온 길에서 심은 작은 씨앗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영웅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나의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이 평화를 이어가기 위해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걸었던 이 길이 평화를 향한 한 걸음이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며, 언젠가 다시 이 길을 걸을 때 오늘의 이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konas)

김승호 : 중앙대학교

    2026.10.2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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