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3)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길 위에서
(이 글은 '제15기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2025년 여름, 나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주최하는 제15회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에 참가했다. 이 여정은 단순한 걷기 대회나 체험활동이 아니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걷고, 땀에 흠뻑 젖어가며 숙소에 도착하고, 때로는 발에 물집이 생기고, 무릎이 시큰거릴 정도로 고된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나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배워나가고 있었다. 이 글은 나의 몸과 마음에 깊게 새겨진 그 ‘배움’의 기록이다.
출정, 그 의미 있는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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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토대장정은 특히 뜻깊은 시점에서 시작되었다. 바로 6·25 전쟁 75주년을 맞이한 해였기 때문이다. 출정식은 상징적인 장소인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열렸다. 분단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곳은, 과거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출정식을 열었던 것과는 또 다른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 시작부터 전쟁의 아픔과 안보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향군! 위 아 더 원(We are the one)! 야 야 야!”
출정식에서 울려 퍼진 향군의 구호는 앞으로 우리가 함께 걸어갈 여정에 대한 단결과 의지를 다지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국기 앞에 선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 깊이 뭔가가 올라왔다. 내가 지금 어디서 출발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왜 이 길을 걷는지를 다시금 되새겼다.
걷는 만큼 배우고, 걸은 만큼 기부되는 길
총 1,097.5km 중 70.5km를 도보로 이동하며 우리 참가자들은 단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의미 있는 길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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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화천, 철원, 파주 등 휴전선 인근 전적지를 직접 둘러보고 군부대를 방문해 병영생활을 체험하며, 대한민국이 어떤 역사 위에 서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칠성전망대, 제2땅굴, 노동당사 등 분단의 상징적인 장소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깊은 묵상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제2땅굴에서는 북한이 대한민국을 침투하려 했던 흔적이 생생하게 보존돼 있어, 안보가 단지 이념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현실임을 절감하게 했다.
이번 행군에서는 우리가 걸은 거리만큼 기부금이 적립된다고 한다. 이 기부금은 6·25 참전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사업에 전달될 예정이다. 단지 체험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체험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특별하고 진귀했던 경험들
프로그램 구성은 대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인제 내린천 래프팅, 자작나무 숲 탐방, 전방 케이블카 탑승, 맛집 투어 등 단순한 군사·안보 체험을 넘어 삶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었던 것은 금강산전망대였다.
금강산전망대는 남방한계선으로부터 800m, 군사분계선과도 1km가 채 되지 않는 최전방 전망대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기까지는 수차례의 검문소 통과와 군사통문 개방, 지뢰 표지판이 보이는 철조망 구간을 지나야만 했다. 긴장감이 감도는 그 길을 따라 올라간 곳에서 우리는 멀리 북측 GP와 북한이 폭파한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그리고 대전차용 방호벽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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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구선봉과 감호의 절경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북한이 도로를 막고 방호벽을 세운 장면은 씁쓸함을 안겨주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정치적 현실이 극단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분단의 현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평화를 위해, 자유를 위해 싸운 이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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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대장정의 여러 프로그램 중 UN군 초전기념관에서의 참배, 육군7사단 장병들과의 교류, 공군8전투비행단 블랙이글스 격납고 견학 등은 대한민국의 군이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병영체험에서는 실제 장병들과 같은 생활을 하며, 온수 샤워나 세탁기 빨래조차 감사하게 느껴지는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병영마다 다른 식사 또한 인상 깊었다. 대원들을 위해 준비된 죽과 우유, 토스트, 시리얼, 크로크무슈, 콘치즈 함박스테이크, 푸딩, 소떡소떡 등은 단순한 ‘식사’ 그 이상의 배려란걸 느낄 수 있었다. 힘든 하루를 마친 뒤 먹는 한 끼의 식사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마도 많은 참가자들이 이 음식을 떠올릴 때마다 따뜻한 기억이 함께할 것이다.
마지막 날, 그리고 내 안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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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날, 우리는 고생한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고, 때로는 웃음과 눈물을 보이며 그간의 시간을 되새겼다. 처음엔 낯설었던 조원들과 함께 웃고 울며, 한 팀으로 뭉쳐가는 그 과정이야말로 국토대장정의 진짜 의미였다.
이 국토대장정을 통해 나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는 결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 위에 지켜진 것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뉴스로만 보던 ‘안보’, ‘군사’, ‘전쟁’ 같은 단어들이 내게는 이제 매우 현실적인 단어로 다가온다.
나는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고, 현재의 자유에 감사하며, 미래의 평화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스스로 묻게 되었다. 이제는 단지 소비자로서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나아갈 길
이번 국토대장정은 내게 있어 단지 한 번의 활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즉 “옛 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말처럼, 과거를 배우고 체험함으로써 나는 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그려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억하는 일, 그리고 분단된 이 땅의 현실을 잊지 않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한다. 더 나아가 통일과 평화의 시대를 여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나처럼 평범한 한 명의 대학생이 국토대장정을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이자 다짐이다.
함께해서 가능했던 여정 –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번 국토대장정은 분명히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수많은 순간의 버팀목이 되어준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각자의 한계를 넘어서며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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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 프로그램을 이끌며 국토대장정의 의미를 몸소 실천하고 계신 단장
님. 매일 아침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전체 일정을 점검하시고, 하루가 끝나면 조용히 참가자들을 살피는 모습에서 ‘리더’라는 말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따끔한 지적도 있었지만, 그 안엔 참가자 모두가 안전하고 의미 있는 여정을 보낼 수 있도록 하려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부단장님께서는 늘 우리 눈높이에서 소통해주셨다. 맨뒤에서 늘 함께 걸으며 몸이 힘든 친구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건네셨고, 대원 하나하나 챙기시던 모습은 마지막 조의 조장으로서 감사하며 큰 위안이 되었다. 단장님이 ‘이끌어주는 존재’였다면, 부단장님은 ‘곁을 지켜주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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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우리보다 앞서 현장을 준비하고,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다음 동선을 이끌어주던 기획사와 스태프분들도 잊을 수 없다. 일정, 식사, 숙소, 차량까지 모든 것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갈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철저한 준비와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에게는 하루의 여정이었지만, 누군가에겐 몇 달간의 기획과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였다는 걸 알아야 한다.
따로 또 같이 조용히 걸으며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을 지켜주었던 응급구조사 선생님과 RN분들. 갑작스런 폭우 속 엉망이 된 길을 걸어 발목을 다친 친구에게, 무더위에 탈진한 친구에게 다가와 정확하고 신속하게 조치를 취해주시던 모습은 든든함 그 자체였다. 그분들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마음 놓고 걸을 수 있었다. 덤으로 간호학과 학생인 나를 위해 새벽에도 진로상담까지 해주신 그 마음은 더욱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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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영상을 기록하느라 누구보다 많이 뛰어다닌 촬영팀, 각 조의 짐을 옮기고 안전한 이동을 책임졌던 운전 기사님들까지 모든 이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편안하게,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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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현장을 알고, 누구보다도 우리를 생각해준 어른들의 땀이 이번 대장정을 완성시켰다. 이 길은 단지 우리가 걸은 길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함께 걸어준 이들의 발자취까지 더해져야 비로소 완성되는 여정이었다.
조장 ‘오승미’ _ 책임은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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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대장정 동안 ‘조장’이라는 이름 아래 맡게 된 책임은 처음엔 부담으로 다가왔다. 세 살 이상 차이나는 조원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 무거운 일정 속에서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장이라는 역할은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힘들어하는 조원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고, 서로의 짐을 나누며 버팀목이 되어주다 보니 어느새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있었다. 함께 웃고, 함께 걷고, 함께 견디며 조원들과 하나의 작은 공동체가 되어가는 그 시간이 참 따뜻했다. 결국 ‘조장’은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걸으며 옆을 지키는 사람이란 걸 이 대장정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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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부족한 조장을 따라와 준 모든 12조 대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특히, 버거운 일정 속 조장으로서 한계에 도달했을 때 앞장서서 도와준 김휘성 대원, 지한나 대원에게 매우 감사하다.)
조국을 지킨 또 하나의 이름 ‘김수동’
나에게 이번 국토대장정은 단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내 가족의 역사와도 깊이 맞닿아 있는 여정이었다. 대전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6·25 전쟁 참전용사, 故 김수동 육군하사 외할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이 땅 위를 걷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의미를 지니는지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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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의 왼쪽 옆구리와 오른쪽 엉덩이에는 총상이 있었다.
그 흉터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가장 젊고 귀한 시절을 전쟁터에 바친 한 청년의 희생이었고 그 숭고한 희생이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뿌리가 되었다. 이번 여정을 통해 외할아버지께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경의를 표하며, 그 헌신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굳게 새겼다.
마치며 _ 나에게 국토대장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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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향군인회 국토대장정은 단순히 ‘걷는 여행’이 아니었다.
이는 시간을 걷는 것이었고, 역사를 밟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깊은 여정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 여겼다.
매일 걷고, 군부대도 체험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평범한 프로그램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발을 딛고 걸으며, 땀을 흘리며, 때로는 울컥하고 때로는 웃으며 함께한 날들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이토록 진심으로 나라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토록 강하게 공동체의 가치를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이토록 간절하게 내가 이 나라의 ‘청년’이라는 사실에 책임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대장정 동안 나는 수많은 얼굴들을 만났다.
전쟁을 기억하는 어르신들, 전방에서 묵묵히 조국을 지키는 군인들, 내 옆에서 함께 걸으며 서로의 고통과 기쁨을 나눴던 동료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하루를 마주하며 더 단단해져 가는 내 자신을 만났다.
비 오던 날 흙탕물에 미끄러지며 일어난 순간, 힘들어 주저앉은 조원을 부축하며 다시 함께 걸었던 순간, 구호를 외치며 하나 되어 행군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도 내 가슴속에 살아 숨쉰다.
이 길에서 나는 국방과 의료, 안보와 생명, 역사와 청춘이라는 다양한 키워드들을 동시에 느끼고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모든 경험을 내 삶 속에서 실천하는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고싶다. 내가 배운 것을 잊지 않고, 전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내 역할을 고민하는 삶.
그것이 국토대장정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졸업 후 먼 훗날, 내가 간호사가 되어 누군가의 생명을 돌보는 순간에도, 나의 가치관 깊은 곳에는 이 국토대장정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이보다 더 소중한 청춘의 기억이 또 있을까.
국토대장정,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나는 내 청춘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konas)
오승미 : 경복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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