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칼럼] 북한은 과연 국가인가
북한의 논리로 보는 북한 ‘국가’
9월 9일을 북한은 9.9절로 기념한다. 이른바 사회주의 7대 명절로 흔히 건국절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 명칭은 ‘인민정권 창건일’이다. 나머지 6가지는 김일성(태양절)·김정일(광명성절)생일, 5.1절, 조국해방기념일, 조선로동당창건일, 사회주의헌법절이다. 그런데, 인민정권이 국가와 같은 뜻인가?
‘인민정권’이란 개념이 담긴 헌법 조문이 있다. 제9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을 힘있게 벌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내용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곧 국가의 헌법적 사명 중에 인민정권 강화가 들어간다. 그렇다면 국가는 인민정권과는 다른 뜻이겠다. 과연 그러한가?
북한의 헌법 조문은 ‘국가는’으로 시작하거나 국호로 시작하는 조문이 많다. 예컨대 제12조는 이렇다. ‘국가는 계급로선을 견지하며 인민민주주의독재를 강화하여 내외적 대분자들의 파괴책동으로 부터 인민주권과 사회주의제도를 굳건히 보위한다.’ 여기에서도 국가의 헌법적 사명으로 인민민주주의독재 강화가 들어간다.
통일부 북한정보 포털에 따르면 ‘인민정권기관’은 근로 인민대중이 자기의 주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세운 정권 기관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관과 같은 뜻이다. ‘혁명주권’은 ‘혁명정권’과 같은 뜻이다. ‘중앙정권’은 전국적으로 정치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중앙 기관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정의되어 있고 ‘중앙정권기관’은 전국적으로 정치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중앙 기관을 통틀어 이른다. ‘국가정권’은 사회에 대한 국가의 정치적 지배권을 의미한다.
결국 북한의 이론적 설명은 국가, 정권, 주권의 개념이 순환한다. 이쯤 되면 인민정권 창건을 건국으로 보아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북한도 남쪽 학계도 이에 대해 단일한 학설이 정립되지는 않았다. 앞으로 북한의 이론적 설명이 상황에 따라 또 변화할 가능성이 있기에 어쩌면 이 문제는 끝이 없는 미해결 과제일 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 학술 담론에 비춘 북한 ‘국가’
법학이나 정치학에서 일반적으로 국가는 3요소로 구성된다. 영토, 국민, 주권이다. 몬테비데오협약(1933)은 국제법에서 전반적으로 통용되는데 국가의 요건으로서 (1) 영구적 주민, (2) 명확한 영역, (3) 정부, (4) 타국과의 관계를 맺는 능력을 언급한다. 어느 경우든 북한을 국가가 아니라고 할 만한 잣대는 없다.
북한에 대해 오늘날 일반적인 개념화로 불량국가, 비정상국가 정도가 있다. 1940-50년대까지 거슬러 가면 괴뢰국가, 위성국가가 있다. 어떤 개념도 북한이 ‘OO국가’라는 점은 부인하지 못한다.
북한 연구의 진전에 따라 과거 북한의 성격이 소련의 괴뢰라기보다는 북한의 독자성 또는 자율성이 더 규정적이라는 식으로 평가가 바뀌게 되었다. 예컨대 6.25전쟁이 그저 스탈린의 사주에 따른 소극적인 수용이 아니라 김일성의 주동적인 도발이었다는 식이다. 어느 경우에도 북한이 국가라는 전제는 변하지 않는다.
미국은 2024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했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본다. 불량‘국가’라는 개념도 미국의 전 부시 대통령이 사용한 표현이다. 미국에 북한은 국가이다. ‘테러와의 전쟁’ 대상인 테러리스트, 테러리스트집단, 극단주의적 네트워크 같은 비국가 행위자가 아니다.
북한학의 연구사를 돌아보면 정치학자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국가 성격 논의가 대대적으로 벌어진 적이 있다. 예외국가, 군사국가, 유격대국가, 극장국가 같은 많은 개념이 동원됐다. 북한의 사회주의국가 여부에 대한 논쟁도 있는데, 모든 논의의 전제가 북한은 OO국가라는 점에서 예외는 없다.
얼토당토 않은 김정은의 두 국가 주장에 대한 대안적 이론 정립이 시급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북한을 쉽게 국가라고 인정할 수 있는가? 현실적으로 북한을 국가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헌법학계에서도 영토조항을 개선해야 한다는 견해가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헌법현실(북한은 국가)에 헌법규범(북한은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을 맞추자는 학설이다.
북한의 김정은은 몇 년 전부터 남북이 적대적 두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남쪽 일각에서도 이제는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두 국가관계로 가야 한다는 실현불가능한 이상적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헌법적으로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고 민주적으로 다양한 논의가 제기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김정은의 황당한 주장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적 논리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범죄단체로서의 북한의 非국가적 본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바가 있지만, 학계 전반에서는 연구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필자의 견해에 대해 아직까지 그 어떤 반론도 찬론도 나오지 않고 있다.
만약,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북한 국가의 성격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운영원리로 삼는 국가와는 본질이 다르다는 이론적 규명이 필요하다. 과거 괴뢰국가, 근래의 불량국가 담론을 정교하게 이론화하는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국제법 차원에서도 국가의 본질을 구분하는 연구를 국제정치학과 국제법학에서 진행해야 한다. 비록 유엔 회원국이라 하여도 같은 위상을 갖는 국가로 볼 것이 아니라 유엔 규범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국가와 거부하는 국가는 구분하는 이론화가 필요한 것이다. 예컨대 헌법학계에서 규범적·장식적·명목적 헌법으로 구분하는 논의를 국가론에 적용하여 규범국가·장식국가·명목국가 등으로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아직까지 연구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국가론의 확장적 정립이 시급하다. 북한의 본질을 非국가로 보려면, ‘국가적 행위자’ 또는 ‘국가적 공동체’론 등으로 개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의 비민주적, 비인권적, 비평화적 실체를 제대로 폭로할 수 있는 새로운 (준)국가 이론의 정립은 얼토당토 않은 김정은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면서도 국민적 통합의 이론적 잣대로 사용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 (konas)
권영태 : 향군 안보전략연구원 논문심사위원, 한국산업경제연구소 국방사업연구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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