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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적지 답사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⑦

[장려작4]우리에게 보낸 환호는 곧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 달라는 기대로 다가온다
Written by. 박영훈   입력 : 2008-08-10 오전 7: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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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활이 아직 적응되지 않은 시기인 1학년때에 국토순례를 간다는 것이 ‘시기가 빠르고 힘들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 국토순례는 6.25 전적지를 답사함으로써, 다른 국토순례와 달리 의미있고 유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기로 결정했다.

 각 소대와 분대가 편성되어있었는데,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이 섞여있어서, 처음엔 무척 어색하고 쑥쓰러웠다. 낯선자리나 초면에는 말 없는 내 자신이었기 때문에 매우 걱정이었다. ‘이 사람들과 친해질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할것인가?

 내 자신과 약속을 했다. 그럴수록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더욱 더 밝은 모습으로 다가가야만, 우리 모두에게 더욱 힘이 되겠구나!‘하고 말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면서 조금씩 말문이 트이고, 하나의 집단에 속해있다는 소속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장충체육관에서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치러진 출정식을 거행했다.
잠시 난 생각에 잠겼다. 이 재향군인회의 열렬한 환호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것이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렬한 환호를 해주는 것인가?

 단순히 국토 순례를 한다는 의미에서의 환호가 아닌 바로 대한민국을 앞으로 이끌어나갈 대학생들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고, 대한민국의 큰 발전을 꼭 이루어주길 바라는 의미에서의 환호를 보낸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정말로 대한민국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구나! 이제 우리 대한민국의 대학생들, 청년들이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나가야 하고 이제 앞으로 미래의 대한민국 역사를 써 나가는 주인공 중 한명이라는 생각에 나는 순간 내 온몸에서 전율을 느꼈다. ‘국가를 위해 뭔가 이바지 해야겠다’라고 내 자신과 다시 한번 약속을 했다.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국립현충원에서 100명의 국토대장정대원들은 대한민국을 위해 한 목숨 바치신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 분들에게 참배를 드린 후 점심을 분대별로 옹기 종기 모여 맛있게 먹었다.

 그 다음엔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에 가서,  참전용사님께 프랑스군 참전 전투에 대해 설명을 듣고, 국토 대장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수원 화성을 지나, 수원 군부대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평소에는 항상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내가 규칙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국토순례 하는것이 얼마나 피곤했던지, 일찍 잠이 들었고 일찍 일어났다.

 수원 군부대를 떠나 평택을 지나고, 3일째 천안에 있는 선문대학교에 도착했다.
행군 도중에 분대원들과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행군을 하니, 행군이 힘들지 않았고, 즐거웠다.

 3일째는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레크레이션이 있는 날이었다.
레크레이션 시간에 장기자랑을 발표해야하는데. 준비기간이 짧아서 미흡한 점이 많았고
실수도 많았지만  서로가 웃고, 화합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국토대장정 대원들의 끼와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서로가 더 가까워 질수 있는 시간이었다.

 5일째, 육군본부, 해군본부, 공군본부가 한 곳에 모여있으며 군의 핵심이자 군사도시인 계룡대에 입성했다. 육군참모총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셨고 군악대가 경쾌한 연주와 함께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계룡대에서 끼와 재능을 뽐내는 장기자랑의 시간을 가졌는데, 영광스럽게도 육군참모총장님과 박세직 재향군인회장님과의 악수하는 기회를 가졌다.
 
 나와 임충빈 육군참모총장님과의 악수는 내가 앞으로 육군 장교로서 군생활을 함에 있어, 내 머리 속에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내 높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신념을 더욱 굳게 할 것이다.

 6일 차 되던 그 다음 날 아침에 계룡대에서 육 해 공군의 간단한 소개의 세미나를 듣고,
그 후에 대전 현충원으로 이동했다.

 서울 국립현충원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을 지키기위해, 한 목숨 기꺼이 바치셨던 순국 선열들과 호국 영령들에 대한 의식을 치렀는데, 장차 대한민국의 국가안보 지켜나가며 국가의 평화를 수호할 육군 장교의 한 사람으로써,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더욱 길러야겠다고 현충원 앞에서 굳게 다짐을 했다.

 현충원을 지나 영동을 거쳐 김천을 도착해보니, 7일째로 접어들어 9박 10일의 국토대장정이 후반부로 서서히 마무리 지어가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발에 물집이 잡히고, 몇몇사람들은 심하게는 물집이 터져 심하게 발이 붓고 붕대를 감은 사람들도 있었다. .

 나도 역시 물집이 몇 개 잡혀, 걸으면 통증이 심하게 왔지만 도중에 포기한다면, 지금까지 힘들게 걸어왔던 것들이 의미없이 끝나고 국토순례를 온 보람이 없기 때문에 이를 악 물고 행군을 계속했다.

 비가와도, 푹푹 찌는 더위가 와도, 날씨 상황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행군은 계속되었다.
이 까짓 기상변화에 의해 도중에 행군을 포기할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행군 도중에 각 지역의 재향군인회 분들이 나와, 맛있는 음식까지 장만해주시면서 우리를 반겨주셨다. 또한 충북지역 재향군인회분들은 풍물놀이 공연까지 해주시는 등 우리 대학생의 국토대장정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열의를 보여주셨다.

 8일차 김천을 지나, 왜관 전적 기념관에서 간단한 참배를 한 후, 기념관에서 당시 왜관 전투에 대해 전시된 사진과 영상을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왜관전투는 낙동강 방어선을 둘러싸고 남한을 하루빨리 점령해서,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꿈꾸는 북한군에 맞서 국군과 UN이 힘을 모아 싸운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낙동강 방어선 마저 북한군에게 뚫렸다면 이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즉 국가의 존립과 직결된 전투였기 때문에 가장 치열했던 것이다. 사진과 영상만을 봐도 당시 전쟁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고 치열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전쟁이라는 것은  수많은 고아와 가족를 뿔뿔히 흩어지게 하며,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야기시켜, 이 땅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다는 점을 생각하면 다시는 전쟁이라는 것이 이 땅에 발발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왜관전적기념관을 지나, 칠곡대대에서 하루 밤을 지내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분대별로, 롤링페이퍼를 쓰는 시간을 가졌는데, 8일동안 서로에게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하나하나씩 롤링페이퍼에 적음으로써 서로간에 더욱 더 끈끈한 정을 갖게 하고, 제 3자의 입장에서 내게 쓴 글을 보고 내 자신을 알아가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9일차 이제 행군의 마지막날이다.
우리 국토대장정 대원들 모두가 서로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는 점에서
아쉬운 감정과 동시에  358km의 국토대장정완주를 눈앞에 둔 기쁨이라는 오묘한 두가지
감정을 갖고 오늘도 여김없이 힘차게 행군을 시작했다.

 다부동 전적 기념관도착. 왜관전적기념관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에 대해 참배를 드린후, 간단히 다부동 전투에 대해 강사님의 강의를 들었다.
대한민국이 반격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한 중요한 전투인 다부동 전투.
이 전투는 낙동강 전선을 지키기 위한 우리 국군의 강렬한 의지를 엿볼수 있었다.

 전적지 기념관을 관람한 후, 조금 걷다가 버스로 이동한 후 최종 도착지점인 제 2군사령부에서 3km 떨어진 지점에서 내려 또 다시 행군을 하기 시작했다. 국토 대장정 일원들은 도착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모두 환한 미소를 띄며, 즐겁게 행군을 계속 하였다.

 ‘저기 군악대가 보인다’ 제 2군사령부에 군인 간부들이 나와 우리를 맞이해 주는 것이다.
군악대의 힘찬 연주와 함께 우리는 제 2군사령부 최종목적지에 도달했다.
 가슴 속에서 찡함이 내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였다. 심지어 어떤대원들은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 ~ 이 대구까지 도착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힘들 과정을 거쳤던가?’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완주했다는 기쁨의 웃음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감동의 장면이 펼쳐졌다.  도착지에 도착했지만 아직 해단식을 끝내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정식적으로 행사는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한 우리를 위한 전야제가 저녁에 준비되어있었다.

 간단히 목욕과 샤워를 한 후에, 저녁을 먹고 바비큐파티와 전야제가 준비되어있었다.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회원들과 제2군사령관 조재토 대장과 간부들의 소개를 들은후에
우리들의 마지막 밤이 시작되었다. 레크레이션속에서 그동안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
아픔은 모두 날려버린채, 우리 국토대장정 대원들과 하나가 되어, 즐거운 밤을 보냈다.

 바비큐파티를 하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소대 분대와 친해지기도 하고, 서로의 정을 더욱 돈독히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국토대장정 마지막 밤은 끝나고 어느덧 서로가 헤어져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단식 날 마음속에 두가지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무사히 완주했다는 기쁨의 감정과 한편으로는 이별이 시간이 다가온다는 점에서의 아쉬움. 기쁘지 않고, 슬프지도 않은 이 오묘한 감정을 지낸 채, 아침에 여김없이 간단히 국군도수체조와 함께 시작했다.
 
 마지막 국군도수체조라서 그런지 매우 아쉬웠다. 아침마다 100명 앞에서 당당히 국군도수체조를 구령소리에 맞춰 했다는 것이 매우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 후 간단한 조식을 갖고, 참전 용사들과 이야기를 갖는 시간을 가졌다.
그저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6.25전쟁을 직접 6.25전쟁을 몸소 겪으신 분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6.25전쟁에 관한 이야기 들으니, 더 생동감 있었다.

그렇게 참전 용사들과의 만남을 갖은후, 해단식을 가졌다.
국토대장정 대원 개인마다 완주했다는 증서와 함께 기념촬영을 갖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점심을 먹고, 이젠 모두 각자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

 이제까지 정들었던 분대원들이 이젠 각자 집에 돌아가 흩어진다는 것이 매우 아쉬웠고,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소중한 추억들.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의 국토대장정이 빠르게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헤어짐이 있으면 다시 만남이 있듯이 라는 생각에 모두 다음에 만남을 기약하며, 어쩌면 길수도 있고, 짧을수 있는 9박 10일이라는 국토 대장정이 이젠 내 마음속에 하나의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6.25 전적지 국토순례는 장차 대한민국 육군장교의 한사람으로써, 어떤 국토순례보다도 매우 뜻깊은 국토순례였고,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국토를 직접 몸소 걸어다니면서, 보고 느낄수 있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또한 우물안에 개구리였던 내가 넓은 세상에 나와서 전국 각지 대학생들 100명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좋은 인연을 맺었다는 것이 나에겐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었고, 중요한 건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내 자신의 단점들을 하나하나씩 알아가면서 그를 토대로 내 자신을 더욱 개선시키고, 타인의 좋은점을 배워 나를 한층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20년을 살아오면서 겪어보지 못했던 내 생애의 최고의 선물인 6.25 전적지 국토대장정.
내겐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konas)

 박영훈(조선대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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