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1] 지금도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 6.25 59주년을 맞이하여 재향군인회는 전국에서 선발된 125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울에서 포항까지 460km를 종단하는 제2회 '대학생 전적지 국토대장정'을 지난 6월 25일부터 11박 12일간의 대장정을 성공리에 끝마친 바 있다. 이에 코나스는 체험수기 공모에서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된 6편을 엄선 시리즈로 게재합니다.
국토대장정을 통해 대학생들은 어느 곳에서도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6.25에 대해 피비린내 나는 전적지에서 또한 참전용사들의 경험담에서 피부로 느끼고 체험했다. 이 젊은 대학생의 고민과 갈증을 풀어 줄 해결책은 정녕 없는 것일까. 코나스는 잘못된 근.현대사 교육의 해결책을 바로 대학생들의 체험수기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독자들의 필독을 바라며......(konas 편집자 주) |
<체험수기1>지금도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2009년 6월 25일
이 날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59년이 되는 날이자, 제 2회 대학생 6·25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이 시작되는 날이다. 나는 이번 국토대장정을 하기 전에 나만의 목표를 세웠다. 바로 6·25전쟁에 대한 재인식이다.
과연 오늘날 우리들에게 6·25전쟁이란 무엇이고, 또 우리 나라 군대는 어떻게 6·25전쟁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긴 시간 동안의 장정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앞으로내가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자 노력을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국토대장정은 큰 성공이었다.
6·25에 대한 재인식과 함께, 걷는 동안 나에 대해 되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이 앞으로 인생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나의 11박12일간의 대장정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서울에서 포항까지 461Km
처음 대장정을 시작하기 전에 큰 고민이 있었다‘. 바로 내가 이 대장정을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었다. 비록 군대를 다녀왔지만 오랜만에 하는 긴 행군이었고, 최근 체력 안배를 잘 하지 못했기에 시작이 다가올수록 큰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약하지 않았다. 처음 시작부터 마음가짐을 다잡고 걷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내 체력이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이번 대장정의 참뜻을 되새겨 보았다. 59년 전 우리 선배님들도 이 길을 따라 걷지 않았던가. 그 때는 지금 나보다도 체력적으로, 심적으로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생각들을 해보니 나 자신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남의 도움없이 내 힘으로 꼭 완주하겠노라 생각을 하고 첫 발을 내딛었고, 포항해병대 1사단에서의 마지막 걸음으로 완주라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장충체육관에서의 출정식, 서울 현충원, 그리고 선배들의 희생
25일 오전에 시작된 장충체육관에서의 출정식. 여기서 우리들은 완주의 다짐을 하였고, 드디어 11박 12일, 461km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장충체육관에서의 다짐은 곧 서울 현충원으로이어졌다. 우선 시작하기 전 우리 조국을 위해 돌아가신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잘 다녀오겠다는 의지와 후배들의 걸음을 잘 보살펴 달라는 당부의 말도 함께 전달하였다. 그리고 현충원 안을 답사했다. 그곳에서는 625를 맞이하여 조문객들이 몇몇 보였다. 형제의 명판앞에서 소주 한잔을 붓는 모습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가있었다.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 그리고 진정한 삶은 무엇인가? 이들의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 것인가? 라는 철학적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런 질문들은 11박 12일 내내 내 머릿속에 맴돌며 끊임없이 답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나는 감히 여기에 어떠한 답을 얻지 못하였다. 그저 고맙다는, 내 생각만을 전달할 뿐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약속을 했다.
훗날 다시 우리 조국이 전란에 휩싸일 때 우리 선배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조국의 부름에 꼭 응하겠다는 약속을 말이다.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와 UN군 초전기념비 그리고 UN군의 희생
나는 6·25 전쟁하면 우리나라 선조들의 희생만을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전쟁경과를 간과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우리 선배님들의 희생뿐만 아니라 먼 타지에서이름도 듣지 못한 동아시아 조그마한 땅에 자리 잡은 KOREA라는 국가를 돕기 위해 파견 된 UN군의 희생 또한 깊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투파견국가 16개국, 의료지원 국가 5개국의 21개국의 젊은이들이 타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과연 그들은 무엇 때문에 피를 흘렀는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아니면 KOREA라는 듣지도 못한 국가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대다수의 군인들은 상부의 명령에 의해,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피를 흘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곳 KOREA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희생을 치뤘을까? 그저 상부의 명령이기 때문에 피를 흘렸을까? 여기에 내 스스로 답을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세계는 하나로 묶여가고 있고, 한국에서의 전쟁은 먼 국가의 이야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이 확대가 되면 세계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분명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맥아더 장군이 한강방어선에 순찰 왔을 때, 한 군인에게 물었다.‘ 왜 그곳에 서있는가? ’, 그 군인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서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언제까지 서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상부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지키고 있을 것이라고 답변을 했다. 이 대화를 통해 맥아더는 한국은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참전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는 맥아더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UN군이 한국에 왔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인간적 감정이 없다면 자신의 목숨조차 걸고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들은 UN군의 희생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고맙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름모를 나라에서 숨져간 이들 또한 얼마나 고향이 그립고, 가족이 그립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이런 생각조차 떨쳐버린 채 한국을 위해 싸워주었다. 심지어 거의 전멸한 부대 또한 있었다. 바로 가평전투에서의 호주군들이다. 전쟁 경험이 미미한 호주군들은 가평전투에서 큰 성과를 올렸지만 거의 모든 부대원들이 전사했다. 이렇게 타국의 젊은이들이 타국에서 죽어가는 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는 것도 예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이번 기회가 아니었으면 UN군의 고마움조차 몰랐기에 내 스스로도 매우 부끄러웠다.
피 비린내 나는 낙동강 방어선
7일째 되는 날 우리들은 익히 들어 많이들 알고 있는 낙동강 방어선 지역으로 접어들었다.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기로는 이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졌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6·25전쟁 최고의 혈전지인 낙동강 방어선의 중요도는 컸다. 중요도가큰 만큼 나도 이곳에서 얻어가는 것이 컸다.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직접 내 발로 와보지는 못 했던 낙동강 방어선. 이곳을 지금에서야 찾았다는 것 자체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낙동강 다리 밑에서 설명을 들었을 때 그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이 가슴으로 와닿았다. 설명을 듣고 난 후 올라갔던 낙동강 다리, 그 곳에서 수많은 목숨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섬뜩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얼마 전 나는 중국 단동에서 압록강 철교를 본 적이 있다. 그곳 다리는 현재 끊어진 체 그대로 두었다. 우리도 전쟁의 상처와 고통을 그대로 느끼기 위해서 복원하는 것보다 그냥 놔두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야 언제든지 만들면 그만이지만 역사의 아픔은 다시 만들기 힘든 것이다. 즉, 역사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기에는 복원된 다리로는 부족함이 있었다.
차라리 교통을 위한 다리는 옆에 다시 새로 만들고 부서진 다리는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글을 통해 아쉬움을 내뱉는다.
낙동강 방어선은 그 치열한 전투만큼이나 기념관들이 많이들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런 기념관들을 답사하면서 그 치열했던 전투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왜관전적기념관에서 본 영상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어느 학도병의 편지. 이것은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려고 했던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었을 것이다. 가족이 그립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이것들은 조국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자신의 사소한 욕구조차 버린 체 피 비린내 나는 전투에 참가하여 쓰러져 갔던 우리 선배님들. 그들의 편지를 보았을 때 내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 이틀... 그리고 12일째가 되는 날
대학생 6․25 전적지 국토대장정. 답사의 성격이 있지만 엄연하게 내 두 발로 우리 땅을 걷는 행사이다. 그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체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힘을 냈다. 왜냐하면 난 사학도이니까. 그리고 우리 선배님들이 이루어 놓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내 두 눈으로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우리 선배님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것이 이번 행사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걷는 내내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을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내 옆에는 동료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느끼고 공유를 해야지 더욱 더 빛을 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더 큰 것을 가르쳐 주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는 길은 그저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꼬불꼬불한 길, 높은 언덕과 고개들. 그리고 찌는 듯한 태양열을 품은 검은 아스팔트가 우리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고생을 해보라는 듯이 우리들에게 고난을 선사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 모든 고난들을 함께 막았다. 힘든 코스에는 짐을 서로 나눠들며 걸어갔고, 서로 말벗이 되어가면서 함께 험난한 여정을 같이 헤쳐 나갔다. 그 사이에서 우정이라는 것이 싹을 틔웠다. 우정은 힘들수록 더욱더 커지는 것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우리들은 함께 걸으면서 함께 생각하고 함께 완주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7일차 영동에서 김천으로 가는 구간이었다. 그곳에는 추풍령이라는 고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폭염이라는 적이 우리를 더욱 더 힘들게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어 나갔다. 그리고 고개의 정상에 섰을 때 우리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것은 우리 모두 해냈다는 성공의 목소리이자, 자기 스스로에 대한 격려의 환호성이었다.
또 이번 대장정 때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생겼다. 바로 인터뷰이다. 이번 대장정은 많은 언론매체에서 관심을 갖고 보도하였다. 지역 MBC, KBS는 물론 연합뉴스와 같은 신문사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취재하려 왔다. 그리고 국방관련 뉴스를 주로 다루는 코나스넷이라는 언론매체에서도 취재를 위해 나왔다. 나는 이 코나스넷과 인터뷰를 하였고, 내 인터뷰가 인터넷신문에 기재된 쾌거를 이루었다. 이렇게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내 인터뷰가 글로 쓰이는 것이 내 생애 처음이었다. 그래서 대장정이 끝난 지금 이 특집기사를 다 인쇄하여 기념으로 소장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 이 글들을 읽으며 대장정 때의 일을 회상하고 있다.
집으로 올라오며
해병대 1사단에서의 마지막 프로그램. 참전용사와의 대화에서 다시 6․25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그들의 희생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우리 대학생들은 미래의 주역이다. 미래의 일은 이제 우리들의 손을 통해 재탄생하게 된다. 이런 우리들이 이런 행사를 통해 좀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의미를 되새긴다면 지금 잘못된 것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런 행사는 더욱 더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느낀다. 과연 이들에게 사회는 무엇을 해주었는가? 참전용사 선배님과의 대화를 통해 내 자신과 우리나라가 한없이 부끄러워 졌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궁금하기에 여쭤 보았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참전용사에 대한 국가의 보상문제였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미미하기 그지 없었다. 감사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적인 지원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국가는 그저 방관만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고맙다는 말조차 없이 내버려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사후 국립묘지에만 보내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이 안타까움은 느낌으로만 머물지 않고 실천으로 옮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문제들을 살펴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못내 가슴에 남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대화를 했던 참전용사 선배님께 이 나라를 구해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직접 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아직도 가슴 속의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나마 인사말을 남긴다. ‘이 나라를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생 6․25 전적지 국토대장정’ 이 프로그램에 대해 몇 가지 말하고자 한다. 나는 왜 재향군인회에서 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행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대장정을 완주한 지금 그 기획의도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 6․25에 대한 사실을 알려줄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6․25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난 우리 세대들이 이렇게까지 모를줄은 몰랐다. 나는 전공이 역사학과인지라 그래도 역사는 잘 안다고 생각을 했고, 다른 젊은이들 또한 나와 비슷하게 알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대장정을 하는 동안 준비한 자료들을 보니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이런 프로그램들이 왜 중요한지 또한 더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 군 홍보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대다수 남자들은 군대 생활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자들은 그저 먼 타국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행사를 통해 군부대에 대한 이미지를 여자들에게 심어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기본의 남자들에게도 군대라는 곳이 발전해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4년 전 21살이라는 나이로 입대를 하여 2년 전에 전역을 하였다. 이런 나에게도 군대의 이미지가 있었지만, 그 이미지는 그리 좋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대장정 내내 군대에서 생활을 하다보니 군대라는 곳이 나쁜 곳만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설적인 면을 보아도, 군에서 보여준 영상자료를 봤을 때에도 군대가 많이 발전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런 프로그램이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던 군대라는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라는 결론도 내릴 수 있었다. 앞으로 후원이 잘 되고, 운영면에서도 점점 발전한다면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장정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보며 글을 마친다.
같이 완주했던 3소대 1분대 ‘31’! 그리고 항상 사고에 대해 주의하느냐 뛰어다녔던 스탭분들, 대원들을 뒤에서 묵묵히 이끌어 주셨던 정일훈 단장님과 김병호 부단장님 그리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재향군인회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만남과 인연이 한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었으면 합니다.(konas)
김태균(한양대학교 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