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용“폭발원점서 나온 北 어뢰가 가장 강력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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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피격사건 1주년을 5일 앞둔 21일 윤덕용(71·사진) 전 천안함 민ㆍ군 합동조사단 민간 공동단장을 국방일보가 특별인터뷰를 했다.
윤 전 단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인터뷰 질문에 답하면서도 천안함 합동조사단의 조사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과학’ ‘증거’ ‘입증’ 같은 표현을 통해 ‘확신’과 ‘자부심’을 나타냈다.
그는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음을 밝혀내기까지 합동조사단의 조사 과정을 컨트롤했던 주역 중 한 명으로 그의 인터뷰를 통해 조사 과정에 얽힌 천안함 피침에 얽힌 사건의 전말을 알아본다.
인터뷰 내용은 아래와 같다.(konas)
코나스 정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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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예민한 사건인데 조사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적인 중요한 일에 참여해 기여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부담은 느끼지 않았다. 해야 되면 해야겠다, 그것이 그때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요청이 왔을 때 바로 조사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학계와 군대는 문화 차이가 있을 텐데 조사 작업에 어려움은 없었나?
“군에 계신 분들이 굉장히 규범 있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배운 점도 많다. 독도함과 평택에서 같이 일하고 마주친 분들은 군인으로서 정말 규범과 절도를 갖추고 있었다. 한 치라도 착오 없이 자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군이 사회 발전의 바탕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현역 군인들이 배려를 해 줬기 때문에 불편함도 없었다. 조사 과정도 사실과 증거에 기반해 조사를 진행했으므로 역시 문제가 없었다. 다만 조사 과정에서 독도함에서 열흘, 평택에서 2주, 백령도에서 며칠 머무르는 등 집을 장기간 떠나 있었고 그에 따른 불편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상황이었다. 최종 조사 발표 전날인 지난해 5월 19일, 6월 15일 유엔 안보리에서 발표하기 전날에도 자료를 준비하느라 세 시간밖에 못 잤다. 그런 소소한 어려움은 있었지만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조사 과정과 결과를 다시 한번 정리한다면?
“사건 초반에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함수와 함미를 인양하면서 손상 상태를 통해 비접촉 외부 폭발로 천안함이 침몰한 것으로 사건 원인을 좁힐 수 있었다. 비접촉 외부 폭발이란 결국 어뢰 아니면 기뢰라는 이야기다. 이론적으로는 기뢰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므로 여러 요소를 확인했지만 조사보고서에도 나오듯이 기뢰라고 가정할 경우 설명할 수 없는 여러 문제가 나왔다. 결국 어뢰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어뢰 추진체가 나왔다. 수거한 어뢰의 성능을 고려할 때 이 어뢰가 줄 수 있는 피해와 천안함의 손상 상태가 일치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그리고 그 어뢰가 폭발 원점에서 나왔고, 흡착물·폭약의 잔류물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수거한 어뢰가 천안함을 공격한 그 어뢰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뢰는 군이 확보한 북한제 어뢰 설계도와 비교해서 정확하게 일치했다.”
-1번 표기를 놓고 인터넷에서 계속 논란이 이어졌다.
“사실 어떻게 보면 어뢰에 적힌 1번 표기도 부수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설사 1번 표기가 없었더라도 북한이 사건을 일으켰다는 증거는 충분한 상태였다는 의미다. 군이 확보하고 있는 북한 어뢰에 대한 정보와 폭발 원점에서 수거한 어뢰 추진체는 일치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그 어뢰가 북한제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북한의 로켓포탄 추진체에서도 손으로 쓴 글씨가 발견되면서 무기 부품에 손으로 글씨를 쓸 수 있다는 부분은 재차 확인됐다. 사실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어뢰 추진체 잔해에도 녹색 혹은 연두색이 확인된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조사 과정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지만 어뢰를 보면 몇 곳에 연두색 페인트 흔적이 확인된다. 또 스크루 프로펠러에서도 검은색 페인트가 나왔다. 수거한 어뢰 추진체의 색깔들이 북한 CHT-02D 어뢰 자료에 등장하는 페인트 색과 일치했던 것이다.”
-1번 글씨가 왜 폭발 때 타지 않고 남아 있느냐는 의혹 제기는 KAIST의 송태호 교수가 직접 나서서 풀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인가?
“같은 대학에 근무했지만 다른 과 교수이기 때문에 접촉도 없었고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한다. 또 조사단과도 관계가 없는 분이었다. 워낙 터무니 없는 의혹 제기가 많이 나오다 보니 그분은 과학자로서 순수하게 정의감으로 연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팽창했을 때는 온도가 내려간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이고, 어뢰와 관련해서 1960년대에 외국에서 관련 연구도 있었다. 접근 방법이나 계산 방법은 달랐지만 내부적으로 조사단도 송 교수와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1번 바탕에 있는 페인트 비슷한 물질이 100도 이상 올라가면 분해되는데 1번이 쓰여진 바탕이 그대로 있었다. 온도가 올라가지 않았다는 직접적 증거다. 스크루 프로펠러 날개의 페인트는 왜 타지 않았느냐고 의혹 제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잘 보면 폭발 충격으로 벗겨진 것이지 타거나 녹은 것이 아니다. 당연히 1번 글씨가 어뢰 추진체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흡착물 문제에 대해 계속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안함과 수거한 어뢰 추진체에서 나온 백색 흡착물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조성이었다. 같은 물질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분석은 됐다고 판단했다. 이전에 어뢰 공격을 받은 군함을 인양하고, 공격한 어뢰를 수거해 흡착물을 분석한 전례가 없다. 즉, 새로운 내용이다. 이렇게 조사과정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내용을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보고가 안 된 현상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현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어떤 분들은 흡착물질은 폭발로 생긴 것이 아니라 해저에서 화학반응으로 흡착물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폭발에서 이런 흡착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조사단의 재현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수조에 바닷물을 채워 놓고 알루미늄 분말을 넣고 폭발시킨 결과 동일한 흡착물이 나왔다. 이처럼 조사단이 조사 결과를 입증하는 연구를 했기 때문에 모든 판단은 논리적인 근거에 바탕을 둬야 한다. 하지만 조사 결과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실험 결과가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사단의 수중 폭발 실험에는 20여 명이 참석했다. 조작이 아니다. 논리를 펴서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조작이라고 말하는 순간 더 이상 토론이 진행될 수 없다. 이런 것을 보면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은 편견을 갖고 편견에 맞는 증거를 찾으려한 것 같다. 그러니 오류가 생긴다. 사실 흡착물을 놓고 계속 논란을 벌이지만 흡착물이 없었어도 조사 결과를 입증할 수 있었다. 북한제 어뢰 추진체가 폭발 원점에서 나온 것이 가장 결정적인 증거다. 시간과 위치의 일치는 의미가 크다.”
-어뢰 추진체 자체가 가장 결정적인 증거라는 의미인가?
“그렇다. 특히 천안함 폭발 원점에서 북한 어뢰 추진체가 나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원점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지만 부력을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풀린다.
천안함이 폭발한 후 두 동강이 났을 때 함미는 부력이 있기 때문에 약간 떠 있다가 침몰했다. 함수도 마찬가지로 부력이 있어서 더 멀리까지 떠내려 가다 침몰했다. 하지만 부력이 약한 작은 물체는 천안함이 어뢰 공격을 당한 장소, 즉 폭발 원점 부근에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천안함의 군용 망원경이나 개인용 컴퓨터(PC) 같은 작은 물체나 조각들은 부력이 없어서 부근에 그대로 가라앉았다. 북한 어뢰 추진체가 나온 지점에서 군용 망원경이나 PC 등이 수거됐으니 바로 그 지점이 폭발 원점이다. 이렇게 판단한 원점이 군 당국이 원래 판단했던 원점과 꽤 정확하게 일치했다. 바로 거기에서 북한 어뢰가 나왔다. 장소의 일치다. 그리고 어뢰의 부식 정도로 볼 때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다. 천안함에서 철 구조물의 부식 정도와 어뢰 철제 부품의 부식 정도가 거의 일치했다. 시간의 일치다. 시간과 장소가 일치하는 바로 그 천안함 폭발 원점에서 북한 어뢰 추진체가 나온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결정적 증거다.”
-어뢰 추진체가 원점에서 나왔다 해도 어떻게 믿느냐는 사람도 있다.
“‘어뢰 추진체가 주워온 것’이라거나 ‘어떻게 믿느냐’는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사 보고서에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폭발 원점에서 수거한 어뢰 추진체의 변형 상태를 잘 보면 앞에서 탄두가 폭발하고 뒤로 밀리면서 변형된 것을 볼 수 있다. 폭발에 의해 변형된 것이다. 프로펠러 끝도 충격에 의해 손상된 것을 볼 수 있다. 즉, 어뢰 추진체도 실제로 폭발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건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시·공간의 일치, 즉 폭발 원점에서 천안함과 비슷하게 부식한 북한 어뢰가 나왔고, 그 어뢰는 실제로 폭발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정도만 나오면 믿는 것이 정상이다. 천안함 조사단에서 활동하던 외국 조사반원들도 어뢰 추진체 발견 후 바로 악수하면서 “축하한다”고 했다. 어뢰 추진체가 나왔으면 당연히 조사가 끝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조사단의 외국 요원들도 이제 귀국할 수 있겠다고 기뻐했다.”
-과학자로서 북한 어뢰의 기술 수준은 어떻게 평가하나?
“일부에서는 북한이 버블 효과를 이용하는 어뢰를 어떻게 만드느냐는 의혹 제기도 있었다. 하지만 버블을 만드는 효과는 이미 보편화돼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능력이 있는데 그 정도의 기술력은 있다. 북한이 무기 판매를 위해 스스로 제시한 어뢰 성능이 실제 천안함을 공격할 때 정확하게 나온 것 같다. 폭발 지점이 천안함에서 8m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이건 북한이 제시한 어뢰의 감응거리와 일치한다. 전자나 컴퓨터와 연관된 기술이나 능력이 꽤 잘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어뢰 추진체의 기계적인 부분은 완전히 현대식은 아니었다. 2중으로 된 스크루 프로펠러의 날개수가 동일했는데 이것은 소음이 많이 나오는 구식이다.”
-조사 초반부터 어뢰 잔해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나.
“합동조사단의 미국의 토머스 에클스 제독도 미국에서 어뢰 발사 시험을 했을 때 어뢰 뒷부분의 추진체가 남는 경우가 있다고 조언해 줬다. 우리 해군에서도 비슷하게 조언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작은 조각일 수도 있고, 어떤 형태로 어느 크기로 남을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만약 조사한다면 그런 부분도 찾아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란 것이 공통적 의견이었다. 사실 어뢰 잔해를 찾기 위해 소나 등 최신 기술을 모두 동원했다. 해저탐사를 할 수 있는 배도 동원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최후의 방법으로 쌍끌이 어선으로 특수그물을 써서 잔해를 찾는 방법이 제기됐다. 공군에서 추락 전투기를 건진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성은 있다고 봤다. 그렇게 기발한 방법이면 왜 처음부터 그 방법을 쓰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품는 분도 있지만 이 방법도 단점은 있다. 바닥을 건드려서 뒤집기 때문에 이렇게 했는 데도 잔해를 수거하지 못하면 그 뒤에 다시 찾기에 어려움이 있다. 당연히 이 방법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쓸 수 있는 것이다.”
-쌍끌이 외에 어떤 방법을 고려했나.
“아이디어 차원에서 온갖 방법을 다 고려 대상으로 올려놓고 고민했다. 외국의 어떤 요원은 강력한 자석으로 잔해를 수거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철제로 된 부속만 수거할 수 있는데, 어뢰에는 알루미늄 등 다양한 금속이 사용되므로 한계가 있었다. 진공흡입기 방식으로 바닥을 훑어 나가자는 의견도 나왔다. 온갖 아이디어가 나왔다. 심지어 폭발 원점 일대의 해저 바닷물을 얼려서 얼음으로 만들어 끄집어내자는 의견도 있었다. 실현 가능성을 놓고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만큼 절박했고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성공한 것은 쌍끌이 어선의 특수그물로 잔해를 찾는 방법이었다. 그 결과를 보고 상당수 외국 전문가도 감탄했다. 자기도 전혀 모르는 방법이라며 감탄했다. 호주 장교는 쌍끌이 어선을 이용한 수중 잔해 수거 방법을 본국에 보고하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유엔 안보리에 보고했을 당시 반응은?
“발표 전날에 세 시간밖에 못 잤다. 영어로 설명해야 했고 외교 무대여서 긴장도 됐다. 발표 때 프랑스와 터키가 한국 측 입장에 대해 열렬한 지지 발언을 했다. 설명이 끝난 후 미국과 일본 대표가 우리 측 발표 내용을 확인하고 뒷받침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질문을 했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조사 결과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안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공개 석상에서 질문을 안 한 것은 우리 측 조사결과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기술적인 내용을 질문하면 유리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천안함은 학계에서도 학문적 차원에서 관심이 많을 것 같은데.
“조사단의 역할은 보고서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학계에서 학술적인 면에서 천안함에 대한 연구는 계속될 것이다. 지난해 11월 대한기계학회의 추계학술대회에서 천안함 문제를 다뤘고, 미국에서 열린 ‘충격 및 진동 심포지엄’에서도 우리 군에서 천안함 피격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다.”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조사 결과를 불신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름 국가에 대한 봉사의 의미로 조사단에 참여하셨으리라 짐작되는데, 조사 결과 발표 이후 벌어진 의혹 제기나 논란이 원망스럽지 않았나.
“기분 나쁘고 그런 것은 없다. 우리는 합동조사단의 조사 방법과 결론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일부 분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지적하는 내용에 대해 충격받은 내용은 없다. 의혹 제기가 많았지만 그중 어떤 내용도 천안함 피격사건의 조사 결론 자체를 조금이라도 흔들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 일부에서 잘못 생각하는 것에 안타까울 뿐이다. 정치적인 부분이나 가치 판단에 대해서는 국민들도 개개인이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 국민들 중에서 지금도 공식 조사 결과를 믿는 분, 안 믿는 분, 그리고 대체로 믿으면서도 확신을 못 갖는 경우도 있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공식 발표 이전에 추측성 보도가 많았고, 그런 추측성 보도에 대해서 혼란이 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추측성 보도의 경우 일일이 사후 정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 입장에선 혼란이 가중되고 오해할 만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분들에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설명도 드리고 해야 할 것이다.”
-교육계와 학계의 원로로서 장병들에 대해 당부할 내용은 없는지
“천안함에서 희생한 46명의 장병들, 한주호 준위 이런 분들이 목숨을 바쳐 희생했다. 이 분들은 전쟁 상황이나 다름 없는 적의 공격에 희생당한 분들이다. 한 사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하려면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기여가 사회 존립의 바탕이 된다. 그걸 인정하고 희생의 가치를 기억하고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국민들의 이해와 자세가 필요하다. 국가와 사회가 희생하는 사람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그런 체계가 필요하다. 조사를 통해 천안함 장병들이 우연한 사고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하다가 전쟁이나 다름 없는 상황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천안함 피격사건 원인 규명을 통해 그런 희생의 의미를 밝히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은 의미가 있다. 천안함 피격사건이나 연평도 포격도발로 인명을 비롯해 큰 손실이 있었다. 비극적인 일이었지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도 있었다. ‘안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는 위험한 상황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건은 그런 측면을 일깨워줬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고, 그처럼 예측이 불가능한 공격에 대해 방어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므로 항상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어렵지만 항상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천안함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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