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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부끄러움이 자긍심이 되는 순간

Written by. 안성일   입력 : 2012-12-11 오후 12: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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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2년도 공익근무요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으로 선정된 글임.(편집자 주)

 무관후보생 퇴교자

 2009년 대학교 3학년, ROTC 후보생이였던 나는 약 1년간 군사교육 및 훈련을 받았고, 그 과정 중에 무릎 관절의 이상 및 개인적인 사정으로 2010년 3월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관후보생 퇴교자’라는 사유로 남들처럼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근무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국가에서 지정해 준 곳으로 근무지를 배정받게 되었고, 운명적으로 배정된 그 곳 칠곡군장애인심부름센터, 경북시각장애인연합회 칠곡지회. 이름조차 생소한 그 곳에서 나의 공익근무요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부끄럽고 부끄럽다

 괜찮을 것만 같았던 첫 출근 날, 모든 것이 부끄러웠다. 공익근무요원 담당자, 내가 일하게 될 곳의 직원 및 관계자 등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 곳에 있는 건지,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건지 등 불만만 가득했고, 앞으로의 2년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출근을 해서 간단한 사무업무를 하고 시계를 보면 9시 30분, 또 하고 나서 시계를 보면 9시 45분, 시간은 왜 이렇게 가지 않는지 퇴근시간, 금요일 오후 6시만 기다리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그렇게 근무지에서의 처음 한 달이 지나갔다. 어느 정도 이곳의 분위기나 하는 업무를 조금 알게 된 후 국장님께서는 나에게 시각장애인분을 안내하라 하셨고, 시각장애인을 안내할 때의 주의사항이나 행동 등을 가르쳐주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던 날, “아악!!!” 라는 비명소리에 놀라 바로 돌아보는 순간, 나의 안내를 받고 걸어가시던 시각장애인분이 유리문에 부딪히셨고 머리를 손으로 잡으시며 아파하셨다. 배려심이 없고 이기적이었다. 그게 그 때의 나였고, 간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업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그 날 저녁 자기 전에 했던 생각을 아직도 기억한다.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자.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는 말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나는 최고다.”

 가치 있는 시간

 그러한 사건이 있고 난 후, 업무에 대해서 예전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게 되었고 평소에 참여하지 않았던 교육 프로그램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 기관에서는 점자교육, 집단심리상담교육, 웃음치료, 노래교실 등을  진행하는데 그동안 관심이 없어서 들어 가보지 않았던 교육에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점자교육에서 나이 드신 시각장애인분들이 그들의 글인 점자를 배우시려고 그렇게 열심히 외우시고, 점필로 점자를 찍으시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과 퇴근 후 내가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에 대해서 반성을 할 수 있었고 집단심리상담교육에서는 그들이 살아오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눈물 흘리며 그 분들을 조금은 더 이해 할 수 있었고,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노력한 그 인생에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웃음치료와 노래교실에서는 다양한 율동을 배우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그들의 노래를 듣고 함께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함께 보낸 시간이 많고 그 시간이 너무 재미있어서였을까, 그분들과 정말 많이 친해졌고 처음에 내가 느꼈던 업무의 지루함이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되었다.

 퇴근 후 과업  

 6시 이후의 생활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분들도 열심히 점자를 배우고, 안마도 하시면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데 나는 퇴근했다고 곧바로 집에 가서 게임하고 놀기만 하는 모습이 한심해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금융 자격증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퇴근 후 나의 행선지는 자연스럽게 도서관이 되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10시까지 공부를 하고 밖으로 나올 때의 뿌듯함은 내일을 기대하게 했고, 자격증이라는 목표가 정해지자 더 열심히 하고자하는 열정이 생겼다.

 그렇게 약 1년 간 퇴근 후 도서관, 그리고 집에서 다시 공부를 하면서 국제재무설계사(CFP)라는 자격증 외에도 다른 금융자격증들을 취득 할 수 있게 되었고 우연히 이 자격증 공부가 내가 하는 업무에 도움이 되었다. 나는 ‘장애인활동지원’ 이라는 업무를 보조하는데 자격증을 통해서 습득한 국민연금, 각종 세금신고 및 계산 방법이 이 업무에 유용하게 쓰였고 내가 모르고 있었던 다른 부분들을 더 배울 수 있었다. 내가 공부한 내용을 업무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즐거움, 그리고 사회에 나갔을 때 지금하는 업무가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은 업무를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꼭 필요한 사람    

 “회장님 신발은 여기, ○○ 할머니 신발은 이거 맞죠?” 시각장애인분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식당에서 자주 일어난다. 사람이 많이 갔을 경우 자신이 벗어놓은 신발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께 관심을 가지면서 제일 먼저 본 것은 신발이였다. 그렇게 한 분 한 분 신발을 눈으로 익히고 식사가 끝이 나면 커피를 한 잔씩 드리고, 나가실 때 신발을 찾아드린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밥을 제일 늦게 받고 빨리 먹어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커피를 드릴 때 “고마워요.” 10번, 신발을 찾아드릴 때 “고마워요.” 10번을 매 번 식사 때마다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라는 말은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했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말이고,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 일이 오히려 내가 힘나는 일이 되었고 그 분들께 더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달려라 안선생

 “부회장님 조금만 더 밟으세요.”  “거의 다 와가요. 이번 코너만 돌면 결승선이에요.” 매년 제주도에서는 ‘제주탐라배 전국장애인 싸이클대회’ 가 열린다.

 전국에 있는 장애인 싸이클 선수들이 참가하는 큰 대회이며, 우리 기관에서는 경상북도 대표로 참여하게 되었다. 시각장애인은 텐덤자전거라는 2인용 자전거의 뒤편에 타며, 앞자리에 타는 파일럿과 함께 페달을 밟게 된다. 그 파일럿으로서 내가 타게 되었고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3박 4일간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회당일, 경기가 열리는 운동장에는 텐덤자전거의 파일럿으로서 봉사하기위해 해병대와 해군들이 많이 와있었다. 출발하기 전 약 20대의 자전거 중 공익근무요원이 함께 탄 자전거는 단 한 대뿐 이였고, 나는 그 경기에서 꼭 이기고 싶었다. 꼭 이겨서 상을 받겠다거나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 시각장애인과의 호흡은 그 어떤 누구보다도 내가 잘 맞출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땅!’ 하는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나와 나이가 60대이신 시각장애인 부회장님은 정말 쉬지도 않고 열심히 페달을 밟았고, 마지막 결승점을 앞에 두고 잠시 발이 맞지 않아 안타깝게 1등 자리를 내주었다. 아쉽게 2등을 차지했지만 시상식에 올라간 그 순간, 나도 그리고 부회장님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나는 최고다

 첫 출근 날의 부끄러움은 어느새 자긍심으로 변했다. 공익근무요원이 부끄러운 것은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나를 포함한 공익근무요원 자기 자신이 더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 더 위축되고 더 작아진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어려운 분들께 도움을 주고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현역병으로 나라를 지키는 군인도, 보충역으로 사회를 지키는 공익근무요원도 모두 다 국가의 소중한 자원이다.

 사회적 인식은 우리가 만든다. 우리가 하는 업무에 대해서 더 당당하게 더 적극적으로 임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떳떳하게 밝힌다면 사회적 인식은 조금씩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외국에서는 공익근무요원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한다. 그들이 하는 업무 자체가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생각하기 나름이다. 공익근무요원이 부끄러워서, 혹은 일을 하기 싫어서 자꾸 업무를 피하고 문제를 일으킨다면 더 부끄러운 사람이 될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깨닫고 더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한다면 사회에 나가서 당당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사회의 낮은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우리는 꼭 필요한 사람이고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최고다. 우리는 최고다.

 약속

 내년 봄이 되면 소집해제다. 그렇다고 해서 이 근무지와의 인연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 싸이클대회’가 열리면 흔쾌히 파일럿으로서 참가하기로 약속했다. 20대의 황금 같은 2년, 남들보다 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누구보다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자신한다. 이제 곧 사회에 나가게 될 나에게 이곳은 정말 사회에서 꼭 필요한 영양분만 쏙쏙 흡수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  남은 복무기간 동안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을 약속하며 글을 마친다.(Konas)

안성일 (칠곡군장애인심부름센터)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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