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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낯선 마주침은 어느새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Written by. 조훈식   입력 : 2012-12-11 오후 12: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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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2년도 공익근무요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으로 선정된 글임.(편집자 주)

 [추억 1.] 도움이 필요한 외국인, 어쩔 수 없이 여러 번 방문해야만 한다는 하소연에 난 내 개인전화번호를 건네주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추억 2.] 적극적으로 먼저 내민 손길, 공익근무요원의 역할은 모든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 대상에서 외국인도 예외일 수는 없다.

 2011년 8월말 나는 공익근무요원 입영대상자 중 한사람이었고 그렇게 나의 새로운 2년이 시작되었다. 26살의 늦은 나이, 대학교 및 대학원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었고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고자 했던 3년, 취업과 맞물린 모든 계획은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무산된 대체복무와 나에게 허락된 공익근무요원으로써의 복무는 너무도 자존심이 상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뿐이었다.

 한 달간의 군사기초훈련을 마치고 처음 경기도 군포시청으로 보직이 결정되었다. 나는 시청 내 민원봉사과 여권관리팀의 행정보조 업무를 맡고 있다. 민원창구는 시민들의 눈에 가장 먼저 띄는 자리이기 때문에 복장 및 두발규정에서도 가장 모범적이어야 하며 근무시간 내에 자리를 비우거나 컴퓨터를 통한 웹서핑 등의 개인활동 또한 엄격하게 제한된다. 게다가 다른 공익근무요원들 보다는 평균 3~4살 정도 나이가 많고 다소 학력이 높아 주변 공무원들이 보내는 모범적이어야만 한다는 시선도 부담스럽기만 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적응이 안 되고 힘들었던 것은 민원인들과의 마주침이었다. 민원업무는 지속적으로 민원인을 응대해야하며 다양한 민원인의 성격에 맞춰 민원을 처리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민원인 중에는 매우 교양이 있고 친절하며 내가 설명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귀가 어두우시거나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거나 진행되는 절차가 불만족스럽다며 한참을 언성을 높이는 민원인도 많다.

 모든 민원인의 성격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상세하며 적극적으로 민원인을 응대해야한다. 하지만 사람이다 보니 사소한 행동으로도 오해가 생기거나 거부감이 들기도 하며 소위말해 자기가 생각한대로 민원이 잘 처리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는 건 부지기수였다.

 이렇게 민원업무에 대해 서서히 걱정만 늘어가던 나에게 특별한 사건이 생겼다. 가끔씩 외국인이 시청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체류지를 등록 및 변경, 외국인사실 증명서류 발급, 또는 다소 특별한 경우지만 한국인과 결혼을 한 외국인이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오거나 귀화를 했지만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한다.

 시청 내 민원봉사과에는 외국인 관련 서류를 담당하는 창구가 있고 그 곳엔 외국인(Foreigner)이라고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말에 서툰 외국인은 대부분 그 곳으로 먼저 간다. 경험이 많은 담당공무원은 간단한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통해 외국인을 상대하지만, 한국말을 전혀 못하거나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필요한 경우에는 내가 통역을 담당한다.

 평소 남들보단 다소 학력이 높아 주변 공무원들이 외국인들과의 대화나 영어서류에 관한 도움을 청할 때가 자주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만 처음에는 다소 부담스러웠고 내가 담당하는 여권업무가 아니어서 적지 않게 불편했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외국인들과의 에피소드를 몇 가지 적어볼까 한다.

 추억 1. 영어사용자가 전화로 문의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하루는 젊은 한국여성이 영어로 여권에 대한 업무를 질문을 했다. 나는 한국말을 못하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내 앞으로 내민 필리핀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등을 보니 순간적으로 한국계 필리핀인이거나 현지에서 오래 거주한 여성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여성은 역시 한국계 필리핀인이고 한국인과 결혼해서 최근에 한국국적을 취득했으며 출국을 위해 한국여권이 급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성은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필요한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봤고 매뉴얼대로 준비물과 각종 절차에 대해 설명했다. 물론 영어로 설명하기가 어려웠지만 무사히 고비를 넘겼고 이 여성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시청을 빠져나갔다.

 다음날 이 여성은 여전히 능숙한 영어로 사진을 새로 찍어오고 여권수입인지를 구입해왔으니 여권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신분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민번호조차 발급받지 않은 상태여서 관련된 어떤 업무 및 조회가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가족관계팀과 거주지가 등록된 동사무소에 문의를 해가며 주민번호 발급과정부터 신분등록과 관련된 업무를 상세히 설명을 드리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 돌려보냈다.

 또 그 다음날 그 분은 임시신분증을 가지고 다시 여권창구를 방문해 다행히 여권을 신청했고 며칠 뒤 여권을 교부받기 위해 4번째 방문을 했다. 여러 번의 마주침 덕분에 그녀와 친해진 나는 먼저 전화로 문의해보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서 왔으면 수고를 덜 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남편도 지방에 있어 가까이에서 도와주기 어려운 상태였고 시청에 통역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순간 나는 부끄러운 생각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미안함이 들었다. 시청 내에 방문하면 어떻게든 간단한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통해서라도 업무가 가능할 수는 있지만, 영어사용자는 전화상으로 전혀 도움을 받기가 어려웠다는 말이다. 나는 곧바로 혹시라도 다음에 필요한 업무가 있으면 바로 전화하라고 내 개인 전화번호를 건네주는 것 밖에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며칠 뒤 나는 시내 서점에서 그 여성을 만났고 그녀는 It's a small world!(세상 참 좁네요!) 라며 가지고 있던 캔 음료를 나에게 권했다.

 추억 2. 제 일은 모든 시민을 돕는 거에요.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에요

 또 하나의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점심시간에 나를 찾는 급한 전화가 왔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민원실로 뛰어갔다.

 덩치 큰 백인 남성이 서있었고 공무원들은 대화에 어려움을 느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인 남성이 온 이유는 바로 작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새도로명주소 때문이었다. 백인 남성은 몇 년 전부터 한국에 거주하는 뉴질랜드인으로 그가 지닌 외국인 등록증에는 오래전부터 써오던 지번주소가 적혀있었다.

 그러나 올 해 한국에 온 자신의 부인은 같은 주소에 살고 있는데 다른 주소가 적혀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의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서류가 필요한데 같은 주소임에도 외국인 등록증에는 서로 상이한 주소가 적혀있어 해당출입국관리소에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우려였다.

 물론 그 백인 남성의 부인의 외국인 등록증에는 새도로명주소가 기재되어 있었고 두 외국인은 여태껏 행정착오로 다른 주소에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으면 매우 큰일이라며 심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다행히 외국인 등록증에 표기된 명칭은 서로 다르지만 행정상으로는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증명서를 발급받는다면 지번주소와 도로명주소가 모두 표기되어 있어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설명을 했다.

 그 백인 남성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너무 고마워하며 시청을 떠났고 나도 급하게 먹은 점심을 소화시킬 수 있었다. 다음날 나는 8시 40분쯤 출근해 하루 업무를 준비하고 있었고 업무시작만을 기다리던 백인 남성과 그 부인을 만날 수 있었다. 부부는 전날 언급한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았고 나는 간단하게 서류에 기재된 사항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직업이 무엇인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가벼운 대화를 나눈 뒤 내 이름과 개인전화번호를 적어서 건네주었다.

 이전에 여권업무로 불편함을 겪었던 여성이 생각나 문의할 사항이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내가 먼저 호의적인 표현을 해서였을까 그 남성은 직책이 외국인 담당이냐고 물어봤고 나는 Social Service Personnel(공익근무요원)이며 내 직책은 군포시 내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출근시간 전 새벽에 영어공부를 하기위해 찾아갔던 근처 영어학원에서 시청에서 만났던 그 백인 남성을 만나게 되었고, 그는 그 때의 고마움을 표현하며 연신 What a Small World!(세상 참 좁군요!)를 외쳤다. 그리고 2-3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내가 수강하는 새벽반 영어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며 우리는 가끔 전날의 에피소드와 함께 커피를 마신다.

 처음에는 걱정만 넘치고 기대감이 없었던 공익근무생활이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동안 바쁘게 지내왔던 20대 초중반에서 벗어나 새로운 하루하루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 27살. 복무를 마칠 내년에는 28살이라는 늦은 나이가 되지만 지금 내 자리에서 느끼고 배우고 있는 많은 것들이 훗날 돌이켜보면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자리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어찌 보면 가장 많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던 민원업무라는 자리가 몇 명의 외국인들과의 마주침을 통해 새로운 동기부여를 가져오고 특별한 책임감을 느꼈으며 신비한 인연을 갖는 자리로 바뀌게 되었다.

 비록 현역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지만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에 있어서 너무도 자랑스럽고 지금의 내 열정에 감사하다. 또한 이러한 체험수기를 통해 즐거운 기억들을 회상하게 해주고 공익근무요원들에게도 자부심과 책임감을 고양시켜주는 병무청에도 감사를 전하는 바이다.(Konas) 
 
조훈식 (경기도 군포시청 민원봉사과)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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