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내사랑 윤순씨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2년도 공익근무요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으로 선정된 글임.(편집자 주)
성모동산의 겨울-봄-여름-가을-겨울-봄-여름-가을-겨울
시간이란 것은 항상 지나고 나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기억들로 남게 되는가 보다. 물론 끝내 다 못한 아쉬움도 남긴 채 좋은 추억이 되어 남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계바늘은 돌아간다고 표현하지만 시계 바늘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만 짹각 짹각 앞만 보고 간다. 그것은 억지로 다시 되돌리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그 시간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해야 하는 것들에 괴리가 생기지만 나중에는 뒤바뀌고 만다.
예를 들어 학창시절 그렇게도 놀고만 싶었고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공부는 하기 싫었지만 세월이 조금 흐르고 난 뒤에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은 것이 되어버린 것처럼, 나에게 공익근무도 해야만 하는 것에서 너무 하고 싶은 일이 되버렸다. 그래서 2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이제는 하고 싶어도 어쩌면 두 번 다시는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매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보내고 있으며 주말에도 시간이 된다면 요양원에 들려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갖으려고 한다. 또 소집해제 후에도 시간이 되는대로 들려서 봉사활동을 하고자 한다.
하얗게 눈덮힌 성모동산이 많이 낯설기만 하고 처음이라 모든 것들이 새로웠던 그 시간, 새로운 인연들로 다가온 요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과 직원들 그리고 같이 공익생활을 하게 된 공익요원 친구들, 시간이 지난 지금 내겐 너무나 소중한 인연들로 남게 되었다.
겨울의 문턱에서 4주 훈련을 마치고 2년이란 시간동안 복무하게 된 이곳에 처음 발길을 내딛었다. 성모동산을 뒤로하고 서있는 요양원 건물 아래로 주차장까지 고부랑길 눈치우기가 공익 근무 첫날에 다른 공익요원들과 함께하는 첫 일과였다. 같이 눈을 쓸고 퍼내고 제설작업을 하면서 처음 추억을 만들었다.
지금도 사진 한 장에 추억으로 남겨둔 그 날의 일들 만난지 얼마 안 된 어색함을 깨고 눈장난을 하면서 다같이 제설작업을 하며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는 기분 좋은 시작이 2년이란 시간동안 공익근무를 하면서 마지막까지 잘 할 수 있었던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 해 본다.
지난 2년이란 시간을 회상해 보며 수기에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처음 본 성모동산에 겨울, 눈이 녹고 새초록 옷으로 갈아입은 성모동산을, 만국기가 걸린 여름소풍날의 그 풍경들 그리고 단풍이 진 가을을 두해 보내며 정든 이 곳을 떠나려니 마음 한켠에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식당총각
어르신들 성함을 들으면 얼굴보다 먼저 그 분의 식이가 딱 떠오르는 나는 영양과에서 근무를 했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어르신들과 보내지 못했지만 매일매일 어르신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식당에서 식사하시는 어르신들께는 웃는 얼굴로 “맛있게 드십쇼.” 인사를 드리며 식판을 가져다 드린다. 그러면 내게 환하게 웃어주시고, 고맙다 하시는데 그럴때 나는 기분이 너무 좋다. 영양과 일은 몸이 많이 힘든 일이었지만 난 항상 기분좋게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매일 물청소를 하고 땀을 흘릴때 조금 힘들긴 하지만 난 그때마다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영양과 선생님들께서도 나를 많이 아껴주시고 챙겨주셨다.
식당에서 일하면서 어르신들께 직접적인 케어나 도움은 못드렸지만, 식판을 준비할 때 고기를 못드시는 어르신께는 따로 나물이나 김 같은 반찬을 놓아드리고 매운걸 못드시는 어르신, 밥을 많이 드시는 어르신, 고기를 좋아하는 어르신들을 챙겨드리면서 조금이나마 어르신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랬다. 어르신들 식사를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진식이와 일반식이를 준비하는 것 이다.
치아가 건강하시지 않은 어르신들은 반찬을 드시기 좋게 소화에 지장이 없도록 다진식이를 준비해드려야 하는데 일주일에 두 번씩 김치를 갈아서 준비를 하곤 한다. 또 다진식이를 드시는 어르신중에서도 고기는 그냥 드시는 걸 좋아하시는 분도 있기 때문에 되도록 챙겨서 드렸다.
또 직접적으로 케어를 하지 못하는 대신에 복도에서 내게 “총각, 나 좀 방에 데려다 줘.”이러시면 항상 기분좋게 침대에 모셔다드리면서 “어르신, 제가 이걸 많이 안해 봐서 잘 못해요. 이해해주세요. 불편하신데는 없죠?”이러면 어르신들 대부분께서 “알아, 식당에 있는 총각이잖아. 편해, 좋아.”해주신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어르신들께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곤 한다.
또 출퇴근때마다 인사를 해주시는 어르신들, 내가 찾아가서 인사드리기도 하지만 날보면 먼저 반가워 해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힘이 났다. 내 공익생활에 가장 힘이 되주신 윤순할머니를 비롯해서 날 좋아해주시고 보면 웃어주시는데에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좀더 챙겨드릴게 없나 많이 생각도 해보면서 화투라도 있으면 덜 심심하시겠다는 박금순할머니께 화투를 구해다 드리고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에 많이 무료하셨을텐데 다행이라 여겨졌고, 담배곽을 모으시는 김석민어르신께는 중국담배나 이쁘고 특이한 담배곽들을 모아다 드렸다. 의사표현이 조금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크게 웃으시며 너무 좋아하시는데 나도 그래서 그런지 담배를 살 때 마다 새로나온 예쁜 담배가 있나 하고 살펴보곤 한다.
어느날 한정판으로 나온 담배곽을 가져다 드렸더니 식탁에서 김석민 어르신과 장태현 어르신이 서로 주고받으시면서 신기해하시며 좋아하시는데 나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또 우리 장태현 할아버지는 고기를 좋아하셔서 자주 챙겨드렸는데 어느날은 내게 용돈을 주시는게 아닌가? 처음엔 안된다면서 손사레를 쳤지만 당해낼수가 없어서 그돈을 받아서 스테이션에 있는 성금모금함에 넣었다. 이게 진짜 할아버지의 마음에 대한 제일 큰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노란저고리를 입어 보는게 소원이라던 우리 강윤순할머니 생각에 노란티셔츠를 사면서 장태현할아버지 옷도 사다드렸는데 치수가 맞지 않아 못입으셔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또 밥을 조금드리면 역정을 내시는 정난희할머니께서 어느날 몸무게를 재셨는데 80kg이 나오셨다.
농담으로 “할머니, 저보다 많이 나가시면 어떻게요? 이제 밥 조금 드려야겠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씨익 웃으시며 “그래도 많이 줘야돼.”라고 하셨다. 정성스럽게 밥을 비벼 드리면 좋아하시는 석민어르신, 밥을 드시고도 또 모자르신지 계속 식당에 들어오시려는 영남할아버지, 휠체어를 타시고 볼때마다 웃으시며 손을 흔들어 주시는 덕진할아버지, 충성을 하시는 응천어르신, 노래를 참 좋아하시는 현영할아버지 외에도 정말 많은 어르신들이 계시는 요양원의 식당, 이젠 내게 그리움이 되어버릴테지... 그리고 하루종일 나를 따라다니는 우리 강윤순할머니, 내가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마치 자식 보듯이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하루 종일 바라보고 계신다.
내사랑 윤순씨
나의 공익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강윤순할머니와의 이야기다. 2년이란 시간동안 내가 공익근무를 하면서 힘이 될 수 있었고 많은 추억을 남기게 해주셨다. 할머니는 34살이시다. 할머니께서는 치매환자이시기 때문에 “할머니 몇 살이에요?” 이렇게 여쭤보면 당신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서른넷이지요 뭐.”그리고선 할머니는 나를 종개비오래비라고 부르신다.
사실 할머니께서는 89세이시다. 강윤순할머니께서 나를 좋아하시고 따라다니시게 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먼저 할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좋아해서 그런지 이제 할머니는 나를 자식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걱정을 많이 하신다. 소집해제 하고 나서 내가 없으면 할머니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시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다. 할머니는 머리카락 자르시는 걸 싫어하셨는데 어느날은 내가 모시고 나가서 이발을 하시고 같이 두손 꼭 잡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요양원에 들어 온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이발하시는게 싫으시면서도 내가 이쁜 댕기머리하자고 하면 고맙게도 이발을 하신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내가 출근을 하지 않는 날에는 지하에서부터 3층까지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시고 나를 찾아다니신다고 한다. 내가 가면 “드디어 왔구나”이러시면서 얼마나 행복해하시는지 정말 몸둘바를 모르게 고맙고 너무나 사랑스럽다. 할머니랑 시간을 보낼때면 할머니가 노래도 부르시고 나랑 같이 손뼉놀이도 하신다.
또 할머니께서 숫자를 세실 때 열다섯 다음에 열아홉 이런식으로 제대로 못세셨는데 나와 야구공으로 공놀이를 하시면서 숫자를 외우시더니 이제는 1부터 140까지는 틀리지 않고 혼자 외우신다. 처음 할머니를 뵈었을때 보다 많이 밝아지시고 기억력도 좋아지셔서 다행이다. 어느날은 당신께서 노란색 저고리를 한번도 입어본적이 없으시다고 해서 노란색 티셔츠를 사다드렸더니 너무나 행복해하시고 좋아하시는데 그 모습에 내가 더 행복했다.
어느 날은 또 할머니가 내 핸드폰 알림음을 주의깊게 들으셨는지 내 핸드폰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나를 보시고서는 핸드폰 알림음을 따라하시는데 정말 할머니가 너무 이쁘셨다. 같이 밥도 먹고 얘기도 하고 노래도 같이 부르고 공놀이도 하고 정말 좋은 시간들을 많이 보냈고 나도 주말에 집에 있다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찾아간 적도 많았다.
비록 내가 소집해제를 하게 되면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되겠지만 그래서 벌써부터 눈물이 나지만 꼭 한달에 한번 이상은 할머니를 찾아 뵙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할머니의 보호자는 아니지만 할머니의 좋은 인연으로 할머니가 행복하게 사시는 것을 기도할 것이다.
소집해제 후 사회에 돌아와서도 이 소중한 인연들에 감사하며 내가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각오로 매사에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추억 그리고 성골롬반의 집에서의 날들...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Konas)
김종덕 (성골롬반의 집)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안보칼럼] 강한 국군이 곧 평화의 조건이다](/img_data/article/260930/260930_6303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