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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할머니를 위한 기도

Written by. 이정훈   입력 : 2012-12-11 오후 12: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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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2년도 공익근무요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으로 선정된 글임.(편집자 주)

 외로워 외로워서… 119 노크하는 할머니, 독거노인 100만명 ‘쓸쓸한 노후’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김모(78) 할머니는 1주일에 한번씩 119에 전화를 건다. 할머니는 지병인 당뇨를 앓고 있긴 하지만 특별히 몸이 아프지 않을 때도 “배가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구급대원들을 부른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할머니가 꾀병을 부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를 구급차에 태워 인근 병원까지 데리고 가는 동안 “밥은 잘 챙겨 드세요”, “요즘 기분은 좋아요” 라고 물으며 말동무가 되어준다.

 김 할머니처럼 119에 아프다는 거짓신고를 하고 출동한 소방 구급대원들을 만나 위안을 얻는 외로운 노인들이 늘고 있다.

 “할머니 오늘은 어디가 편찮으세요?” “가슴이 마구 뛰어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어. 병원 좀 갑시다.” “어제 갔을 때 의사선생님이 그 정도는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어제도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조금은 불평이 섞인 듯한 반장님들의 반응이 이해가 갑니다. 의사 선생님이 별다른 처방이 없다고 하지만 할머니는 막무가내로 병원을 고집합니다. 구급대원 반장님들 사이에서는 속칭 ‘단골’로 통하는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는 매일 병원으로 출근 도장을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 했습니다. 어느 날은 배가 더부룩하다며, 어느 날은 머리가 아프다며 구급차를 이용하여 병원을 찾는 할머니에게 의사 선생님은 오랜 약복용에 따른 후유증이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셔도 할머니는 도통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당뇨와 심혈관 질환으로 병중이라고는 하지만 매번 사소한 일로 119를 찾는 할머니의 신고 지령서를 볼 때면 불편한 마음이 생겨나곤 했습니다.

 여든을 앞둔, 홀로 사는 노인이 지병을 안고 사는 게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노환을 앓다 돌아가신, 손자에게는 덧없는 사랑을 주셨지만 쓸쓸히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를 일껏 이해할 수 있는 나름의 구실을 찾아 내 마음을 다독이면 할머니는 어느새 내 마음에서 멀리 달아날 구실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눈에 헛것이 보인다는 등, 옆구리에서 소리가 난다는 등 상식 밖의 신고가 이어졌습니다. 할머니를 이해하고자 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습니다. ‘응급환자를 위해 사소한 일로 119 신고를 자제해주세요.’라는 반장님의 부탁이 무색하게 할머니는 계속 신고를 하셨고, 저도 모르게 할머니에 대한 미움의 마음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한가한 날은 좀 나았습니다. 하지만 구급출동이 연달아 있어 피로가 쌓여있는 날에 할머니와 부딪힐 때면 서운한 마음이 생기곤 했습니다. 살도 많이 빠지시고, 체구도 작으시지만, 비좁은 계단을 통하여 할머니를 옮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서운함이 커져갈수록 대화는 없어지고, 물건 나르는 일인 것처럼 무미건조한 할머니와의 병원행이 이어졌습니다.

 여름에 시작된 할머니와의 신고가 겨울을 바라보는 시점까지 왔을 때였습니다. 아침부터 이어진 출동으로 몸이 지쳐갈 무렵 할머니의 신고를 받았습니다. 여느 때처럼 대수롭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할머니는 구급차에 오르시자마자 숨이 가쁘다며 산소를 요청했습니다.

 평소에 구급차에 타면 산소를 요청했던 할머니였기에 저는 할머니를 평소처럼 병원에만 모셔다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으로 이송하는 도중 할머니의 신음소리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반장님들이 최선을 다해 응급처치를 해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할머니에게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와 저는 마지막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만남인지 알지 못한 채... 할머니를 응급실에 모셔놓고 나온 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바쁜 일상에 쫓기고, 출동에 쫓기다 보니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차츰차츰 옅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잊힌 줄 알았던 할머니의 기억이 어느 순간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슬슬 신고가 들어올 때가 됐는데... 혹시 그때 이후로 퇴원을 못하시고 계신 것은 아닐까.’

 응급실로 이송하던 도중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던 할머니의 신음소리가 귀에 아른거렸습니다. 다른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할머니를 이송했던 병원을 찾은 날, 저는 할머니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 아들은 현재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일이 바빠 1년에 한 번 밖에 보지 못하는데 곧 그 날이 다가온다고 한 일, 아들을 만날 때까지만 숨이 붙어 있게 해달라고 한 일, 아들이 걱정할까봐 아들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도록 부탁한 일...’

 간호사는 할머니가 며칠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사라졌고,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사연을 생각해보자 할머니의 조금은 독특했던 행동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아들과 만날 때까지 어떻게든 견뎌보려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과의 싸움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맞서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 그동안 119를 불렀던 일들이 할머니에게는 정말 간절한 순간이었겠구나라는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할머니에 대해 생각할수록 죄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 죄송한 감정이 생기는 원인이 자주 신고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할머니를 귀찮아했던 나의 행동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출동에 임하던 어느 날, 병원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감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신체검사를 받고 사회복무요원으로 판정을 받았을 때 다른 친구들과 달리 군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겠다며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이 편하게 군 생활을 하는 것 보단 힘들게 군 생활을 하더라도 보람된 일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방서를 선택했었습니다.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할머니를 보내드리면서 저는 제가 왜 소방서의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선택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소방서를 선택했을 때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할머니를 보내드렸을 때의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다시는 그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구급출동을 할 때면 반장님들을 도와 더욱 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은 응급구조사 자격증도 없고, 응급처치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습니다. 반장님들이 응급처치 하시는 것을 도와드리고, 들것을 옮기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반장님들이 환자를 위하고, 응급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반장님들을 도와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할머니를 위해 기도합니다.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신 할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하늘나라 생활을 하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제가 사회복무요원 업무를 마치는 순간까지 앞으로 할머니와 같은 분들이 없게 해달라고...(Konas)

이정훈 (전주덕진소방서)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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