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병 롤 모델 수기집〕해부학 교실에서 빛난 예비역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2012년 8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등 현역병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에 실린 내용임. 이번 수기집은 실제 사례를 통해 현역병 모집제도의 장점을 소개하고, 입영대상자 스스로 복무 할 군과 복무분야를 선택해서 지원 입영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편집자 주)
벌써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예과(수의학 전공) 2학년이 된 나는 본과에 진급하기 전에 군 복무를 마치기로 결정했다. 부모님도 동의하셨다. 맞을 매는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그러나 나는 군 복무를 꼭‘맞을 매’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군 복무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아라면 반드시 치러야 할 의무인 것은 사실이지만 내 앞의 선배들 덕분에 나는 무사히 자라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지 않은가? 그러니 이제 나는 그 선배들을 대신하여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여 내 후배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군 복무가 가급적 의무를 다하면서도 나의 진로에 부담이 되기보다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나는 대학을 마친 뒤 대학원 진학을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의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본과 학업 중이나 본과를 마치고 난 다음 군 복무를 하는 것은 공부의 지속성을 끊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과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입대를 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나는 공군에 지원하기로 하였다. 특기병에 지원한 데는 몇 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군 입대를 지원하면 학교를 휴학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시기에 군 입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어떤 특기가 있다면 그 특기를 살려 입영하면 군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나에게도 유익하게 2년을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훈련소 성적으로 자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공군의 큰 매력이었다. 물론 병과는 내 전공과 최대한 가까운 의무병과를 선택하였고 다행히 합격을 하여 2007년 12월 24일 진주 공군훈련소에 입영하였다.
입대할 때를 돌이켜 보면 내가 시간적으로 좀 너무 무리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학기말고사를 치르고 이틀인가를 쉬었다가 머리를 깎아야 했던 것이다. 그 2~3일이라는 시간은 절친들과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떤 친구들은 휴학을 하고 두세 달씩 할 일 없이 허송세월을 하다가 군 입대를 하는데 나는 정말 알토란 같이 학업과 군 복무를 연계시킬 수 있었다. 지원입영은 이렇게 자신의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하여 군 생활을 가장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매우 큰 장점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군의학교에서는 내가 예상하고 조금은 기대했던 환자들에 대한 진단이나 처방 혹은 치료를 배우지는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런 본격적인 환자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의학을 공부한 군의관들이 하는 것이고 의무병이 하는 것은 병원의 간호사들이 하는 업무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의학교에서는 야전에서 환자발생 시 치료할 수 있는 장소까지 후송하기 위해 환자를 들것에 실어 최대한 안전하게 옮기는 것을 훈련하는 환자이송, 응급환자 발생 시 대처, 그리고 골절 시 부목을 이용하여 붕대감기, 혈압 측정, 근육 및 혈관 주사, 수액 투여, 상처 소독 등의 간호술을 공부하였다.
그 당시 나는 내가 군의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앞으로 전공할 동물들의 신체를 다루는 수의학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내가 생각해도 매우 진지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했었다.
전역 후 내가 군 의무병으로 훈련받고 복무한 것이 도움이 된 경험은 두세 가지 정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군 의무병 복무가 도움이 된 경우는 학교에서 본과 공부를 할 때였다. 본과 1학년이 되면 ‘동물 해부학 실습’이라는 과목이 있는데, 실제로 동물의 사체를 가져다 놓고 헤쳐 보면서 신체의 구조와 기능 따위를 공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생물체의 내부를 열고 들여다본다는 것에 대하여 일단의 호기심과 함께 은근한 두려움을 갖기 마련이다. 그것이 심한 친구들은 처음 해부학 실습을 하고 나면 그 역겨움을 견디지 못하고 며칠간 밥을 먹지 못하거나, 심지어 전과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군의학교에서 인체에 대한 개략적인 공부를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자대에 배치 받은 후에는 군의관님을 도와 환자들에게 주사도 놓고, 피가 흐르는 상처를 다루기도 하고, 부러진 골격에 응급처치를 하기도 한 경험이 있어서 동물의 사체를 다루고 시뻘건 피를 보는 것이 그렇게 낯설거나 두렵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해부학 실습 시간이 되면 자연 동물의 몸통을 해부하거나 다루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자의반 타의반으로 해부학 교수님의 조교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덕분에 학점은 당연히A+를 받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후 병리학, 내·외과 실습 같은 과목을 공부하는 데도 확실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음으로는 사람의 질병을 다루는 의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애완동물, 특히 고양이를 좋아하여 수의학과로 진학하게 되었고, 말 못하는 동물들의 질병을 돌보아주는 훌륭한 수의사가 되겠다고 생각을 하였었다.
그런데 의무병으로 근무하면서, 비록 그것이 큰 병은 아니지만 의무실을 찾아온 아픈 병사들의 상태를 살피고 처방하여 치료하는 군의관의 역할을 보면서 수의사보다 의사라는 직업이 훨씬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군의관님으로부터 사람의 질병을 고치는 의학의 소중한 가치에 대하여 이따금 이야기를 듣고 의학에 대하여 관심도 생겼으며, 가능하다면 나도 의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여건이 허락되면 반드시 한 번쯤 의학에 도전해 보아야겠다고 내 장래 진로에 대한 전환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로 의학에 도전을 하게 될지 아니면 수의학의 길을 쭉 걸어가 동물들을 돌보는 수의사가 될지는 아직 고민 중이지만 내가 공군 위생병을 지원하여 근무한 것은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인간이 되었든 동물이 되었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하여 절실하게 느끼고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마지막으로는 일상생활에서 응급조치에 대한 마인드 및 준비이다. 제대 후 지리산 종주산행을 했었다. 예전 같으면 여행을 하거나 산행을 하거나 간에 우선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첫째가 먹을 것이고 그 다음이 옷, 이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군 복무 후에는 내가 2년여 동안 보고 겪어온 것이 있어서 그런지 특히 산속과 같이 응급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곳으로 떠날 때는 최소한 기본적인 구급약품은 꼭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약국에 가서 내복 위장약부터, 상처 소독약, 압박붕대 따위를 준비하여 배낭 맨 밑바닥에 고이 모셨다. 부디 산행에서 이 구급약품들을 열어볼 일이 없기를 빌면서. 우리는 구례에서 노고단을 거쳐 천왕봉에서 인증 샷을 멋지게 찍고 중산리로 하산을 하던 중, 한 아주머니가 아저씨에게 기대어 절뚝거리며 내려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주머니가 운동화를 신었는데 내려오는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손바닥과 팔꿈치에 찰과상을 입어 피가 흘렀고 발목을 삐어 발 딛기가 힘들다고 하였다. 찰과상은 심하지 않았는데 문제는 접질린 왼쪽 발목이 문제였다.
나는 배낭을 풀어 소독약과 붕대를 꺼내어 일단 상처가 난 손바닥과 팔꿈치에는 소독제를 발라주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부목으로 쓸 만한 나뭇가지를 잘라 압박붕대를 사용하여 발과 다리를 단단히 고정하여 주었다. 그리고 스틱도 빌려 드렸다.
아주머니는 그런 간단한 치료로 최소한의 활동력을 회복하여 아저씨에게 한쪽 어깨를 기대어 무사히 중산리 주차장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물론 두 분의 배낭은 아직 젊은 우리 둘이 나누어 짊어지고 조금 힘들게 내려오기는 하였지만, 내려와서 아저씨는 우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정말 성대한 만찬을 대접하여 보답해 주었다.
위생병으로 근무한 보람을 마음 한 가득 느낀 경험이었다. 이것은 군 복무를 단지 의무로만 생각하지 않고 학업·진로와 연관하여 병과를 선택하고 교육과 훈련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여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Konas)
박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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