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병 롤 모델 수기집〕춤추는 조리병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2012년 8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등 현역병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에 실린 내용임. 이번 수기집은 실제 사례를 통해 현역병 모집제도의 장점을 소개하고, 입영대상자 스스로 복무 할 군과 복무분야를 선택해서 지원 입영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편집자 주)
나는 조리를 전공으로 하여 2008년 9월 입대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상당히 어렸던 것 같다. 군대를 가는 것이 정말 두려웠는지 입영을 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입영하는 장소가 경상남도 진해였는데 어머님께서도 아들을 보내는 것이 걱정 되셔서 머나먼 서울에서부터 같이 와주셨다. 그때 어머니를 보면서 눈물을 참으려 애써봤지만 하염없이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훈련소에서의 첫날밤은 누구나 그렇듯 잠이 오질 않았다. 서울에 계신 부모님 생각과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여자 친구에 대한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샜다. ‘앞으로 2년을 어떻게 보내지?’, ‘군대는 선임들이 무섭다는데 어떡하지?’ 등등 여러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고 밤을 샜던 그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이 지났다.
지금은 그때 생각을 하면 그립고 웃음이 날 정도로 여유로워 졌다. 나는 해군 2함대 부천함 조리병으로 병장만기 제대 후 대전에 있는 우송대학교 글로벌한식조리학과에서 한식을 전공하고 있다. 나는 입대 전에도 조리학과 학생이었지만 실력은 형편없었다. 내가 조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단지 학과이름이 조리과여서 지원이 가능했었기 때문이었다.
군대에 입대해서 처음 조리병 기초훈련 때만 해도 나는 조리를 전공하는 친구들에게 비교도 안 될 만큼 못했다. 입대 전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칼 한번 제대로 만질 줄 몰랐었기 때문에 병과교육 동기들과 기초조리를 공부하면서도 긴장을 많이 했다.
다른 동기들은 돌려깍기도 잘할 뿐더러 자격증도 다량 취득한 상태였으며 조리지식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내 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자대 배치후 조리를 못하여 선임들에게 혼이 나면 어떡할까?’,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긴장도 하고 동기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병과교육이 끝난 후 나는 2함대 부천함에 자대배치 받게 되었다.
당시 요리를 잘 못하는 상태에서 흔들리는 배안에서 조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자대배치 후 처음으로 했던 음식은 바로 무생채였다. 조리초보인 내게도 병과교육 때 배웠던 메뉴여서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병과교육시 만들었던 양과는 너무 많은 양이어서 한번 기가 죽었고, 또 황천(비 바람이 심한 날씨) 때문에 함정이 어찌나 흔들리는지 칼질을 곱게 하기가 힘들었다.
지금도 친구나 지인에게 “황천 때문에 함정이 심하게 요동쳐 국통이 주방에서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여 국이 천장에 닿고 또 밥을 먹을 때에도 식판이 좌우로 흔들려 꽉 잡고 먹었다.” 또 “칼질을 할 때면 함정이 흔들려 마치 춤추는 것처럼 요리를 했다.”라고 하면 모두들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믿기 힘들만큼 춤을 추며 첫 번째 요리를 마치고 풀이 죽어 있었지만 음식을 먹은 동기들이 맛있다고 해주어서 한결 부담이 없어졌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도 어느덧 첫 번째 후임을 맞게 되었다. 내 조리 실력도 그 동안 선임들에게 혼나가며 배워서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 온 후임에게 저번에 내가 미션을 받았던 것처럼 무생채를 시켰고 나는 수제비를 만들었다.
내 후임은 밖에서도 요리를 전공하고 자격증도 많이 있었다. 무생채도 곧 잘 만들었고 흔들리는 배안에서도 균형을 잘 잡으며 일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후임이 만든 무생채가 아닌 내가 만든 수제비였다. 수제비의 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죽을 넘어서 떡을 만들어 버렸다. 나 때문에 모든 부대원들은 떡이 되어버려 국물이 하나도 없는 수제비를 먹어야 했고 나는 후임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후임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앞섰다.
이 일로 인해 나는 너무나 창피한 나머지 조리는 내 전공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고, 음식도 대충대충 만들고 후임도 미워지고 군 생활도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휴가 나갔는데 여자 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듣고 하루하루를 송장처럼 살았다.
이를 극복하게 된 것은 두 명의 은인 같은 선임이 있었는데 그 두선임은 나이가 같았으나 1달차이로 선후임이 된 사이였다. 둘은 요리를 전공해서 항상 경쟁을 했고 또 틈이 날 때마다 요리 공부를 했다. 나는 그 분들에게 자극을 받았고 다시 요리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기계로 깎아도 되는 감자나 과일들을 돌려깍기하여 연습을 했고 후임을 시켜도 되는 기본적인 채썰기도 내가 직접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고 두 명의 선임은 전역을 했고 나는 말년 병장이 되었다. 나는 선임처럼 매일 조리 공부를 했다. 그래서 새로운 메뉴도 개발하여 부대원들에게 평가를 받고 또한 병장이 되어서도 새벽에 칼질연습을 계속 하였다.
전역 후 나는 전공이 더욱 재밌어졌다. 학교에서 개최하는 조리대회는 모두 나갔고 좋은 성과도 있었다. 또한 더 자신감이 생겨 교외에서 하는 대회에도 참가해 1등을 했다. 최근에는 대전에서 개최되었던 국제대회 WACS에 나가서도 은메달을 수상했다.
군대는 내게 무엇보다도 큰 자신감을 주었고 그것을 가지고 지금도 열심히 조리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아직 결승점이 아니라 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어떤 위치에 있을지 무엇을 할지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 요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군대에서 요리를 배웠고 요리를 시작했고 요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번 수기 공모전을 통해 군 생활을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이렇게 나에게 요리에 대한 재미와 자신감을 준 군 생활이 너무 그립고 그때 두 명이 선임이 너무도 생각난다.
나는 앞으로 열정을 가지고 조리공부를 하여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있다. 영국에 ‘제이미 올리버’라는 스타쉐프가 있는데 그처럼 성공하여 군부대의 급식과 영양관리 그리고 조리병 교육을 하고 싶다.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언젠가는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군장병들에게 내 손으로 만든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 내 꿈이다. 필승!(konas)
김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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