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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은 政變인가, 革命인가?"

5·16혁명 52주년 기념세미나.. "역사는 법률적 잣대로 평가할 수 없어"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3-05-16 오후 5: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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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正熙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혁명적 변화를 일으켜 민주복지 국가의 기틀을 만들었다.”

 5·16군사혁명 52주년을 맞아 한국논단과 뉴데일리 공동 주최로 16일 오후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는, 쿠데타는 무조건 나쁘고 혁명은 무조건 좋은 것인가?란 질문을 던지며 “폭력으로 현존질서를 뒤집어 엎는다는 점에선 같지만 문제는 결과”라며 이같이 말했다.

 ▲ 한국논단과 뉴데일리는 16일 오후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5·16군사혁명 52주년을 맞아 기념 세미나를 개최했다.ⓒkonas.net

 즉 “國利民福(국리민복)에 기여한 쿠데타는 좋은 것이고, 반하는 혁명은 나쁜 것”이기 때문에 러시아 혁명은 나쁘고, 5·16 쿠데타는 역사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또 5·16 군사혁명이 4·19 학생혁명을 배신했나?란 질문에 대해선, 박정희의 「국가와 혁명과 나」에 기록된 “4·19혁명은 피곤한 5000년의 역사, 절름발이의 왜곡된 민주주의, 텅 빈 폐허의 바탕 위에 서서 이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라는 명제를 던졌고 이 명제에 해답하기 위한 '역사에의 민족적 총궐기'가 5·16이다.”란 글을 인용해, “4·19혁명을 통해 민주주의의 열망을 이루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기아와 부패를 해결할 수 없어 부국강병을 위해 5·16 혁명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장준하 씨가 ‘思想界’ 권두언에서 밝힌 “4·19 혁명이 立憲政治(입헌정치)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민주주의혁명이었다면, 5·16 혁명은 부패와 무능과 무질서와 공산주의의 책동을 타파하고 국가의 진로를 바로잡으려는 민족주의적 군사혁명이다.”란 글이 5·16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 대표는 5·16 군사혁명의 본질을 ▲봉건적 신분질서와 가치관을 부수고, 국가를 근대적·자유민주적·국제적·개방적 시스템으로 바꿨고, ▲오랫동안 文民(문민)정치세력으로부터 소외되었던 군인, 기업인, 상인, 과학 기술자 집단이 처음으로 역사 발전의 주체세력으로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정희의 경제개발 노력이 5·16혁명에 대한 죄의식을 씻기 위해서란 주장에 대해 조 대표는 “박정희는 5·16혁명과 유신조치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으며,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닌 한국식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결단이었다고 확신했다”며, 5·16과 유신이 없었으면 삶의 질 세계 12위, 민주주의 성숙도 22위의 한국은 ‘성립 불가능’이라고 주장했다.
  
 또 “역사적 평가는 총체적이고 事後的(사후적)이므로 법률적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며, 5·16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역사적-국제적 비교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16이나 유신조치의 전과 후를 비교할 때 나라 형편과 국민들의 삶이 좋아졌고, 역사적 발전을 위한 희생, 특히 인명 피해 규모가 변화의 규모에 비해 최소이고, 그 시대 비슷한 나라(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대만)와 비교시 박정희의 유신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이 동급의 나라들을 앞서기 시작했으며, 북한과 비교하면 박정희 시대는, 천당과 지옥 수준으로 갈리는 계기였다고 비교 평가했다.

 특히 전쟁 중인 나라, 어린 민주주의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안보를 위해 제한할 수 있으며, 가난한 나라가 서구식 민주주의를 모방하면 거의가 만성적 정치불안으로 국가발전이 불가능해지므로 부국강병 위에서 안정적으로 민주주의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先 경제건설 後 민주건설이 옳은 전략이었으며, 박정희 개발 모델은 중국과 월남 등 개도국의 성공적 발전 모델이 돼 인류공영에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작년 총선과 대선에서 5,253만 8,257명이 투표해 새누리당과 박정희의 딸에게 국정 운영권을 준 것은 ‘反헌법적 종북좌파 세력은 안 된다, 한국 현대사를 긍정하라’는 국민의 결단”이었으며, “박정희는 민주주의의 우상화에 반대한 자주적 사상가였고, 그리하여 이승만과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2大 건설자가 되었다”며 한국 현대사의 주인공인 이승만과 박정희를 긍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세미나 사회를 맡은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는 “5·16은 쿠데타의 형태나 혁명의 형태로든 일어날 것이 일어난 역사적 필연이었다”면서, “5·16 부정하는 세력들은 쿠데타로 비하하려 하지만, 5·16으로 한국은 환골탈퇴하고 상전벽해를 이루었으므로 쿠데타인지 혁명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날 세미나를 주최한 한국논단 이도형 발행인은 인사말에서, “5·16은 정권획득의 수단이 아닌 조국의 앞날을 생각한 구국의 결단이었다”며, “역사의 판단을 기다리기 전에 5·16 당시의 상황을 눈으로 보고 겪은 우리가 (5·16을) 재평가해야 한다”며 세미나 취지를 밝혔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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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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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18 오후 10: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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