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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당신들마저 안계시면 앞으로 이 나라는..."

〔인터뷰〕美 오레곤주 6·25참전 국가유공자회 윤영목 회장을 만나다
Written by. 이영찬   입력 : 2013-06-28 오후 5: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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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 8∼9월, 나는 육군 제2사단의 지원임무를 맡은 포병 제18대대 C포대 관측장교로 활약했으며 당시 2사단은 철의 삼각지로 알려진 김화·철원 부근의 전선 방어임무를 맡고 있었다. 9월1일 중공군 1개 연대 병력이 인해전술로 735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일제히 공격을 감했다. 21:30분부터 시작된 교전은 22:00시를 기해 전면전으로 확대되었으며 이어 최전방 소대 정면에서 백병전과 함께 일부 소대진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정이 지나도록 적의공세는 계속됐고 다음날 새벽 1:00시경에는 적 일부가 중대 OP까지 침투했다. 이때 대대장이 중대장(김영국)에게 사수(死守) 명령을 내리자 중대장이 적이 고지정상에 와 있으니 자신의 생사에 관여치 말고 고지정상을 향해 집중 포사격을 해달라는 최후 요청을 해왔다. 중대장이 적진속에 뛰어드는 치열한 전투까지 벌였지만 아쉽게도 중대장은 전사하고 735고지는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아침 6:00시를 기해 사단장(함병선)이 6중대 병력을 동원 735고지 재탈환작전을 펼쳤다. 나는 대대 OP에서 美 전폭기의 목표유도와 한미양군 포병 부대 사격을 조정하는데 일약했으며 6중대의 탈환작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6중대의 역습이 성공리에 끝나고 얼마 후 김영국 중대장(중위)의 시신이 대대 OP로 옮겨왔다. 나는 그 시신을 목격한 순간 눈물에 앞서 나 자신의 죄책감으로 일종의 실신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생전에 나에게 그렇게도 포 지원을 잘해 달라고 부탁하던 동기생 전우를 구해내지 못한 죄책감으로 나는 오늘날까지 그때 상황을 잊지 못하고 있다.”

 6·25전쟁 63주년을 맞아 지난 25일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행사에 초청돼 모국을 방문한 재외동포 6·25 참전용사 美 오레곤 6·25참전 국가유공자회 윤영목(83) 회장이 28일 오후 숙소인 잠실롯데호텔 룸에서 차분하면서도 때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들려준 내용이다.

▲ 인터뷰 후 방문단으로 같이 온 이성근 옹(86)과 6.25전쟁 관련 사진을 보며  당시의 전투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美 오레곤 6·25참전 국가유공자회 윤영목(83) 회장(왼쪽). ⓒkonas.net

 이어 윤 회장은 초청 방문기간 동안 판문점, 3땅굴, 전쟁기념관 등을 견학하고 발전된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감회를 느낀다며 “6·25전쟁에 참전한 우리 노병들은 철저한 반공애국 정신 교육을 받고 그것을 실천했다”면서 “후세들도 그러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정전 60주년을 맞는 오늘날까지 무력도발을 일삼고 적화통일을 술책을 포기하지 않는 現 북한체제는 대한민국의 주적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며 “우리 참전 노병들은 대북 관념과 안보 개념 면에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음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는 또 한국의 안보상황과 관련해 한국사회는 물론 해외 동포 사회에서도 일부 친북, 종북인사들이 활약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국가보안법이 유명무실 하다”고 지적하고, 아울러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으로서는 너무나 과도한 자유보장”이라며 한국식 민주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종북세력의 자유스런 활동 ▲일부 종북 국회의원들의 국회입성에 따른 국가기밀 누설 가능성 ▲애국심과 국가정체성 교육 결여 ▲전교조의 반국가적 교육방법에 대한 방관 등은 한국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안보 상황이라며 북한체제의 모순과 후진성에 대한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또 해외동포를 위한 정부의 활동으로 “대한민국 출신 해외거주 동포들을 위한 나라사랑 안보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미국에도 종북 골수분자들이 선전과 세력확장에 몰두하고 있어 이들의 활동을 저지 차단할 수 있는 정부 대책안이 고안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한국의 자질미달 정치인들의 추태(국회의원의 난투극, 기물파괴, 인신공격 등)는 세계각지 시청인들에게 웃음거리이자 동포들에게는 큰 수치거리가 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재발방지의 대책 강구”말을 덧붙였다.

 이날 자리에는 윤 회장과 같이 오레곤 대표단으로 방문한 재일학도의용군 1진 인솔 책임자를 맡았던 이성근(86) 옹도 함께해 6·25전쟁에 대한 아픔과 조국의 안위, 미래를 생각하는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인터뷰를 마치자 윤 회장은 외부로부터의 걸려온 전화를 받고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6·25전쟁 당시 생사를 함께 했던 동기인데 내가 미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만나보고 싶어 하니 시간을 내야할 것 같아. 하긴 이번에 못 보면 살아생전 볼 수 있다는 기약은 없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기생 7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3명밖에 안 남았어. 나도 떠나는 시기가 언제 될는지 몰라.”

 순간 기자의 가슴은 숨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빠졌을 때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이 분들... 도움 받던 나라에서 경제강국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워 놓으신 이 분들... 예나 지금이나 조국의 평화와 안보만을 생각하고 있는 이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위해 우리가 해드린 것이 무엇인가?

 이제 이 분들마저 돌아가신다면 과연 우리가 그 자리매김을 그만큼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그 분들의 희생에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美 오레곤주 6·25참전 국가유공자회는 2006년 창립 이후 매년 6월 오레곤주 포트랜드 남쪽에 있는 Wilsonville시 공원 한국전참전비 앞에서 지역 미군참전전우회 회원들과 행사를 같이 하고 있다.ⓒkonas.net

 美 오레곤주 6·25참전 국가유공자회는 2006년 4월25일 오레곤 6·25 참전동지회로 발족했다. 창립당시 회원수는 50명이었으나 지금은 34명이 지역 미군참전전우회 회원들과 모든 행사를 함께하며 전우애를 다지는 동시에 한미우호와 친선에 앞장서서 활동하고 있다.

 윤영목 회장은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나 일제식민지 때 양친을 따라 만주 요녕성 개원(開原)으로 이주했다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군에 자원입대해 포병간부후보생 교육을 받고 육군 포병 소위 임관과 동시에 포병 제18대대 관측장교로 부임하면서 전투에 참전했다.

 1952년 이후 미국 Oklahoma주 Fort Sill소재 美 육군포병학교 초등군사반과 고등군사반 과정을 수료하고 육군 20사단, 2군사령부에서 근무한 후 1956년 육군 포병 소령으로 예편했다.

 이어 유학길에 올라 Michigan 주립대학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Colorado주 Longmont소재 농업연구소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현지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봄방학 기간 중 애국·역사 인식을 위한 ‘Living History’ 강연도 하고 있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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