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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을 되돌아보며

전쟁을 지휘했던 지휘관은 세상을 떠나지만 전사는 항상 남게 마련 다시는 베트남전과 같은 불행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Written by. 전광호   입력 : 2013-12-16 오전 9: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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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12.16일 국방일보 16면 '오피니언'난에 게재되었음(편집자 주) 

지난 10월 4월 베트남의 전쟁 영웅 보 구엔 지압 장군이 10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에게는 적장이었고 그나마 그 이름을 희미하게 기억하던 사람들마저 “그 사람이 여태 살아 있었어?”라는 질문이 나올 만큼 그는 철저하게 ‘잠시’ 잊혀졌던 인물이지만 그의 이름은 결코 세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비롯해 수많은 국가의 군사학교에서 그의 전술과 전략을 연구하고 그를 20세기 전쟁 영웅으로 꼽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을 정도로 그는 세계 전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도 과오가 있는 사람이었고 특히 남베트남 대통령 선거를 맞아 벌인 대규모 공세와 유명한 구정 공세는 전술적으로 결코 성공한 작전은 아니었다. 그러나 구정 공세는 미국 내에서 반전 여론에 도화선이 된 사건이니만큼 전술적 차원은 차치하고라도 전략적 차원에서 성공을 이끈 그의 공으로 돌려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나라의 베트남전 영웅 채명신 장군이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채명신 장군은 6·25전쟁 당시 ‘백골병단’이라고 불리는 게릴라부대를 이끌고 북한군 점령지를 돌며 후방 교란작전을 펴 전과를 올렸고, 초대 주월 한국군 사령관으로서 주민으로부터 고립되어 약화된 적을 우세한 병력과 화력으로 섬멸한다는 새로운 전술개념을 도입해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애초에 한국군의 독자적 작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던 미군도 채 사령관의 능력에 탄복해 작전권을 넘겨줬다는 일화를 남겼다.

 6·25전쟁에서 게릴라전법으로 적을 교란했던 채명신 장군은 그야말로 베트남전을 지휘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휘관이었을 것이다. 특히 주월 한국군의 둑코 전투와 짜빈동 전투는 1개 중대 병력으로 6배나 많은 월맹군을 괴멸시킨 전사에 남을 대첩이다.

 이렇듯 올해는 서로 각기 다른 편에 섰던 두 명장을 보내는 한 해가 됐다. 어떠한 말로도 두 명장을 추모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이렇듯 베트남전도 그 산증인들이 하나 둘 스러져가는 역사의 한 장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전쟁을 지휘했던 지휘관들은 세상을 떠나지만 전사는 항상 남게 마련이다. 그 전사를 통해 우리는 전쟁의 역사를 배우고, 전쟁의 역학을 배우며,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인류에 상처를 입히지 않는 방법을 연구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역사도 결국 인간이 쓰는 사실의 기록이다. 그리고 모든 역사의 각 장면은 결코 똑같을 수 없는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베트남전도 그랬다. 채명신 장군이 최초 베트남전에 대해 가졌던 생각은 지구촌에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것이었다. 전쟁은 비록 참화지만 우리와 잠시나마 함께했던 두 명장을 기리고, 다시는 베트남전과 같은 불행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특히 그러한 역사가 한반도에서는 결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konas)

전 광 호(전북대학교 교수) khchun@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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