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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25전쟁영웅 '故 심일 소령' 공적 진위 공청회... 진실은?

위원회 측, '전투 사실 확인'으로 판단 vs 연구소 측, "이대용 장군 주장이 사실에 가깝다" 결론
Written by. 강치구   입력 : 2017-01-25 오전 10: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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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6월 이대용 장군(前 주월 공사)의 증언으로 논란이 됐던, 故 심일 소령의 공적을 확인하는 공청회가 24일 전쟁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공청회는 故 심일 소령 공적확인위원회(위원장 온창일. 이하 위원회)가 검증 결과를 보고하고 질의․응답의 순서로 진행됐다.

 ▲ 24일 故 심일소령 공적확인위원회는 고인의 공적을 확인하는 공청회를 열었다.ⓒkonas.net

 위원회는 논란이 됐던 심일의 옥산포(강원도 춘천지구) 전투공적(1950년 6월 25일)과 소양교 전투공적(1950년 6월 26일)에 대해 전투상보, 작전일지 등 우리 군 문서자료와 북한군의 전투 보고서, 노동신문과 소련군의 무르찐 보고서, 라주바예프의 6․25전쟁 보고서 등 당시 적군 측의 자료와 증언자료 등을 종합해 전투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판단했다.

 언론을 통해 전해진 이대용 장군의 증언은 △심일이 대전차포 1문을 적에게 넘겨주고 도망갔다 △적 자주포를 파괴한 것은 허구다 △보직해임 후 포병연락장교를 맡았다 △육탄5용사는 날조된 것이다 등의 주장이었다.

 이에 위원회는 “당시의 객관적 정황을 고려할 때, 심일의 이동은 ‘도망’이라기 보다는 급박한 ‘전술적 필요에 의한 조치’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적 자주포 파괴와 관련해선 “피아 공식문서 자료를 통해 적 자주포 파괴 사실을 확인하였으며, 육탄돌격 여부에 대한 당시 참전자들의 증언은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보직해임과 관련, “심일 중위가 1950년 10월 25일 이전에는 제6사단 소속이었으며, 동년 12월 13일 이후 제7사단으로 전속된 것은 육군 인사기록에서 확인했다”며 “보직해임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보직해임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다만, 육탄5용사에 대해선 “육탄5용사는 사실을 과장․미화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특공조의 존재 여부는 단정을 보류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이 날 공청회에 참석한 육군군사연구소(소장 한설. 이하 연구소) 측은 위원회와 의견을 달리했다. 공청회에서 배부된 자료집을 통해 연구소 측은 “가능한 모든 자료를 수집해 분석, 검토한 결과 故 심일 소령의 공적이 사실이 아니라는 이대용 장군의 주장이 사실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연구소 측도 전투상보, 작전일지 등 우리 군 자료와 라주바예프의 6․25전쟁 보고서 등 적군자료, 기록문서, 증언자료 등을 토대로 “심일의 육탄돌격이나 대전차포 사격을 통한 적 자주포 파괴는 사실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특히, 연구소 측은 전투상보와 생존자 증언, 북한의 공적서와 노동신문의 기사 내용을 언급하면서 “26일 적이 자주포에 불을 붙여 자폭했다는 이대용의 주장은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며 ‘자주포는 26일 파괴되었으며, 적 승무원이 스스로 자폭한 것’이라고 보았다.

 또, 연구소 측은 “심일의 전사 장소를 추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기록이나 증언은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심일의 사망을 확정한 장교 및 병 순보철을 통해 심일이 ‘실종 중 전사’로 처리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심일 소령의 죽음에 대해서 “북한 지역에서 전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구소 측은 “이번 검토를 통해 심일 소령이 전장에서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싸웠던 모든 사실이 부정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검토가 심일 소령을 평가하기 위함도 아니었음을 밝혀둔다”면서 “태극무공훈장과 관련된 공적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는 조국을 위해 싸웠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군인이었고, 그가 싸웠던 춘천전투는 6․25전쟁 초기 유일한 승전이자 전선의 조기 붕괴를 막은 중요한 전투였다. 그리고 그가 종국에는 전장에서 싸우다 소중한 목숨을 바친 분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결언을 맺었다.

 한편 6 ․ 25전쟁영웅으로 추앙되는 故 심일 소령은 한국전쟁 시 소위로 제6사단 제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으로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한국전쟁 발발 당일, 38선 남쪽 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곰나루터에 57미리 대전차포 2문을 배치하고 있다가, 적 전차 10여대에 대하여 대전차포를 발사하였으나 파괴되지 않자 진지를 춘천 북쪽 4킬로미터 지점의 옥산포(玉山浦)로 옮겨 적 전차에 대비하는 한편 특공조를 편성해 화염병과 폭약을 가지고 육탄으로 적 전차를 파괴, 전진을 저지하였다. 심일 소위의 특공작전으로 하루만에 춘천을 점령하려고 했던 북한군 2군단의 기도는 차질을 빚게 되었고, 아군 제6사단이 춘천을 2일씩이나 방어할 수 있게 돼 아군의 전략을 유리하게 전개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이런 공적으로 그는 1951년 10월 15일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날 공청회에서 국방부는 6·25전쟁 초기 춘천 전투에서 공을 세워 태극 무공훈장을 받은 심일 소령의 공적이 허위라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결론냈다. 그러나 이와 관련 앞으로도 심일 소위의 당시 행적을 놓고 논란은 일 것으로 보인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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