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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수기 ‘새싹교실의 새싹 한 줄기’(입선)

Written by. 한경빈   입력 : 2019-11-25 오후 2: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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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소집해제가 코앞으로 다가온 요즘에서야 익숙해진 호칭이지만, 지금까지 인생 절반을 학생으로 살아온 내가 누군가에게 선생님으로 불린다는건 낯 뜨거운 일이었다. 선생님이라는 건 그러니까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사람인데 내가 무언가 하나라도 바르게 가르칠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썩 열심히 하지도 않은 공부를 핑계로 학생이라 불렸다면 아직은 딱히 뭘 가르칠 게 없대도 선생님이라 불리는 것도 괜찮겠지 싶었다.

 그렇게 해본 일이라고는 학교생활밖에 없던 공대생인 나는 아동 방과 후 돌봄프로그램 새싹교실 선생님이 되었다. 학교가 끝나는 점심 즈음부터 퇴근 시간 전까지 선생님 소리 들어가며 초등생 새싹들과 부대끼며 놀고 간식을 만들어 먹이고 퇴근길까지 같이 하는 생활은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내가 선생님이었는지 학생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오히려 많은 걸 배운 듯하다.

 누구나 어릴 땐 그랬다.
 초등학교 1학년 2학년이 부분인 새싹교실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야단법석이 제일 어울릴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먼저 주어진 업무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게 지도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되었다.

 시도때도 없이 뛰고 땀 흘리고 서로를 놀리면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은 나를 자주 황당하게 만들었고 퇴근 후에도 엄마와 저녁을 먹으며 내내 얘기하기 좋은 주제가 되었다. “엄마, 오늘은 우리 애들이 이러쿵 저러쿵, 정말 웃기지 않아? 이해가 돼?” 하면 우리 엄마는 기가 찬 듯 이러셨다. “너도 어릴 때 똑같이 그랬다.” 어쩐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영 새롭지만은 않았던 이유를 엄마에게서 듣다니, 당황한 나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고 그 후로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 황당하기보다는 어떤 노스탤지어로 변해갔다고 할 수 있겠다.

 틈만 나면 서로를 놀리며 왁자지껄 놀다가 울면서 나와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웃으며 뛰어놀고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몇 시간이고 보다 보면 가만히 있어도 마치 내가 논 것처럼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 시청각적인 자극은 교묘하게 즐거움을 숨기고 있어서 고스란히 나도 느낄 수 있게 된다.

 몇 년 동안을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책보고 컴퓨터 두들기고 하던 따분한 공대생에게는 꽤 그리운 감정이면서도 활력을 되찾아주는 자양강장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남는 사탕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신나하고 특기 교육 선생님이 오시는 길에 차가 밀리는 바람에 자유 시간이 10분 더 생긴 일에 마치 방학이라도 한 것처럼 즐거워하는 아이들은 도대체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웃게 만들까, 아니 어떻게 해야 안웃게 만들까 장난스레 말할 정도로 가끔은 질투까지 유발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은 나도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 끼어들기도 하고, 놀이 흐름에 따라가지 못해 쫓겨나기도 하는 법인데 그렇게 놀다 보면 내가 선생이 아니고 아이들이 내게 노는 법을 알려주는 선생님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가 된다. 이렇게 1년이 넘게 지내보니 누구나 아이였던 적이 있고 나도 그랬기에 더 아이들이 잘 놀며 성장할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결국 사회복무로도 부족했는지 주말에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되찾아주는 취지의 아동 인권 프로그램 “칠드런”이라는 봉사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키다리 아저씨의 보람
 아이들은 나에게 여러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경빈샘과 발음이 비슷해 붙여진 변비샘같은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호칭들에 비하면, 키다리 아저씨는 가장 많이 듣기도 하고 제일 내 맘에 드는 별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학기 중엔 저학년 아동들이 원활하게 복지관으로 올 수 있도록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는데 이제 막 신발을 갈아 신고 나오는 저학년 아이들은 마치 그렇게 부르기로 합심이라도 한듯 나에게 하나같이 키다리 아저씨라고들 소리를 지르곤 했다.

 살면서 키 크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어도 키 큰 덕은 본적 없다고 생각해왔던 나였으나 186cm의 키가 아이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고들의 간단한 해결, 이를테면 나무 위에 올라간 실내화 따위를 까치발로 꺼내주기 같은 일들이 수많은 아이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걸 이내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야 보이는 그대로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겠지만 나는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친절한 키다리 아저씨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고 여러 방법으로 별명에 썩 어울리는 일을 하게 됐다.

 아이들에게 매일 간식을 먹이는 것도 새싹교실의 주요한 업무인데 보통은 떡볶이라든가 빵처럼 사서 주기만 해도 되는 간식이 있는가 하면 계란 토스트, 토마토 파스타같은 조리 식품도 일주일에 두어 번은 직접 한다. 집에서 혼자 해먹는 라면도 귀찮아하는 나였지만 간단하게 만든 요리여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내 입으로 넣는 것보다도 더 포만감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가장 좋아하는 말은 자연스레 “더 주세요!”가 되었다.

 또 어느 날은 인터넷에서 본 어떤 보드게임을 아이들과 너무 하고 싶었으나, 한글판이 단종되어 영문판만 존재한다는 비보를 듣고는 직접 만들기를 시작했다. 몇 시간에 걸쳐 포토샵 작업을 하고 프린트하여 또 며칠에 걸쳐 자르고 붙이고 일을 벌인 걸 후회하고 했지만 결국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완성된 게임을 시작했을 때 아이들이 지은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꾸준히 아이들과 함께 새싹교실 벽이고 문이고 이곳저곳 손길이 닿는 부분들을 꾸미며 생활하다 보니 내 안에 있던 새로운 모습, 정말로 누군가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된 것만 같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특히 효율과 결과물만을 중요시하던 나에게 시간도 오래 걸리면서 그에 따른 결과가 어른의 눈으로 볼 때 미미한 이런 활동들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내 진심은 결국 통한다는 듯이 몇 배로 크게 피어난 행복들은 여러 색깔의 물감이 되어 내 마음에 자국을 남겼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새싹교실엔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다닌 친구들이 몇몇 있는 데, 한 친구를 소개할까 한다. 나는 작년 3월부터 새싹교실을 도맡았고 올해 2학년인 〇〇이는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지금까지 새싹교실을 이용하고 있으니 나름 두툼한 신뢰 관계를 형성했을 법하다. 물론 나에겐 새싹교실 친구들 모두가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겠다만 〇〇이가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먼저 같은 늦둥이기도 하고 항상 껌딱지처럼 나를 따라다닌 이유도 있어서다.

  혼자서도 친구들이랑도 잘 놀지만 선생님들이 자기 얘기를 들어줄 때 정말 신나 하는 〇〇이는 새싹교실뿐만 아니라 퇴근길에까지 나를 쫓아 왔는데 자주 나의 퇴근길에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했다. 나는 출퇴근할 때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역까지 가는 길에 쫄래쫄래 쫓아오며 자기네 집도 이쪽으로 가면 나온다는 〇〇이는 역 앞에서 나를 붙들고 이런저런 얘기를 끝내지 않아 결국 억지로 도망친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〇〇이네 집에 퇴근하면서 후원 물품을 줄 일이 있어 〇〇이한테 앞장서라고 하고 따라가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먼 곳으로 돌아가는 〇〇이를 보며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역에서 꽤 떨어진 〇〇이의 집에 물건을 내려주고는 퇴근하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고 다음 날에도 역시 퇴근길을 쫓아오는 〇〇이에게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〇〇아, 오늘부턴 샘이 너희 집 쪽으로 돌아 가줄게.” 이렇게 나는 지금까지도 〇〇이와 함께 퇴근하게 되는 날이면 조금 늦을지언정 〇〇이의 집이 있는 골목까지 돌아서 가게 된다.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 나에게 부드러운 중압감을 주는 것만 같다.

 요즘 들어 며칠 뒤부터 새싹교실에 안 오냐고 매일같이 물어보는 〇〇이에게 어차피 주말 칠드런 활동마다 볼 건데 무슨 걱정이냐고 말하지만 아무래도 소집 해제하게 되면 나는 〇〇이보다 내가 더 아쉬워하겠지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〇〇이네 골목 앞에서 끝나지 않는 얘기를 듣는다.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위치
 근무를 시작하기 전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도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위치에 회의감이 든 적이 있었다. 기관에 소속된 직원은 아니면서 기관의 업무를 도맡아 해야 한다니, 자칫 외딴 섬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사회초년생도 아닌 사회 초초년생인 나는 배움의 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꼭 학업적인 지식만 배워야 배움의 장은 아니지 않은가.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미래를 헤쳐 나갈 내면의 단단한 무언가를 만들어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고맙게도 종합사회복지관이라는 기관은 정말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고마운 공간이었다. 어르신들, 아이들, 학부모님들, 그 외 이용자분들과 또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같이 일하는 복지관 선생님들과의 만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새로운 만남과 일들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으나 점점 사회복지의 마음가짐이 나에게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선생님들과도 매일같이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었다.

 선생님들과 일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아이들과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다가 같이 숙제도 하고, 학부모님들과 이런저런 상담을 하며 지낸 시간은 나를 단순히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이 아닌 이 복지관과 이 마을의 일원이 된 기분이 들게 했다. 나는 ‘선’ 위에 서 있는 사람은 언제나 그 ‘선’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은 상상 이상의 힘이 되어 앞으로의 나를 도와줄 것이다.

 복무 기간동안 나와 스쳐간 모든 사람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고, 나도 그들에게 자그마할지언정 도움을 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나는 또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겠지만 사회복무 요원으로 지낸 순간 순간은 언제나처럼 내 손을 잡고 이끌어 줄 것만 같다. 새싹교실 선생님으로 지냈던 2년이지만 나 역시 새싹교실의 새싹 한 줄기였다고 느낀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복무기간, 오늘은 또 어떤 일들이 생길지 매일매일이 설레는 날이다.

한경빈(신성종합사회복지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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