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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수기 ‘편견에서 새로운 이해’(입선)

Written by. 윤운상   입력 : 2019-11-25 오후 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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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저는 전주 사랑의집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무요원 윤운상입니다. 시설에 있는 생활인들은 총 55명 정도 되며, 연령대가 다양합니다. 저는 이분들과 하루하루를 함께 행복하게 웃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사회복무요원’이라는 딱딱한 명칭 대신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하루하루 출근하기가 힘들지 않고, 나 자신도 모르 게 웃음이 나옵니다. 앞으로 남은 복무기간동안 어르신들과 함께 행복한 추억, 즐거운 추억을 남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회복무요원이 되기 전까지의 삶
 저는 어려서부터 나서는 걸 싫어하고,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학창시절에는 특출난 것이 없었고, 땀나는 운동도 싫어했고, 그냥 시원한 그늘 밑에 앉아서 쉬는 게 낙이었습니다. 그러다 20살 때 사회복무요원이 되기 전까지 국밥집에서 서빙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 단순히 돈만 버는게 아니라 성격도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소심한 성격이었다면 현재는 쾌활하고 자신감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 일이 서비스직이다 보니 사람들을 응대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제 성격 또한 거기에 맞춰 바뀌게 된 결과인거 같습니다.

 사회복무요원이 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진로나 공부보다 제 성격을 바꾼 것에 대해 만족합니다. 만일 예전 성격 그대로 사회복무요원이 되었다면 아마 여러 가지 문제에서 해결능력이 떨어졌을 겁니다. 사회복무요원(Social Service Agent)라는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복무요원을 하면서 군복무를 한다는 생각 대신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소집해제까지 일해 볼 생각입니다.

사회복무요원의 첫 시작
 저는 2019년 1월 28일에 선복무로 사회복무요원을 시작했습니다. 첫 날에 시청에 모여서 각 시설 담당자님과 첫 만남을 가진 후, 배정받은 시설로 인솔해 주셨습니다. 시설에 도착하자마자 생각한건 ‘아, 일이 힘들겠구나’, ‘주위에서 들은 것처럼 기저귀 갈고, 휠체어를 밀겠구나’라는 생각으로 긴장 반, 설렘 반, 걱정 반을 가지고 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사무실에 가서 직원들에게 첫 인사드리고, 어르신들이 생활하시고 계시는 생활동으로 이동했고, 여러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린 후 부대시설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어르신들을 처음 만난 후 생각이 든게 ‘어르신들이랑 어떻게 친해지고, 이름을 어떻게 외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에 첫날은 아무 일도 안한 채 시설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두 번째 날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여기 있는 모두가 사회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왔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분들에게 그런 마음을 풀어주고자 항상 웃으면서 화답하고,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고, 열심히 도와드렸습니다. 처음 근무지에서 며칠 안됐을 때 어떤 생활인 한 분이 물어보셨습니다. “선생님은 누구에요? 새로 오셨어요?”라고. 저는 그때마다 “네, 이곳에 새로 온 사회복무요원입니다.”라고 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생활인 분들이 웅성거리시더니 “이 분이 새로 오신 사회복무요원이래”라며 절 가리키셨습니다. 그 뒤로 최대한 어르신들이 빨리 제 얼굴을 기억하게 하고 싶어서 시설 내 프로그램인 노래교실, 생활체육 등 여러 프로그램에 참석을 했습니다.

 근무한 지 1개월~2개월이 될 무렵 많은 어르신들이 제 얼굴을 기억하시고, 먼저 인사드리면 같이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그때마다 말로 설명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느 날 어떤 분은 수고하신다고 과자를 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토마토 주스를 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모시고 가서 옆에 있어주면 고생했다고, 시원한 커피 한 잔을 사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이 분들에게 뭘 바라고 도와드린 것도 아닌데도 “학생, 수고 많았어.”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라는 말로 화답을 해주셨습니다. 아마 이분들의 사소한 따뜻한 말에 저는 힘이 더 나는 거 같습니다.

 어르신들이 다 제 부모님 또래이신 분이 많으셔서 항상 부모님한테 하듯이 이분들에게도 똑같이 해드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관공서를 가고 싶었지만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저는 관공서보다 사회복지시설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시설이 더 좋은 이유는 딱딱한 사무실 분위기 보다는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사무실 분위기 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첫 배정 이후에 제 친구들은 관공서에 가고, 저 혼자 사회복지시설로 왔는데 항상 볼 때마다 “너는 진짜 운도 없다, 어떻게 사회복지시설로 혼자 가냐?”라는 말을 합니다. 그때는 “그러게 말이다”라는 말을 했지만 지금은 “아냐, 니네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보람차고 행복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루가 지났다는 행복보다 어르신들과 함께해서 하루가 지났다는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오해와 진실
 아직도 많은 분들은 장애인들과 노숙인들에 대한 편견이 심합니다. 저도 사회복무요원이 되기 전까지는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다가 선복무로 이곳 시설이 걸렸을 때는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다보니 관공서보다 이곳이 저에게 적성이 맞는 것 같고, 한 치의 아쉬움도 없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가졌던 장애인과 노숙인들에 대한 편견이 지금 생각해보면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편견도 이곳에서 일하다보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장애인분들은 어릴 적 불의의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가지게 됐거나, 젊었을 때 교통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됐거나, 여러 이유로 인해 장애인이 된 경우가 있었고, 노숙자 분들은 회사 사장이었다가 부도가 나서 빚에 시달리다가 노숙자가 되신 분들도 계시고, 한순간에 실업자가 되셔서 노숙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결국 장애인분들이나 노숙인분들이나 자신이 이렇게 될지 몰랐던 일인데 단순한 편견으로 그 사람들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편견을 없애 버리게 된 이유
 항상 출근할 때마다 반갑게 웃으면서 장난을 치는 어르신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이곳 시설에 생활하신지 오래되셨고, 항상 제가 밖에 걸어 다니고 있을 때마다 뒤에서 따라다니시기 바쁘십니다. 제가 뒤를 쳐다보면 웃으시고, 저에게 거수경례를 합니다. 식사를 하실 때도 제 앞에서 드시고, 제가 손가락 부상으로 병치레 이후 오랜만에 출근했을 때 처음으로 한 일이 그분과 같이 병원에 가는 거였는데 그때 이후로 이분에게 친절하게 했더니 이분도 절 좋아하시게 되었습니다.

 네, 이분도 장애를 가지고 계시는 분입니다. 제가 만약 사회복무요원이 되기 전 편견을 가지고 이분을 했다면 전 이렇게 친해지지 않았을 겁니다. 이분과 함께 여러분들을 보면서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런 곳에 계시면서 힘든 점과 갑갑함도 있을텐데 과연 이분들은 행복이란걸 아실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이 많이 있는 사람들은 돈으로 행복을 추구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은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사랑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이곳에 계시는 생활인들을 보면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 챙겨드리고 싶습니다. 

 아직도 편견은 존재한다.
 저의 주 업무는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생활인들을 모시고 병원에 안내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업무입니다. 그래서 생활인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보면 어떤 분은 신기하듯 쳐다보는 사람도 있고, 어떤 분은 불쾌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또한 최근에 이곳에서 생활하시는 생활인분들을 모시고 ◯◯랜드로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저는 2명의 생활인을 모시고 놀이기구도 타고 예쁜 꽃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사회복지사라는 꿈
 저는 학창시절 때 두 가지의 꿈이 있었는데, 하나는 환경쪽 일이고 하나는 사회복지사였습니다. 하지만 환경쪽으로 가고 싶어서 환경관련 학교 학과로 갔지만, 공부하다보니 전혀 다른 쪽이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진 채 곰곰이 생각에 빠진 찰나에 신체검사에서 4급을 받고 사회 복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한게 사회복지사였습니다. 때마침 사회복무요원으로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무하게 되어 그 분야에 대해 일을 해보고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무를 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 점점 일에 대한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고, 이러한 일이 나한테 맞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에 비해 돈을 적게 벌더라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행복을 느낀다면 그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느낍니다. 항상 남을 도우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어릴때 어떤 어르신이 하신 소리를 아직도 기억하면서 항상 남에게 베풀고, 남을 도와주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진로를 정할 때도 사회복지사로 정한 이유도 남을 도와주는 일이라면 사회복지사가 제일 적격이겠다 생각하고 사회복지사에 대한 여러 정보를 수집하고 그랬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도 장애인활동 보조인을 하시며, 고모도 사회복지 쪽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제가 힘드냐고 여쭤보면 “힘 들지, 안 힘든 일이 어디 있어”라는 답을 하십니다. 단순히 일만하고 돈만 버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면서 돈도 벌고 행복도 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근무지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소집해제 후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그분들을 만나러 갑니다.

 윤운상(전주 사랑의 집)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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