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독립운동가 정용기 선생, 6·25전쟁 영웅 박평길 육군병장
국가보훈처는 26일 2020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정용기 선생을, 또 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박평길 육군 병장을 선정.발표했다.
정용기 선생은 경북 영천 출신으로 부친은 고종의 시종관(侍從官) 정환직이다.
선생은 고종의 밀지를 받은 부친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 1906년 1월경 ‘영천창의소’를 설치했다.
1906년 영남지역에서 1,000여 명의 의병이 모였으며 선생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진호를 ‘산남의진(山南義陣)’으로 정하고 부대를 편성했다. 선생은 신돌석 의진과 연합작전을 펴기 위해 진군하던 중 경주 진위대 간계로 대구감옥에 수감되어 4개월간 고초를 겪고 석방됐다.
이후 선생은 대구에서 대구 광문사 사장 김광제, 부사장 서상돈 등이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켰다.
선생은 1907년 4월 의진을 다시 결성해 청하·영천·청송 등지로 진군하면서 일본군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여 적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후 관동으로의 북상 준비 및 각 지대와의 연락을 위해 각지로 의병들을 파견한 뒤, 본진 병력 150여 명을 이끌고 청하군 죽장으로 이동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1907년 9월 주요 의병들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편 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된 박평길 육군병장은 1925년 제주읍 이도리에서 태어났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부인과 자녀를 남겨두고 9월 1일 육군에 입대했다.
1950년 10월, 보병 제11사단 13연대 3대대 9중대 2소대에 편성되어 전북지역의 북한군 패잔병 주력부대를 분쇄하였으며, 1951년 4월에는 동부전선으로 이동하여 제9중대 2소대 분대장이 되었다.
1951년 6월,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 564고지전투에서 적의 토치카(사격진지)에 쓰러지는 아군병사가 속출하자, 적탄을 뚫고 돌격했다.
박 병장은 대퇴부에 총탄을 맞아 부상을 당했으나 좌절하지 않고, 적의 토치카(사격진지) 근처까지 달려가 수류탄을 던져 적군 10여명을 폭사시켰다.
이어 적군과 백병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적탄에 맞아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박평길 병장의 공로를 기려 1951년 9월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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