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에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포위하자 패닉에 빠진 수많은 시민들이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카불 국제공항에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활주로를 달리고, 비행기 트랩에 주렁주렁 매달리다가 떨어졌다. 사망자가 발생하고 공항으로 향하는 수백 대의 차량이 엉키면서 순식간에 공항은 아비규환을 이뤘다. 1975년 4월 월남 패망 당시 사이공 탈출 장면과 같은 참상이 재현된 것이다.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하자 아프간 정부군과 친정부 민병대는 보복을 우려해 군복을 벗었다. 카불에 앞서 함락된 아프간 제2도시 칸다하르에서 탈레반이 민가를 수색해 친정부 인사 수십 명을 끌고 나와 처형하는 영상이 공개되자 아프간 정부군이나 나토군 복무자, 미국에 협력했던 이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01년 9·11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본거지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이후 20년 간 미군 2,448명이 사망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 등 동맹국 군인 1,144명이 숨졌다. 아프간 군경과 민간인도 11만명 이상 사망했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 8,157억 달러, 재건 비용에 1,305억 달러 등 1조 달러가 넘는 비용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미군은 아프간군이 스스로 싸우려 하지 않는 전쟁에 참여해 죽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가진 대국민 연설에서, “아프간 정부가 포기한 전쟁에서 미군이 희생돼선 안 된다.”며 “미국의 국익이 없는 곳에 머물며 싸우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서방 언론은 아프간 사건을 베트남전 이후 가장 큰, 비참한 수준의 인식 실패라고 분석했다.

 탈레반이 지난 5월 미군이 철수를 시작한지 3개월 만에 아프간을 장악한 배경에는 아프간 지도층의 무능과 부정부패, 무력한 군부가 있었다. 아프간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자금과 훈련을 지원받았지만 군인과 공무원에게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정부군 병사는 미국이 지원한 장비를 현금으로 탈레반에게 팔았고,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군인과 탈영이 빈발해 지휘관은 자신의 부대에 얼마나 많은 병사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하자 아슈라프 가니(72)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해외로 도피했다. 이렇듯 아프간 정부와 군은 내부적으로 부패해 지휘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였고, 자국의 안보를 타국에 의존했기 때문에 탈레반의 승리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또한 아프간 사태는 국익을 앞세운 미국의 외교전략 방향을 보여주었다. 

 무더위 속의 광복절이 지나자 111년 전 1910년 경복궁에 일장기가 걸리고 일제에 국권을 강탈당한 8월 29일 국치일이 다가온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단절되고 짓밟힌 국치일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꺼내고 싶지 않는 기억이지만 역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되기 때문에 어쩌면 이 날은 광복절보다 더 뼈저리게 기억해야 할 날이다.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을 빌미로 자국 군대를 한반도에 주둔시키고, 1905년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고종은 이 조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했다. 이에 놀란 일제는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등극시켰다. 이후 친일파 총리대신 이완용을 앞세워 한일신협약(정미 7조약)을 맺게 하여 대한제국이 중요한 정책을 시행하거나 관리를 임명할 때 일제의 승인을 거치도록 했다. 1909년에는 대한제국의 사법권 및 감옥사무의 처리권을 일본정부에 위탁하는 기유각서를 체결하고, 1910년 6월 한국의 경찰권을 빼앗은 다음, 7월 12일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병합 후의 대한(對韓) 통치방침'을 휴대해 조선통감으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국권침탈 공작을 전개했다. 데라우치는 8월 16일 이완용과 농상공대신 조중응을 통감관저로 불러 병합조약의 구체안을 밀의하고, 18일 각의에서 합의를 보게 한 다음 22일 순종황제 앞에서 형식뿐인 어전회의를 거치게 하고 그 날로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조인을 완료했다. 조약의 조인 사실은 1주일간 비밀에 부쳐졌다가 8월 29일 이완용이 윤덕영을 시켜 황제의 어새를 날인하여 한일병합조약(일본식 표현)을 반포했다. 이로써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멸망하고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병합조약> 전문은 “한국 황제폐하 및 일본국 황제폐하는 양국간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기 위하여” 양국간 병합조약을 체결한다고 되어 있지만, 조약 1조는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 전부(全部)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폐하에게 양여한다.” 2조는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조에 게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또 완전히 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한다.”고 되어 있어, ‘상호행복 증진’은 허울뿐임을 알 수 있다. 국치 소식을 듣고 자결한 이들이 서른 명을 넘었다. 이날 이후 일본 헌병을 공격하거나 의병항쟁이 끊이지 않았고, 해외로 망명한 독립투사들은 항일독립군 양성과 독립군 기지를 건설했다. 일제의 탄압은 가혹하고 잔인했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옥중에서 사망했으며, 현재 천안의 독립기념관에는 일제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고문 장면과 고문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함성이 울려 퍼질 때까지 34년 11개월 10여일의 기간은 우리 민족의 암울한 치욕의 시기였다. 사람은 좋은 것만 기억에 남기고 싶어 하지만 자랑스럽고 영광스런 기록만이 역사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살아 있고 국민이 존재하는 한 국치일은 기억해야 한다.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빼앗겨 민족이 수치를 당한 일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국치일 하루를 굶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열강들의 동북아에 대한 세력각축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국력은 너무도 빈약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국제사회는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이번 아프간 사태는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무능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 스스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포기할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굳건한 국방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미국은 국익에 도움이 안되면 언제든 동맹도 버릴 수 있다는 분명한 외교전략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싱크탱크 시카고카운슬이 지난달 7~26일 미국민 2,086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는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를 지지했다. 반미(反美)감정이 강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아프간에 어느 미국인이 지지를 보내겠는가?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의 ABC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의 미군 주둔은 아프간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주한미군을 철수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연히 한국과 아프간 상황은 다르다. 그러나 베트남과 아프간 사태에서 확인됐듯이 국민이 나라를 위해 싸울 의지가 없다면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우리는 지금 핵과 미사일을 가진 북한과 마주하고 있으며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군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실전훈련을 강화하고, 한미연합훈련을 통해 동맹의 가치를 재점검하여 강군으로 우뚝 서야 한다. 피흘리지 않고 타인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값진 교훈은 없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