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㉜ 백마고지 3용사의 상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 당시 국군 제9보병사단이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벌인 전투를 말한다. 중공군 38군 소속 3개 사단을 격파한 이 백마고지 전투에서 승기를 탈환했던 세 명의 영웅을 기리는 ‘백마고지 3용사의 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서울어린이대공원. 아차산역 4번 출구로 나와 어린이대공원 정문부터 왼쪽으로 나있는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구의역 방향의 구의문까지 다양한 현충 시설을 관람할 수 있다. 정문에서 구의문까지는 도보 약 15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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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문 근처에 작게 나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백마고지 3용사의 상’을 만날 수 있다. 백마고지 3용사의 상은 강승우(1930년 11월 남제주 출생) 소위, 오규봉(1928년 10월 천안 출생), 안영권(1924년 11월 김제 출생) 일병의 육탄 3용사를 기리고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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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 전투 당시 유엔군은 철원평야를 점령해 있었는데, 철원 북방의 395고지는 이 철원평야를 통제 및 감시하기에 매우 용이한 위치였다. 중부전선의 전략 요충지였던 백마고지는 ‘한 치의 땅도 거저 얻은 땅이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군의 전설이 피로 새겨진 현장이다.
중공군은 철원 서쪽의 395고지(백마고지) 및 281고지(화살머리고지)를 점령하면 유엔군과 철원 일대의 국군을 모두 위협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 새벽에 395고지와 281고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1952년 10월 6일부터 열흘 동안, 12차례의 쟁탈전을 반복하여 무려 7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등 아군과 중공군간의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다.
당시 제9사단은 청명한 날씨가 계속되자 적의 공격을 예상하고 진지를 보강하던 중 적의 집중적인 기습공격으로 395고지를 피탈당하였다. 이에 제9사단 제30연대는 즉각 역습을 실시하였으나,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중공군의 수류탄과 기관총사격으로 아군의 피해가 극심해 돌파구 마련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역습부대인 제30연대 제1중대의 공격이 실패한 상황에서 제1중대 제1소대장인 강승우 소위는 목표 60m 측방의 기관총사격으로 피해가 극심해지자 대공포판을 등에 멘 채 죽음을 무릅쓰고 적의 자동화기 진지로 돌진하는 오규봉 일등병을 엄호하기 위해 안영권 일등병과 화력으로 엄호했다. 또한 강승우 소위가 직접 TNT 및 박격포탄을 적 기관총 진지에 투척하였으나 팔에 총상을 입었고, 그가 떨어뜨린 폭발물을 안영권 일병이 대신해 나머지를 투척했다. 적 진지에 근접한 오규병 일병도 수류탄으로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고 장렬히 산화함으로써 중대가 공격을 재개해 목표를 탈환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6·25전쟁 사상 최대의 격전지 중 하나인 이 전투에서 육탄돌격을 결행한 3용사는 오늘날 백마 3군신으로 불리고 있다. 1953년 7월 1일 정부는 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함과 동시에 강승우 소위는 중위로, 오규봉·안영권 일병은 하사로 추서했다. 또한 국가보훈처는 2014년에 3용사를 10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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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숭고한 희생은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비록 여전히 남과 북으로 나뉘어 휴전 상태에 머물러 있지만, 3용사를 포함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투를 벌이고 목숨바쳤던, 그리고 전쟁 이후 현재까지 국방의 임무를 다하고 있을 국군 장병들 덕분에 지금과 같은 우리의 일상도 지켜질 수 있다. 이들에게 감사하는 시간과 백마고지 3용사를 추모하기 위해,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들이도 다녀올 겸 어린이대공원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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