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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 공모전 입선작> 국군장병 및 주한 미군에 대한 감사와 존중

Written by. 신무겸   입력 : 2023-11-09 오후 3: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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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6.25전쟁 73주년,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호국안보 글짓기 공모전에서 고등학생부 장려에 선정된 글입니다.

2023년 9월 15일 금요일 등굣길. 
 집에서 30m쯤 떨어진 스쿨버스 승강장까지 걸어가는데 가을장마로 인해 아침 시간임에도 밤처럼 컴컴하고, 천둥번개와 낙뢰가 떨어지며 폭우가 쏟아진다.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승강장 안에서 친구들의 잡담을 뒤로 한 채 시커먼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로부터 73년 전인 1950년 9월 15일 새벽 02시부터 아침이 열리는 6시까지를 생각해 본다. 

 그 날은 비가 오지 않는 평범한 가을 밤이었겠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역사의 날이었다. 오늘처럼 컴컴한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끝없이 낙뢰가 떨어지며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공중에서는 미사일이, 바다 위 함대에서는 포탄이 장대비처럼 끝없이 퍼부었던 인천상륙작전이 있었던 날이었다.

6.25전쟁.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듯이 1950년 6월 25일 소련제 신무기로 무장하여 기습 남침한 북한은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을 함락시키고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을 빼앗아 ‘적화통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한국군은 ‘낙동강방어선’을 구축해 겨우 버티고 있을 정도로 국운이 풍전등화 같은 신세였다. 이 전세를 타개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졌다. 

20세기 역사상 최고의 군사작전
 인천상륙작전 또는 인천전투라 불리는 이 작전은 1950년 9월 15일, ‘상륙작전의 귀재’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인천에서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이 펼친 상륙작전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은 수행보다 결재가 더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 미국 행정부는 이 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득했지만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모두의 반대 속에서 “인천상륙작전은 북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기습을 해야 한다.”고 작전을 밀어붙여 진행되었다. 

 인천은 상륙작전의 문제점을 모두 다 가진 지역이자 방어의 요새였다. 인천 앞바다 조수 간만의 차는 9m이고, 간조시 개펄은 최대 4km로 4시간 안에 작전을 수행하지 못하면 개펄수렁에 빠져 9시간동안 진․후퇴가 불가능해서 북한군이 반격하면 무방비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는 모래사장이 없고 높은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어 ‘공성전’처럼 일본에서 직접 제작해 온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했기에 상륙작전으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지형이었다. 이 작전의 성공률은 5000분의 1로, 단 0.02%의 가능성에 대한민국 국운을 건 것이었다. 

KLO첩보부대 활약
 역사를 바꾼 비밀 연합작전. 지금의 전세를 바꿀 단 한 번의 기회, 단 하루의 작전. 그 시작은 바로 그들 KLO첩보부대 대원들이었다. 맥아더 장군의 지시로 위험천만한 대북 첩보작전 ‘X-RAY’작전이 시행되었다. 이 작전에 투입된 KLO첩보부대는 미군이 관할, 운용했지만 북한군으로 위장 잠입하기 위해 대부분 이북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인천 내 동태를 살피며 북한군의 해안포대 수량 및 배치, 북한군 병력 상황등을 파악하는 등의 정보를 수집했다. 지금은 레이더나 최첨단 장치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인천 앞바다의 구간 구간마다 깊이를 측정하기 위해 야밤에 북한군의 눈을 피해 목선을 타고 줄에 추를 매달아 1m 간격으로 일일이 수작업으로 시간대마다의 바다 깊이를 재어 함선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를 찾는 등 상륙작전을 위해 꼭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하였다.

 상륙작전 전날인 14일, ‘x-ray’ 작전을 눈치챈 북한군은 1개 대대규모 병력으로 영흥도를 기습하였고 작전을 수행하던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대원은 다른 대원들이 피신할 시간을 벌기 위해 퇴각하지 않고 남아 적과 맞섰다가 남겨뒀던 총으로 자결하였다. 포로로 잡힐 경우 고문에 의해 상륙작전 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인천으로 가는 길 확보, 팔미도 등대 점령.
 성공확률 5000:1, 불가능에 가까운 이 작전을 가능케 하는 것은 단 하나, 인천으로 가는 길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9월 15일 0시 50분, 미군과 한국군, KLO첩보부대의 연합 특공대가 월미도 등대를 무혈로 점령하여 북한군과 구별하기 위해 성조기를 내걸고 등대를 점등시켜 상륙부대의 길잡이가 되었다.

 당시 규모는 항공모함, 구축함, 순양함 등 8개국 261척으로 미국 225척, 대한민국 15척, 캐나다 3척, 호주 2척, 뉴질랜드 2척, 네덜란드 1척, 프랑스 1척이었다. 미 해군이 월미도에 상륙 준비 사격으로 로켓을 퍼부었으며, 05시 45분에는 미 제15항모부대의 F4U 콜세어 10대가 출격하여 45미터 전방을 기총사격으로 훑는 가운데 해병대가 해안 상륙에 성공한다. 

 그렇게 20시 인천은 탈환되고 인천상륙작전은 열세에 있었던 6.25전쟁의 전황을 단숨에 뒤집었다. 9월 28일 서울 탈환이 이루어져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 자리에 있었던 중앙청 첨탑에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시 태극기가 게양되었다. 

 ‘완벽하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한 미군과 군사작전업무의 특성상 세상에 당당하게 이름을 밝힐 수 없었던 이름도 없고 마크도 없는 부대인 KLO첩보부대원들의 ‘x-ray’작전, ‘팔미도 등대점화작전’으로 나라와 가족들을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대한민국 군인들의 애국심과 미군의 합동작전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일상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지만 장대비가 내리는 어두컴컴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그 가치를 이렇게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본다. 안 아픈 곳이 없다며 건강관리에 열심인 우리 할머니, 엄마, 아빠 그리고 항상 나에게 매달리며 애교를 부리는 나의 작고 귀여운 남동생과 만 16세 나의 인생을 둘러싸고 있는 친지, 친구,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안전하고 평화롭고 풍족한 우리 사회는 73년 전의 엄청난 희생과 피로 피어난 꽃과 같다.

 ‘대한민국’ 이름도 몰랐던 먼 타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미군과 나라를 위해 초인적인 애국심을 발휘한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존경과 감사함을 느끼며 오늘도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키는 국군장병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konasnet)

신무겸(경남 하동군 진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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