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78) 무어장군 전적비
충주댐을 지나 팔당에 이르는 남한강변에는 한강종주 자전거 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특히 경기도 여주 강천보 인근에는 팔당대교 70.3km, 충주댐 65.7km, 충주댐에서 팔당대교사이 거의 중간쯤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경기둘레길 여주34·35코스로 자전거 라이더와, 도보 여행자들이 많이 지나는 곳이다. 이 한가로운 강천보 자전거길 옆으로 아픈 역사가 존재함을 지나는 이들 대부분은 모를 것이다.
브라이언트 에드워드 무어(Bryant Edward Moore) 장군은 한국전쟁 중인 1950년 12월 23일 지금의 서울 도봉구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美 육군 8군단장이었던 워커 중장에 이어 두 번째로 전사한 고위급 美 육군 장성이다.
무어 소장은 美 제9군단장으로 1951년 1월 30일 취임한 직후 1951년 2월 24일 '킬러 작전'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직접 헬리콥터에 타서 남한강 도하작전 지휘에 나섰지만, 안타깝게도 헬리콥터가 남한강에 추락하며 심장마비로 전사했다.
美 8군 공병대는 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무어 장군의 넋을 기리고자 고인의 추락 지점인 남한강 강천보 부근에 전적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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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인해전술에 밀려 38선 이남으로 후퇴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던 유엔군은 대대적 반격을 통해 1951년 1·4 후퇴로 빼앗긴 수도 서울을 되찾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비장한 각오로 이른바 ‘킬러(Killer) 작전’에 돌입했다.
킬러 작전은 美 9군단이 남한강을 안전하게 건너 신속히 서울 방향으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무어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유럽 전선에서 연대장·사단장으로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활약한 백전노장으로 직접 헬리콥터를 타고 남한강변의 전투지형 순찰에 나섰다.
당시 남한강변에는 전기 공급을 위해 부설한 고압의 송전 케이블이 있었는데, 지상의 지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위협을 무릅쓰고 고도를 낮추던 헬기가 그만 이 케이블에 걸렸고, 지금의 여주시 남한강 강천보 부근에 추락하고 말았다. 차가운 강물 속에서 사투를 벌인 무어 장군은 결국 몇 시간 뒤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 5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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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는 1951년 1월 육사 교장으로 재직하던 무어 장군한테 연락을 취한 美 육사 동기생 리지웨이 장군이 “지금 한국에 자네가 꼭 필요하다. 오는 데 얼마나 걸리겠나”라고 요청하자 무어 장군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At once)”라고 답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무어 장군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작전을 수행하다 전사한 전쟁영웅으로, 끝까지 부하들의 구출을 걱정하며 숨을 거둔 살신성인의 리더십을 보인 명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국의 국민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추모할 수 있는 장소도 남한강변 강천보 인근의 추모 전적비가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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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작전은 무어 장군의 전사와 겨울비 등으로 기동이 잠시 주춤하기도 했으나 1951년 3월 7일 미 제25사단의 한강 도하작전이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일대에서 성공했고 서울을 재 수복 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비록 서울을 재 수복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나셨지만 부하들의 안녕을 위해 위협을 무릅쓰고 고도를 낮추던 헬기에 타고 지형 정찰을 직접 수행했던 그 용맹함에, 기념비 앞에서 강천보를 바라보면서 머리 숙여 고마움을 표해본다.
인근 자전거 길을 지나는 도보 여행객들은 참배를, 라이더 분들은 서행하며 애도의 마음을 표현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든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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