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칼럼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안보칼럼]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올바른 민군관계

Written by. 박동순   입력 : 2024-12-26 오전 11:04:27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미국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민군관계의 역사 

미국 수도는 워싱턴(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이다. 워싱턴 D.C는 계획도시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이름에서 따왔다. 워싱턴 기념공원에는 내셔널 몰을 중심에 배치했고, 한 면에 국회의사당인 캐피톨이 있다. 의사당 중앙에 돔이 있으며, 아래 원형홀 로툰다가 있다. 의사당의 원형홀 로툰다 내부엔 미국 정신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화들이 있다.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는 1783년 12월 23일 존 트럼블이 묘사한 그림이다. 미국의 탄생에 매우 중요한 사건인 대륙회의는 영국의 고압적인 식민지 경영에 북아메리카 13주의 자치의식이 높아지면서 1774년 제1차 회의가 열렸고, 제2차 대륙회의는 1775년부터 1781년 3월까지 개최되었다. 

1775년 6월 14일 영국군에 대항하기 위해 식민지군이 결성되어 총지휘관으로 조지 워싱턴이 임명되었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전쟁은 승리로 끝났고, 1776년 7월 4일 미국은 독립선언을 채택하게 된다. 그림에는 1783년 독립전쟁을 승리로 끝낸 조지 워싱턴 장군이 중앙에 서서 앉아있는 의원들에게 8년 전에 받았던 대륙군의 지휘권이 적힌 양피지를 반납하고 있다. 독립군의 지휘관들이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전쟁의 임무를 완수하자 스스로 그 권력을 정치 지도자들에게 되돌려 주고 있는 기록화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국은 군이 민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대 민군관계의 이론을 정립한 새뮤얼 헌팅톤(S. Huntington)은 1957년 《군인과 국가》를 저술했다. 그는 국가안보를 위해 강력한 군사력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과 이러한 무력에 대한 문민통제 간 균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군사력의 사용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군인들이나 정치가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으며, 역량 있는 민간권력에 의해 주의깊게 감독되는 '전문직업군'을 유지해야 하며, 민간과 군이 분리되어 상호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1960년 모리스 자노비츠(Janowitz)는 군대 엘리트에 대한 연구로 《전문직업군인》을 저술했다. 그는 책에서 장교단을 그들의 사회적 위치, 정치 이념, 전략적 신념, 직업적 동기 등에 따라 영웅적 리더, 관리자, 기술자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자노비츠는 군이 민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위험해진다고 주장했다.

민군관계의 중요성과 어려움에 대하여

올바른 민군관계의 정립과 유지는 중대한 일인 동시에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폭력을 다루는 전문기관(군대)을 만들었지만, 이후에는 군대 자체가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군대는 민간인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민간인들이 인가하는 것만 할 만큼 종속적이어야 한다는 점이 민군관계를 연구한 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정치-군사관계는 단순히 통수권자가 명령을 내림으로써 시작되고 장군들이 이를 완벽히 수행함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권한과 책임은 헌법과 법률로부터 나온다. 대통령은 유권자들로부터 정치적 권한을 부여받는 대신 유권자들에 대해 헌법 하에서 제반 법률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책임을 다하게 된다. 국회의원들은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정치적 권한을 부여했고, 선거를 통해 권한을 박탈하기도 한다. 군의 장교들은 궁극적으로 시민사회에 대해 책무를 다해야하나, 통수권자까지 이어지는 지휘계통을 통해 책무를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통수권자와 장군들 사이에는 정직과 존경, 입증된 능력, 공동의 세계관 등을 바탕으로 한 상호 신뢰와 기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손자병법의 시작에는 “병자(兵者)는 국지대사(國之大事)라 사생지지(死生之地)요 존망지도(存亡之道)니 불가불찰야(不可不察也)라”고 썼다. 군대를 움직이고, 전쟁을 하는 것은 백성들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짓고 나라를 존속시키느냐 망하느냐가 판가름이 되는 중차대한 일이다. 마오쩌둥은 일찍이 물과 물고기의 관계를 강조했는데, “각급 영도간부는 물고기이며 인민군중은 물이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목말라 죽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올바른 민군관계의 정립이 절실하다

대한민국은 80여년의 역사 중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그리고 전쟁을 종결짓지 못한 정전(停戰)상태로 극심한 체제와 이념 경쟁 속에 70여 년의 역사를 살아왔다. 155마일의 휴전선을 두고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중이며, 군사안보적 불안은 상수처럼 존재하고 있고 분단 대치라는 상황에서 국민개병제를 채택해 왔다. 외부적으로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어 70년 이상을 안보적 보호기제 하에 놓여 왔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 현대사에서 정치-군사관계는 매우 밀접하게 국민들의 인식과 생활에 근접해 있었다.

1961년의 5·16 군사정변은 제2공화국의 정치력 부재와 사회 경제적 혼란으로 응축되어 있던 불만이 촉발된 성격에서 출발했다. 이후 군사정부는 1979년 10월까지 약 18년간 지속되었다. 1979년의 12·12 군사반란은 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전두환과 노태우가 주도하는 신군부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로 정권 찬탈과 5·18 민주화운동의 무력진압 등 내란으로 대법원이 판결하였다.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에는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군의 일부가 계엄군으로 국회의사당 등에 출동했다가 약 2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되어 철수하였다. 이에 대해 수사 중이므로 논의는 민군관계로 한정하겠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②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였다. 그리고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5조 국군의 강령 ①항에는 “국군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를 방위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함을 그 이념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같은 법 제20조 충성의 의무에서 ‘군인은 국군의 사명인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의무를 수행하고,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여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을 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군을 세계 최강으로 만드는 힘은 군 수뇌부가 군이 지켜야 할 원칙을 철저히 지켜나가는 데서 나온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2023년 9월 마크 밀리(Mark Milley) 미 합참의장의 이임사는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가 수호하겠다고 서약한 것은 국가도, 집단도, 종교도, 왕이나 왕비도, 폭군이나 독재자도 아닙니다. 우리가 개인을 수호하겠다고 서약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수호하겠다고 서약한 것은 미국의 헌법이고 미국이라는 이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죽을 각오를 합니다." 

대한민국 군대는 국민의 군대다. 군대를 구성하는 군인은 유사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쳐 국가와 국민을 지켜주는 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인들은 군대의 존재 이유와 사명감을 제대로 인식해야 하고 그러한 군인들에게 모든 국민들은 따뜻한 신뢰와 절대적인 지지로 지켜주어야 한다. 군은 뼈를 깎는 아픔으로 다시 태어나고, 국민들은 이를 진심으로 성원해 줌으로써 대한민국의 위상에 맞는 현대 자유민주국가의 민군관계가 정착되어야 한다. (konas)

박동순 :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장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6.10.31 토요일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전작권 전환, 실질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검증 필요
동아시아 안보 구도의 급변과 동맹 재편의 파고 속에서 전시작..
포토뉴스 더보기
핫클릭 뉴스
깜짝뉴스 더보기
가난도 병도 이겨냈다…4선 금자탑 세운
역경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가난을 극복했고, 병마를 이겨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