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서해교전의 진실②
「事必歸正」
이튿날 아침 침통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출근과 동시에 오전 9시까지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회의실로 집합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내가 전역지원서를 제출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오전 8시30분에 참모장과 기무부대장이 사무실로 찾아와서 전역지원서 내는 것을 거두어 달라고 건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간부집합도 취소해 달라고 했다. 이유는 오전 9시에 개각발표가 있는데 金東信(김동신) 장관이 교체된다는 것이었다.
내게 장관이 교체되든 안 되든 그것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 장관을 포함한 지휘부에서 왜 허약한 우리 부대까지 징계대상에 포함시켰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오해가 있었고 표적조사가 있었으며, 그 무슨 음모까지 꾸미고 있지 않았나 하는 것이 나의 육감이었다.
내가 지난 7월10일 징계를 불복하고 전역하겠다고 할 때만 해도 장관이 경질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내가 전역을 결심할 때는 비록 「달걀로 바위를 치는」 형국이 될지라도 장관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것이었다.
당장은 박해받을 것을 각오했다. 불의와 음모가 이기느냐 아니면 정의와 진실이 이기느냐를 시험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는 정의와 진실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결국 오전 9시 개각 발표에 국방장관이 전격 경질되었다. 事必歸正(사필귀정)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7월10일 오후 늦은 시각, 두 시간에 걸쳐 장관실에서 징계회의를 했다는 것이다. 기무사령부에서 지난 이틀 동안 조사한 결과를 가지고 징계회의를 열었던 것이었다. 회의에는 국방장관, 합참의장, 국방차관, 기무사령관 총 4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장관은 당분간 징계 조치를 않겠다고 천명했다는데 왜 갑자기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장관이 퇴근하면서 차관보에게 나를 포함해 세 명에게 줄 경고장을 준비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대변인에게는 경고장 수여사실을 국방부 기자단에게 브리핑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우리 5679부대는 對北 통신감청부대로서 法的으로도 보호받게 되어 있고, 외부에 우리 부대의 존재가 알려져서는 안 되게 돼있다. 그리고 내게 경고장을 수여하게 되면 그 사실이 신문에 보도될 것이고, 우리 5679부대의 임무와 성격이 노출된다. 그러면 앞으로 對北 통신 감청에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판단이 들 텐데 왜 그런 무리수를 두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그렇다고 우리 부대가 징계를 받을 만큼 정보지원을 못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번 일로 언론에서 이미 우리 부대의 임무와 성격을 보도했기 때문에 앞으로 對北 통신 감청이라는 임무수행에 지장을 받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우리 부대는 平時에도 보호를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내가 장관의 징계처리에 반발하자 주위에서 많은 사람이 만류했다. 이유인즉 우선 징계권자였던 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징계처리가 무효화된 상태에서 계속 반발하면 軍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것이 요지였다.
언뜻 들으면 그 사람들의 논리도 그럴 듯한데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장관이 서해교전의 책임을 지고 자발적으로 물러난 것이 아니고 전격 경질되었으며, 징계처리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징계처리를 결정한 자체가 원천적으로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軍의 명예만 중요하고 국가 안위와 국민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으며, 또한 우리 부대의 명예는 무시해도 된다는 논리인가? 이번 일이 규명되는 것이 軍의 명예를 실추시킨다고 주장하는 일부 軍 고위층도 있다. 하지만 우리 軍과 국가의 安危(안위)와 국민의 生命(생명)을 위해서도 몇몇 사람이 保身(보신)을 위해서 행한 일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거대한 댐도 조그마한 쥐구멍 때문에 무너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유념해야 한다. 나는 감히 이번 사건이 댐의 쥐구멍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이 쥐구멍을 막아서 종국적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내가 침묵을 지켜서 몇몇 사람의 개인적인 영달을 얻도록 방관하는 것이 軍의 명예를 지키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행한 일들을 밝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국가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軍의 명예를 지키는 것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야말로 군인의 本分(본분)이 아닌가? 누가 이를 軍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하겠는가?
6월13일 「특이 징후」 국방부에 보고
내가 국방부의 징계에 강하게 반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서해교전과 관련해 정보지원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우리 부대는 결정적인 특이 징후를 국방부에 보고했다.
3년 전 연평해전 이후에 우리가 매우 유념하고 경계해야 할 그런 종류의 특이 징후는 한 번도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지난 6월14일에는 항공사진 전송체계장비(KCITS)를 차단한 사건과 관련한 회의석상에서 6월13일에 있었던 북한 경비정 NLL(북방한계선) 침범에 관한 정보를 다시 한 번 합참 정보본부장(權寧載 중장)에게 보고했다.
이 자리에는 군사정보부장(權榮達 소장), 정보사령관(金軍植 소장), 정보본부 융합처장(丁亨鎭 준장) 등 정보 고위 장성들이 참석해 있었다. 매우 민감하고 특이한 정보(교신 내용)를 설명한 다음, 이는 예삿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地對艦(지대함) 미사일 발사대도 항공사진으로 찍히는 등 매우 예민한 사항이며, 6월15일이 연평해전 3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에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하여 우리 5679부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북한의 동태를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월드컵 기간인데다 요즘 북한 경비정의 동태가 심상치 않기 때문에 나 개인적으로는 6월 한 달 간 골프도 치지 않고 부대를 지키겠노라고 보고했다.
내가 정보 고위 장성들 앞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6월14일 배포되는 정보본부의 블랙 북(Black Book:북한군의 동태를 주로 다룬 일일 정보 보고서)에 전날의 NLL 침범을 단순 침범으로 왜곡 판단했고, 또 우리가 보고한 결정적이고 매우 특이한 특수정보(SI)를 빼버린, 정보가 속속 은폐된 것을 그날 아침에 장관이 보고 받았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정보본부와 장관 간에 서로 박자가 척척 맞은 NLL 침범 정보보고서였다. 즉 정보본부에서는 결정적이고 매우 중요한 「특이 정보(결정적인 문구)」를 아예 삭제한 채 장관에게 보고함으로써 축소·은폐했고, 장관은 敵 의도 판단 내용 중 「의도적인 침범」이란 판단은 빼고 「단순 침범」이란 판단만을 블랙 북에 내보내라고 함으로써 정보를 왜곡 및 조작한 결과가 되었다.
게다가 우리 부대에서 예하부대에 배포한 보고서의 敵 의도 내용을 「단순 침범」으로 수정하라고 해서 우리 부대에서는 訂正(정정)하여 전문을 再하달하였다.
다음은 우리 부대에서 국방부에 파견된 701단장인 윤영삼 대령(5679부대 정보단장)이 「장관님의 지시사항」이라면서 丁亨鎭 정보융합처장으로부터 지시받은 사항에 대하여 우리 부대로 전달한 내용을 밝힌 경위서의 일부분이다.
<2002년 6월14일 오전 9~10시 사이 융합처장님으로부터 사무실로 와 달라는 전화를 받아 바로 사무실로 갔습니다. 융합처장님은 일일정보보고서(B/B)를 보여 주면서, 장관님께서 세 가지 판단 중 2, 3번 판단 내용은 삭제하고 전파하라고 하셨다. 정본의 판단과 우리 부대 의견이 일치해야 예하부대에서 혼돈이 없을 것이므로 우리 부대 보고서를 수정해서 전파할 수 있도록 본부에 전화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2, 3번의 판단내용은 각각 훈련평가의 일환과 의도적인 침범이고 1번은 단순 침범이었다. 이리하여 6월13일의 의도적인 NLL침범이 단순 침범으로 왜곡·조작됨으로써 6월27일의 NLL 고의적 침범도 또 단순 침범으로 왜곡·조작되었고, 급기야는 6월29일의 서해교전으로 번져 24명의 인명피해와 고속정 1척의 침몰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6월13일의 NLL 침범사건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강조했는데도 불구하고 정보본부에서 받아들이는 강도는 별로였다. 설마하는 눈치였고 나름대로 월드컵 기간 동안 서해상은 조용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좋은 예로 6월19일 군사 정보부장이 국방부 기자 회견시 『NLL 안전해역에서의 어선조업을 적극 통제, 남한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최대한 피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2002년 6월20일 경향신문 21면)고 밝힘으로써 서해 NLL상에 별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대는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북한군의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수집을 강화하여 국방부에 보고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보본부에서는 특이 징후가 매우 민감한 사항이라고 認知(인지)하면서도 북한은 고의적으로 NLL을 침범할 의도가 없고 서해상에서 긴장을 조성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결과 정보본부에서는 블랙 북(Black Book)에 또 敵 의도는 단순 침범이라고 판단하고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특이 징후는 삭제한 상태였다. 이것 또한 정보의 축소·은폐요, 왜곡이요, 조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국방부에서 안이하게 대처한 결과, 급기야는 6월29일 서해교전이 일어난 것이다. 對北 햇볕정책을 뒷받침한다고 북한군의 특이 동태를 쉬쉬 하다가 서해교전이라는 엄청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즉 小貪大失(소탐대실)이다. 햇볕정책을 뒷받침하려다가 오히려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과연 이런 식으로 대처했던 것이 올바른 방책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처럼 사태를 악화시킨 사람들이 주동이 되어 나를 징계하겠다고 했으니 賊反荷杖(적반하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계속) (konas)
韓哲鏞 / 前 5679부대장·예비역 육군소장
출처: 월간조선 2002년11월호
- 2026.11.4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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