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①]"내 손으로, 여러분과 함께 지켜야 할 우리나라"
6.25전쟁 62주년을 맞이하여 재향군인회는 국내·외에서 선발된 140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휴전선 155마일을 종단하는 제5회 ‘대학생 휴전선·전적지 답사’를 지난 6월 25일부터 10박 11일간의 대장정을 성공리에 마친 바 있다.
이에 코나스는 체험수기 공모에서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된 6편(최우수 1편, 우수 5편)을 엄선 시리즈로 게재한다. 또 체험수기를 통해 6.25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의 부재를 짚었다. 국가와 학교가 왜 우리의 현대사를 이토록 방치하고 알지 못하게 했는지를 기성세대를 향해 비판하고 있다.
UN 참전국에 대해서도, 주한미군의 대해서도 그들의 시각이 바뀌었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와서 무엇 때문에 피흘리며 죽었는가?’를 자신들에게 되묻고 있다.
코나스는 대학생들의 궁금증을 그들의 체험수기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독자들의 필독을 바라며......(konas 편집자 주)
대학생들은 휴전선·전적지 답사를 통해 어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던 6.25에 대한 참담함을 피부로 느끼고 피비린내 나는 전적지에서 호국선열 및 참전용사들의 우국충정과 희생정신을 가슴에 새겼다.
2012년 6월 25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6.25전쟁 62주년 국가행사를 시작으로 7월 5일. 8군단 사령부에서의 해단식까지 10박 11일간에 대학생 휴전선 전적지 답사 대장정을 마무리하며 내가 느꼈던 것은 내 손으로, 그리고 우리 모두가 우리나라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내가 처음 이 대장정을 하게 된 이유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국방의 의무인 군대를 가야하고 군대를 가면 휴전선을 가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최전방이 아닌 전방인 양양․ 고성에서 군복무를 했었고, 나라를 지키는 일을 했었지만 정작 북과 대치한 경계선에서 피부로 느끼는 긴장감을 가져보지 못해 내 손으로 아름다운 우리 조국을 꼭 지켜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휴전선 155마일 대장정의 기회를 통해 나는 살아있는 안보 현실을 걸으며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
휴전선 전적지 답사 및 대장정은 ‘값진 안보 교육’이다.
우리 국토대장정 5기 140여명 모두는 10박 11일 간의 대장정을 하는 동안 각기 다른 10개의 부대에서 숙박을 했다. 물론 식사를 비롯한 휴전선 전적지 답사 및 각종 여러 편의를 제공해 준 부대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부대를 방문했다.
우리는 부대 안을 들어갈 수 있는 기회만으로도 값진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여러 부대를 방문할 수 있다는 건 민간인을 비롯하여 군인들도 경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군인들과 직접 부딪칠 일은 없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을 볼 수 있었고 나 또한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 생활을 했었기에 여러 신병교육대 속 그들을 바라봤을 때 안타깝고 고맙기도 하면서 옛 생각에 뭉클하기도 했다. 모두모두 파이팅~!!
우리는 숙박을 한 부대에서 부대 소개 및 역사·안보·국가관에 대한 여러 정신교육을 받았다. 대부분의 각 부대들은 6.25전쟁과 그 역사를 함께했다. 각 사단들을 나타내는 숫자의 의미와 부대마크 등의 소개와 연혁, 그리고 부대가 지키는 전선의 지리적, 지형적 중요성, 병영생활 등을 흥미롭게 부대영상으로 보고 또 교육을 들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불법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으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안보 현실이며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다.
6.25전쟁으로 남한은 국토의 피폐화를 가져왔지만 한강의 기적으로, 우리나라는 민주화와 근대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국가이며 세계 5대 메이저 대회를 6번째로 개최한 자랑스러운 나라이다. 우리나라를 용맹하고 강한 국군이 지키고 있어 더욱 든든했고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답사했던 1.21 김신조 침투로, 제3, 4땅굴, 천안함 피격사건 등에서도 보여 지듯이 아직도 북한군의 도발 및 위협과 야욕은 계속되고 있고 우리는 올바른 안보의식으로 정신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居安思危(거안사위)’ 편안하게 살 때 앞으로 닥쳐올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한다.
휴전선 전적지 답사 및 대장정은 ‘살아있는 역사 교육’이다.
대장정의 첫 서막은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대학생 휴전선 전적지 답사 및 대장정 출정식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서울, 수원, 평택, 휴전선 서부전선의 김포시-파주시-연천군-철원군-화천군-양구군-고성군에 이르는 동부전선과 마지막 양양군까지 10박 11일간에 대장정을 마쳤다.
나는 휴전선 대장정을 통해 처음으로 북한 땅을 보게 되었다. 그날의 두근거림과 설레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저녁 9시 뉴스에서나 접했던 북한땅을 직접 두 눈으로 바라보니 내가 정말 우리나라의 긴밀하고 중요한 곳에 있다는 사실에 실감이 났다.
김포 애기봉전망대, 파주 도라전망대, 태풍OP, 철원 평화전망대, 고성 통일전망대에서의 북한 땅을 바라보았을 때는 정말 남한과 북한이 철조망을 서로 두고 있지만 카메라로 찍으면 보일 정도로 상당히 가까이 있음을 알았다. 물론 어디서든 사진촬영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동안 TV나 각종 매체를 통해 글이나 사진으로 접한 북한을 좀 더 바로 보게 된 느낌이었고 마치 내가 우리나라 국가대표로써 전선에 선 기분마저 들었다. 북한은 멀지만 정말 가까웠다.
첫 북한 땅을 보게 된 애기봉전망대에서는 상대적으로 남한 쪽이 고지가 높아서인지 유리너머로 보이는 북한 땅은 비슷비슷한 고지의 산들로 보였다. 애기봉전망대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바다로 가는 그 길목에 위치해 있다.
병자호란 당시 평양감사와 기생(애기)에 얽힌 사연을 바탕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恨)과 같다고 비석을 세우게 된 지명 유래까지 들으며 이북 땅을 바라봤을 때는 분단의 아픔을 또한 나누는 것 같았다.
강 건너 보이는 북한 땅은 상대적으로는 평화로워 보였으나 오히려 그 평화로움을 북한군이 위장하며 산 속 어딘가에 숨어 총을 겨누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나는 평화의 도시, 평화의 길목 파주에서 도라전망대에서의 맑은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과 함께 북한 땅을 본 기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왜냐하면 휴전 협정이 조인된 판문점이 있었고, 깔끔한 도로로 북한 땅 개성으로 연결이 되어 있고 그곳엔 또한 개성공단이 가장 가까이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배경이 된 곳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있었던 곳 그리고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에 있는 남한의 대성동 마을(자유의 마을), 북한의 기정동 마을(선전마을)까지 보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러 전망대를 다녔던 곳 중에 휴전선 너머로 보이는 북한 땅을 바라봤을 때 산과 들로만 보였던 곳과는 다르게 선전마을을 비롯하여 개성공단 주변은 그나마 가장 정돈되어 보이고 깔끔하고 사람 사는 소도시처럼 보였다.
이는 국가 중요 회담이 이곳에서 열리고 또한 외국관광객이나 한국 국민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어서 북한이 남한사람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그런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북쪽에서 그들이 휴전선 너머 남쪽을 바라보았을 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파주시가 지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사실임을 알았다. 북서쪽으로는 개성시와 맞닿고 통일로·자유로와 같이 남북통일과 연관된 이름을 지닌 도로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가 있고, 남쪽으로는 고양시, 동쪽으로는 양주시, 동북쪽으로는 연천군과 경계를 이룬다.
평양·개성과·서울을 잇는 중요한 지역으로 광복 이후 수도권 방위의 약 70%를 담당했을 정도로 군사도시로 변모한 곳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뺏겼다는 사실을 다시 인지했을 때는 순간 오싹했으며 정말 서울하고 휴전선이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낀 순간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에서 ‘보는 만큼 더 안다’가 된 소중한 경험을 했던 시간이었다.
태풍OP에서는 군사분계선(MDL), 비무장지대(DMZ)와 GOP, GP(전방초소)에 대한 직접 눈으로 보며 실질적인 이해를 했던 곳이어서 특히 배움이 컸던 곳이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았을 때 북한과 남한의 경계는 산에 나무의 유무로도 눈으로 쉽게 식별이 가능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북한의 산들은 하나같이 모두 민둥산뿐이었다.
설명에 의하면 북한군은 아직도 나무를 땔감으로 강물을 식수로 퍼 나른다는 것이었다. 반면 우리 남한 쪽 지형은 빽빽한 나무들로 울창했다. 가운데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의 경관이 참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태풍OP에서 전망을 바라보기 전까지는 휴전선도 철책선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군사분계선이라고도 불리는 휴전선은 철책선이 아닌 200m 간격으로 푯말이 있으며 우리가 흔히 애국가에 나오는 철책선은 휴전선이 아니라 휴전선으로부터 약 2km떨어진 남방한계선 GOP철책선이었던 것이다.
물론 휴전선으로부터 약 2km 북쪽으로는 북방한계선이 있다. 이 사이가 비무장지대로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60여년 동안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은 어떨까. 훗날 통일이 된다면 이 비무장지대를 개발이 아닌 보존으로 지켜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철원은 교육의 장이었다. 평화전망대에서 내가 재밌게 보았던 영화 ‘고지전’의 그 실제 배경이었던 백마고지가 있는 곳이라는 사실에 들떴다. 정말 그 고지가 말의 형상처럼 생겼을까. 목이 짧은 기린이 살이 쪄 딱 말 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첩첩산중에 고지들도 있었다. 한국전쟁 때 양측이 이 얕은 백마고지를 놓고 사생결단을 벌였던 이유는 서울~원산을 잇는 경원선 철로를 확보하려는 뜻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서울면적보다 더 넓은 거대한 철원평야를 차지하려 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북한의 김일성이 철원의 곡창지대를 차지하려했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한반도 중심지역으로 철원은 옛 궁예의 태봉국 도성 흔적이 보였는데 우연찮게도 군사분계선을 딱 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이후 월정리역(철마는 달리고 싶다), 지금의 명동과 같은 번화가 중심에 있었다는 노동당사 등도 방문하였다. 곳곳에 6.25전쟁의 흔적이 보이는 철원은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고성 통일전망대. 동으로는 동해바다가 보이고 북으로는 금강산이 보이는 이곳 통일전망대는 여타 다른 전망대하고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높은 고지에서 전망대로서의 역할보다는 동부전선의 끝과 우리나라 최북단으로서의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큰 것 같았다.
그리고 눈에 띄는 특징은 육로로 금강산까지 갈 수 있게 도로가 포장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산과 바다가 이루는 경치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정말로 아름다웠다. 내가 금강산을 육로로 볼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 것인가.
서부전선에서 동부전선까지 휴전선을 직접 보면서 지리적, 역사적인 사실 하나하나 모든 것이 다 중요했으며, 정말로 철책선 하나로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현실을 눈으로 보고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국가 안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웠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6.25전쟁의 역사는 끝나지 않고 같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
휴전선 전적지 답사 및 대장정은 ‘분단의 현실’을 걷는 것이다.
이 대장정을 시작하면서 지급받은 수첩 메모에 가장 먼저 적은 말은 ‘왜 대장정을 하나’, ‘ 대장정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였다. 나는 10박 11일동안 이 질문을 스스로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나의 답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우리는 대장정을 하면서 국립현충원과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께서 당시 전국에 하나뿐인 화천수력발전소를 사수하라 하였던 643고지전투전적비를 비롯하여 엄청난 폭우 속에도 행군하며 들렀던 금성지구전적비(말고개), 금강산으로 연결되는 31번 도로에 있는 피의능선전적비(양구), 백골병단전적비(인제) 등을 답사했었다.
호국 선열들의 희생정신과 넋을 기리는 묵념을 하면서 그 당시 격렬했던 전투의 총성마저도 들리는 듯 했고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전쟁의 폐허로 수많은 시체들로 강과 하천이 핏물이 되어 흐르고 남은 사람에게는 한과 피눈물을 흐르게 하였을 터. 내가 이토록 우리나라에 애착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을까.
우리나라는 내가 가는 곳마다 산과 하천, 강이 어우러져 있는 경치를 보며 본능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감탄했던 정말 아름다운 나라였다. 내가 배낭을 메고 땀 흘리며 한 걸음 한 걸음 휴전선 국토를 걷는 대장정의 ‘꽃’은 행군이었으며 걷는 만큼 애정도 커지며 그것은 곧 ‘우리나라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다.
행군 속 뙤약볕 무더위와 거센 폭우도 만났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이마와 귀밑으로 흐르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털어내듯 모든 것을 다 이겨내었다. 무더위를 녹여준 얼음 수박, 시원한 생수, 달달했던 화채 등 갈증을 달래준 꿀맛처럼 달콤했던 휴식의 기억과 우리 7분대의 지칠 줄 모르는 파이팅과 즐거운 노래도 곁들이며 행군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이어진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꽃’ 핀 것은 ‘정(情)’이었고, 그것은 ‘사랑’이었다.
서로 얼굴도 몰랐던 우리는 서로 각기 다른 이유로 왔지만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대장정을 마쳤을 땐 하나가 되어 뜨겁고 진한 동료애를 느끼게 되었다. 사실 하나같이 다 따뜻하고 마음이 예쁘고 착한 3소대와 7분대 분대원들과의 추억이 대장정의 전부라 말할 정도로 그만큼 우리는 서로 정말 가까워졌다.
소감문에 단 몇 줄로 그들과의 추억이 정말 최고였다고 적는 것이 미안할 뿐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빠짐없이 모두 진심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얻은 정말 잊지 못할 행복한 시간이었다.
문득, 6.25전쟁 당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전 용사분들도 모두 나라를 구한다는 일념 하에 전쟁 속의 따뜻한 전우애를 느꼈으리라. 나는 처음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6.25전쟁 62주년 국가행사 때 늦지 않으려고 삼각지역 출구를 나와 부랴부랴 뛰어 갔었던 기억이 났다.
역 근처에서 여러 6.25참전 용사 할아버지분들께서 서로 반가움이 묻어나는 인사를 주고받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 분들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소원을 말해봐’. 나의 작은 염원이고 소원이 있다면 우리 나중에 다시 꼭 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 국토대장정 ‘통일의 순간’을 걸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장정 마지막 전야제에서 모두 ‘백두산 날라리(?)’가 되어 보는 것이다. 영화 ‘써니’의 마지막 한 장면처럼.
마지막 수첩 메모
우리나라의 올바른 안보현실을 피부로 느끼며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고 우리 국토의 소중함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더 큰 대한민국을 위해 확고한 안보 의식, 늘 안보가 최우선이라는 국민의식을 갖고 깨어 있는 한국인으로써 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토대장정을 참여하고 도움을 주셨던 소중한 모든 분들 전부다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고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나라를 피와 땀으로 지키고 있을 국군 장병 여러분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우리나라를 위해서! 힘찬 박수를 !!!”(Konas)
김형주 (동국대학교)












![[안보칼럼] 한미연합연습 축소에 따른 우리 군의 대책](/img_data/article/110307/110307_3777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