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화를 맛볼 자격을 지녔는가?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의 나날을 보내다 되돌아 보니 64년 전 일어났던 6·25전쟁 발발일이 코앞이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중략)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어릴 때 뜻도 모르며 불렀던 6·25노래. 6·25전쟁 64주년을 맞는 지금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우리 국민 중 1% 많아야 10% 정도일 것이다. 대다수 성인, 대다수의 부모, 대다수의 선생님이 잊어버린 이 노래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배웠을까?
그러고 보니 어린이는 물론 젊은이들이 이 노래를 모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단 생각이 든다. 잊어버릴 것을 잊어야 하는데, 우리는 결코 잊지 말고 가슴 깊이 새기고 반성해야 할 처절한 아픔을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는 듯하다.
출퇴근길 일상에서 만나는 한강. 서울을 상징하는 한강의 큰 물줄기와 새롭게 보이는 고층 빌딩들, 그리고 수많은 인파와 차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64년 전의 오늘을 기억하며 살아갈까 생각해 본다. 최근 기념관을 방문한 몇몇 어린이들이 6·25전쟁을 일본과 싸운 전쟁이라고 답하는 현실을 보며 후배들에게 바른 역사를 알려주지 못한 선배의 한 명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64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났던 6·25전쟁. 남북한을 통틀어 520여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1000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발생했으며 국토는 초토화됐던 현장. 전쟁기념관 회랑에는 창군 이래 전사한 한국군 전사자와 6·25전쟁 당시 유엔군 전사자 등 20여만 명의 이름이 새겨진 ‘전사자명비’가 있다.
지난해 7월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기념관을 찾은 국내외의 많은 참전용사는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한 채 전우를 찾기 위해 깨알 같은 이름들을 손으로 만지며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특히 외국의 참전용사들이 “60여 년 전 우리가 흘렸던 피와 땀의 의미를 대한민국이 잊지 않고 이렇게 기억해 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할 때면 기쁨보다는 가슴이 더 무거움을 느꼈다.
명비지역에 쓰여 있는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문구처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이렇게 많은 희생 속에서 이룬 것이다. 최근 동북아의 주변 정세가 예사롭지 않다. 초강대국 미국의 동북아지역 안보전략변화 움직임, 군국주의의 새로운 길을 꿈꾸는 일본의 야망, 그리고 러시아, 중국 등의 자국이익 우선주의 정책 추진, 나아가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은 국가안보에 대한 우리 모두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역사 이래 자유와 평화를 거저 얻은 나라는 없다. 퇴근길 연인에게 첫 키스를 언제,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여자 친구에게 기습 키스를 한 후, 6·25전쟁이 일어난 이유가 바로 방심 때문’이라 말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라디오로 들으며 ‘평화를 지킬 힘과 능력이 없다면 평화를 맛볼 자격이 없다’는 교훈을 되씹어 본다.
이경환 (전쟁기념관 교육홍보부장)
* 출처 : 국방일보 6월23일 16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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