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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포럼, '6·25전쟁 정전의 지정학'

제59회 이승만포럼, 연세대 김명섭 교수 "군사분계선 왜 그렇게 그어졌는지 ‘지리학’에서 정확하게 가르쳐야"
Written by. 강치구   입력 : 2016-01-20 오전 8: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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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정전을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비판지정학적 관점에서 바라 본 학자의 견해가 제시됐다.

 19일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제59회 이승만포럼에는 ‘6∙25전쟁 정전의 지정학 : 시간, 공간, 인간’을 주제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명섭 교수가 발표자로 나섰다.

 ▲ 19일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제59회 이승만포럼에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의 김명섭 교수는 ‘6∙25전쟁 정전의 지정학 : 시간, 공간, 인간’을 주제로 발표를 했다.ⓒkonas.net

  이날 김명섭 교수는 6∙25전쟁과 관련해 시간, 공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인식의 차이를 지적했다.

 우선, 첫 정전회담이 열린 1951년 7월 10일의 개성과 관련해 우리 국방부는 11시로 기록했으며, 중국에서는 10시로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당시에 미군은 서머타임을 적용해 양측에 시차가 있었으며, 점심시간을 통상 12시에 갖는다고 가정하면 당시 회담에서 ‘시간 선택의 주도권’을 누가 가졌는지 추정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개성’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개성에서 첫 정전회담을 했기에 우리가 개성을 차지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리지웨이 사령관은 원산 앞바다에 병원선을 띄워놓고 해상에서 협상을 할 것을 제의했지만 결국 첫 정전회담은 개성에서 열렸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해상에서 협상을 했더라면 첫 정전회담이라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제해권을 유엔군이 장악했다’는 우월한 입장에서 회담을 전개해 나갈 수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 정전회담에서 북쪽은 ‘38선’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주장을 했다. 38선을 기준으로 협상을 했다면, 개성이 우리의 영토가 됐을 것이고 최종 정전협상이 이뤄지기까지 2년의 시간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고 최근의 NLL 논란은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김 교수의 강의를 듣는 90%의 학생들은 ‘38선’을 휴전선으로 정하는데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1951년 7월 10일의 전선의 상황은 유엔군과 국군이 제공,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마오저뚱이 유엔군과 국군에 유리한 제공권과 제해권을 저지하려는 것을 노리고 ‘38선’ 협상을 지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당시의 이러한 상황을 ‘지리학’에서 정확하게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김 교수는 “군사분계선이 왜 그렇게 그어졌는지 진실에 입각해서 가르쳐야 NLL과 같은 국론분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는 박진(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회장과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며느리 조혜자 여사가 참석했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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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미소(pjw3982)   

    종북을 없애자,,,

    2016-01-20 오전 9:29:15
    찬성0반대0
1
    2023.9.28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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