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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기념] (64)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Written by. 인턴기자 주민우   입력 : 2026-11-03 오후 7: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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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입구 왼쪽 언덕에는 두 개의 하얀 삼각형이 마주 선 탑이 하나 있다. 바로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다. 행주산성을 찾는 이들에게도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 탑에는 1950년 9월, 서울 탈환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한강을 건넜던 한·미 해병대의 치열한 전투와 희생이 담겨 있다.

 ▲ 행주산성 입구 부근에 있는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konas.net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 초기,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나는 위기에 처했다. 전세를 뒤집기 위해 유엔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고, 상륙에 성공한 한·미 해병대는 경인가도를 따라 서울 탈환작전에 나섰다. 그러나 수도 서울을 되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었다. 바로 천연의 방어선인 한강이었다.

9월 19일, 서울을 향해 진격하던 한·미 해병대는 한강 남단에 도착했다. 이들이 한강을 건너기 위해 선택한 곳은 행주나루였다. 약 400년 전 권율 장군이 행주대첩을 통해 왜군을 물리쳤던 덕양산 일대가 다시 한번 전쟁의 명운을 가를 무대가 된 것이다.

이날 오후 8시 14분, 해병대 수색대원 14명은 고무보트 두 척에 나눠 타고 강 건너편의 적정을 살폈다.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보고를 받은 미 해병대는 같은 날 밤 도하작전을 감행했다. 그러나 김포 비행장을 잃은 북한군은 이미 행주산성 정상 부근에 병력을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 수륙양용장갑차가 강 중간쯤에 이르자 행주산성 쪽에서 박격포탄과 기관총 사격이 쏟아졌다. 결국 장갑차 두 대가 좌초되고 정찰대원 한 명이 실종되는 피해를 입은 채 첫 번째 도하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전경 ⓒkonas.net

 

 ▲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안내문. 건립일과 건립 개요, 전투 성과 등이 적혀 있다. ⓒkonas.net

 

다음 날인 9월 20일 새벽, 한·미 해병대는 다시 도강작전에 나섰다. 오전 6시 45분, 도하 지점에 대한 포병의 준비사격이 시작됐고, 해병대는 적의 거센 저항을 뚫고 한강을 건넜다. 강변에 도착한 병력은 오르막 사면을 따라 행주산성 고지를 향해 공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의 저항은 완강했지만, 김포 비행장에서 출격한 전투기들의 지원사격과 함께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마침내 미 해병대는 해발 125m의 덕양산 정상을 점령하고 한강 이북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후면에 있는 전첩비 재건립 비문 ⓒkonas.net

 

 이 전투에서 미 해병대는 북한군 약 20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뒀지만, 아군 역시 43명이 전사하는 희생을 치렀다. 행주도강작전의 성공은 서울 탈환작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이 됐으며, 한·미 해병대는 이후 서울 시내에서 전투를 이어갔다. 그 결과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게 된다.

행주산성 주차장이 내려다보이는 버스정류장 옆에 세워진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는 이러한 승전의 역사를 증언하는 기념물이다. 1958년 9월 28일 해병대 사령부가 건립한 이 전첩비는 두 개의 하얀 삼각형이 마주 보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생사를 넘나드는 작전을 함께 수행한 한국과 미국 해병대의 우정과 기상을 상징한다.

원래 행주대교 북단 서원마을 산봉에 건립된 전첩비는 기존 규모와 형태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1984년 9월 20일, 현 위치에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비문에는 ‘이 승첩에 자유의 신으로 승천한 그대들의 빛나는 공훈과 아름다운 이름은 저 한강수와 더불어 이 국토와 겨레의 마음속에 영원무궁히 흐르리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전투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전면에 있는 비문 ⓒkonas.net

 

전첩비 아래에는 한국전쟁 당시 상륙작전에서 활약했던 수륙양용장갑차도 전시되어 있으나, 취재 당시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행주산성을 찾는 방문객 가운데 이곳에서 한강 도하작전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행주산성이 행주대첩의 역사와 자연경관을 함께 즐기는 관광지로 자리 잡은 오늘날, 한국전쟁 당시 서울 탈환의 발판을 마련했던 행주도강작전의 역사 역시 잊혀서는 안 될 것이다. 전첩비에 새겨진 이름과 문구는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이들의 헌신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konas)

 ▲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앞에 있는 수륙양용 장갑차 안내문. 취재 당시에는 장갑차를 볼 수 없었다. ⓒkonas.net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주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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