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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②] 군 미필 대한민국 남자에게 새겨진 안보의식

Written by. 유승현   입력 : 2012-08-03 오전 9: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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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나이는 24살, 대학생으로는 적다고 할 수 없는 나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미필이다. 물론 나는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국가유공자도 아니다. 하지만 수의학과 특성상 졸업하고 공익수의사나 수의장교로 가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친구들의 절반이 넘게 전역을 했고 거의 전역을 앞두고 있는 내게 이번 대장정은 비록 군대를 다녀오진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남자로써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의식을 선물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 온 후 계속 창밖에는 비가 오고 있는데 무거운 배낭위에 우의를 덮고 말고개, 중고개를 넘던 우리의 행군이 생각나면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 기억들을 포함하여 뜻깊었던 10박 11일간의 이야기를, 그 즐거운 추억들을 말 해 볼까 한다.

 대장정의 시작과 끝에 항상 곁에 있어 준 우리 분대원들과 친구들

 10대 1 이 넘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장정에 참가할 수 있게 되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던 나는 그 후 시간이지나 3차 OT에선 ‘아 정말 내일이면 시작이구나’ 하고 다시한번 설레이고 있었다. 조편성 시간이 되어 남자5명 여자5명씩 조를 짜기 시작했고 나는 6분대가 되었다.

 그리고 10박 11일을 함께할 소중한 6분대원들을 만났다. 아직도 우리 분대원들을 처음봤을때의 그 설렘과 약간의 어색함과 반가움이 생생하다. 84년생 범진이 형 부터 94년생 재한이 까지 10살의 차이가 나는 대원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한번도 다툼 없이 11일을 동고동락하며 재미 있게 보냈다.

 물론 힘 들때도 있었다. 비가 오기도 했고, 오래 걸어 피곤 할 때도, 물집이 잡힐때, 등등 많은 일이 있었지만 소중한 6분대원들 덕분에 많이 웃고 힘내며 잘 버틴거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즐겁게 노래하고 수다를 나누면서 고생을 덜었고 서로를 챙겨주며 힘을 많이 얻었다. 그리고 6분대 말고도 늘 친절했던 다른 대원들과 고생하며 챙겨주신 스탭님들, 대장님들, 단장님 모두 다 감사한 분 들이다.

 6.25와 그 후 북한의 도발, 우리나라 역사와 현실 바로 알기

 낮에는 행군을 했다면 저녁에 우리가 한 것 대부분은 안보교육이었다. 그중에서도 6.25 전적지 답사라는 취지에 맞게 6.25에 대한 교육을 많이 들었다. 나의 아버지는 해병대 장교 이시며 내가 어렸을 때 는 6.25에 대해 많이 배웠었다.

 그래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우리에게 안보교육을 해주신 분들이 많이 하는 얘기 중 하나가 ‘요새 많은 사람들이 6.25 전쟁을 북침이라고 한다.’ 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천안함사건, 연평도포격 사건도 정부의 조작이라고 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는 모두 6.25를 남침이라 제대로 배웠던거 같은데... 하면서 의아해 했다.

 답사 첫날, 우리는 전쟁기념관에서 6.25전쟁 62주년 행사에 갔었다. 그때 참전용사분들, 유공자 가족분들, 또 외국에서 참전하셨던 감사한 분 들까지 오셨었다. 만약 6.25가 북침이었다면 그분들을 비롯한 우리 국민들의 희생과 노력은 뭐가 되는 걸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를 위해 노력하신분들의 노고를 깎는 그런 말들... 참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소련이 해체 되면서 과거의 문서들이 많이 나와 6.25가 남침이라는 명확한 증거도 있는 마당에 우리 국민 내부에서 그런 목소리를 내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무서운 일이였고,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 현충원에 갔을 때 수많은 전사자 이름이 적혀 있었고 62년이 흘렀음에도 거기서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와 가족분들이 계셨다. 비록 우리 젊은세대는 직접적으로 전쟁을 겪진 못했지만 전쟁이 가져다준 황폐함과 눈물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6.25 이후 국토의 모든 중요 시설이 파괴 되었고 민간인 피해 약 250만명, 30만명의 미망인, 10만명의 고아, 천만명의 이산가족을 낳았다. 그런 전쟁을 제대로 알고 다신 그런 피해가 없도록 과거를 제대로 알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식상하지만 말 그대로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던 행군’

 ‘우로 밀착!’ ‘횡단!’ ‘속보!’ 살면서 이런 단어들을 외치며 140명이 걷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 첫날 버스를 많이 탔던 우리는 둘째날부터 우리는 제대로 행군을 하기 시작해서 10일차에 마지막 8군단 사령부까지 걸었다.

 비록 각오는 했지만 더운 여름날 낮에, 그것도 거의 아스팔트의 차를 피해가며 걷는건 쉬운일이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3일차엔 폭염주의보 까지 내렸고 다른 날도 그에 못지않게 더웠으며 6일차엔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그렇게 비가 올 때 큰 고개를 두 번이나 넘기도 하였고 걷다가 물집이 잡히기도 하였다. 만약 혼자였어도 그 긴 행군을 10일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나 보다 약해보이는 여자애들도 묵묵히 잘 걷는 것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고 무엇보다 6분대! 파이팅! 을 외치며 힘을 냈다.

 10일간 파이팅을 거의 100번 넘게 했을 만큼 우리는 누구보다도 이 대장정간 ‘파이팅’ 하였다. 파이팅 말고도 ‘우로밀착’, ‘좌로밀착’ 을 외치며 안전에 조심하였고 모두가 횡단! 을 외치며 반대쪽으로 옮길 땐 모두 미소를 지으며 재미있어 했다.

 잘 모르는 옛날 노래부터(이건 범진이형이 좋아했기 때문이었지만) 최신 아이돌 노래까지 잘 몰라도 흥얼거리며 조원들끼리 친해지고, 친해져선 더 크게 부르며 힘을 얻고 잘 행군 할 수 있었다.

 또한 휴식 중간 중간 나눠 주셨던 생명수 같은 생수와 빵과 쥬스, 수박...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잠시 쉬는 휴식은 정말 꿀맛 같았고 나중에 가방메고 출발할 땐 다시한번 기운을 냈다. 비록 다리가 땡기고, 비가와서 운동화가 젖기도 하였지만 그런걸 이겨냈기에 오히려 더 보람차고 즐거운 행군이 된 것 같다.

 아직 끝나지 않은 분단의 현실

 ‘지금 우리나라는 평화로운가요?’ 하고 국민들한테 물으면 아마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렇다고 대답 할 것이다. 그럼 GOP에서 근무하고 있는 군인들한테 물어보면 어떨까? 또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계속 준비하고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묻는것과 젊은 세대한테 물을 때 대답은 똑같을까? 아니라고 본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 아버지는 군인이시다. 그래서 부모님은 뉴스를 보시며 자주 걱정을 하신다. 요새 사람들이 점점 북한이 적이란 것을 잊고, 안보의식을 잊고, 6.25 전쟁과 우리나라가 분단국이라는 것을 자꾸 잊는 것 같다고...

 6.25 전쟁도 전쟁이지만 그 이후의 도발에 대해 모두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부끄럽지만 나도 대장정에 참가하기 전에는 모두 알지는 못했다. 이번 대장정을 하면서 느낀 것은  북한은 우리나라를 침략하기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노력하는데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을 잘 안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쟁이 끝나고 북한의 도발이 없었던 해는 10년도 채 안된다고 하고, 실제로 2010년에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사건 등이 일어났지만 우리 국민들은 너무 무관심하다. 심지어 정부에서 조작한 사건이라는 의견마저 있다. 정부에서 우리 해군을 공격하여 천안함을 일으켰을까? 그럼 그때 죽은 병사들은 뭐가 되는 것일까.

 이번에 같은 분대를 했던 신성이는 2함대에서 근무한 해군출신인데, 천안함 희생자 중엔 자기 훈련소 동기들도 있다고 했다. 북한의 도발에 의한 피해는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가 모두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났을때 우리형은 백령도에서 소위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번 대장정에서 나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나이의 군인들이 잠도 못자며 최전방에서 열심히 근무 하는 것을 보고 군대를 안 다녀온 내가 약간은 부끄러웠다. 평화는 좋지만 그걸 지키기 위한 방법을 오해 해선 안 될 것이다.

 안보교육 때 무서웠던 일화 중 하나는 종북의식을 가진 대학생들이 한꺼번에 입대하여 그 훈련소 동기 모두를 적화사상으로 무장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김신조 일당 침투사건, 땅굴 발견,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해도 배웠는데 제 4 땅굴을 보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레일까지 깔아가며 그 깊은 곳에서 이렇게 길게 파왔다는것에 우리가 지금 안보의식을 잃는다면 제 2의 6.25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북한 전체가 적은 아니다. 북한 주민들은 하루하루 배고픔에 가난과 싸우고 있다. 내 친구가 미국에 여행 갔다가 탈북자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이제 북한 주민들도 남한이 잘살고, 김정일 정권이 잘못됐다는 것을 거의 알고 있다. 다만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처벌 때문에 모두 무서워하고 있다’ 는 말을 해주셨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침범하여 적화통일을 이루려는 김정은과 그것을 주도하는 정치인을 비롯한 고위층은 우리의 주적이며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황장엽씨가 남한에는 간첩이 5만명이 넘으며 모든 주요한 얘기가 김정일한테 들어가고 있다고 하였다.

 이런 현실에서 지금처럼 우리 젊은 세대들의 의식을 다잡아야 한다고 대장정을 통해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예전 송나라에 비교하며 걱정하는 분들이 계셨다. 문화와 예술의 강대국이지만 오랑캐들에게 자꾸 약한 모습을 보여 무너진 송나라... 평화를 지키기 위한 힘은 꼭 필요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훈련소 체험, 친구들과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다.

 수많은 국토순례가 있고 내가 참가한 대장정과 차이점도 여러면 있지만 그중에서도 실제 군인처럼 생활한 것이 큰 차이일 것이다.

 우리는 조를 편성 할 때도 1조, 2조 이렇게 가지 않고 1소대, 1분대로 편성했고 식사와 취침을 거의 모두 훈련소에서 하였다. 예비역인 분대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진짜 군대 다시온 것 같다’ 라고 말 할 정도였으니... 생활하며 느낀 것은 참 군대는 단체생활을 중시한다는 것이었는데 밥을 먹을때도, 숙소로 갈때도 두 줄씩 서서 어느정도 인원이 되면 가곤 하였다.

 6시에 모두 기상하여 7시에 식사를 하고 8시에는 출발 하는 6·7·8 패턴도 하루도 빠짐없이 모두가 지켰는데 ‘이런게 군대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한명이라도 반복구호를 하면 다시 해야했던 PT체조, 운동장을 돌던 구보, 전방을 향해 함성지르기, 목소리가 작다고 혼나던 일, 얼음만큼 차가운 물로 샤워하며 벌벌 떨었던 일, 10개의 훈련소 시설 체험 등 군대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고 ‘참 내가 편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친구들끼리 모여 군대이야기를 하면 맨날 듣고만 있었는데 이젠 웃으며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4일차 저녁에 부모님께 편지를 쓸때는 뭉클하기도 했는데 30년 넘게 군인으로 일하신 아버지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되었고 다시 아버지를 만나면 조금더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6·7·8을 잊지 말고 나태했던 그동안의 삶을 반성하고 좀더 규칙적이고 내게 허락된 것들에 감사하며 생활해야겠다.

 너무나 아는것이 없던 나를 반성하다.

 많은 전적지와 거기서 일어났던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참 내가 6.25에 대해 아는게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처음에는 남한이 계속 후퇴하여 낙동강까지 갔다가 인천상륙작전과 낙동강을 사수하며 유리해져 북으로 전진하여 통일까지 갔으나 중동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여 소모전을 벌이다가 휴전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열흘간 24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던 처절한 전투가 일어난 백마고지 전투나 노동당사에서 일어났던 애국지사에 대한 처벌, 필리핀군전투전적비에서 들었던 필리핀군 이야기 등 많은 것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게다가 남한에 지원해준 나라 수와 그 규모에 대해서도 잘 몰랐는데 나의 무지가 참 부끄러웠다. 배경지식이 많았으면 대장정 동안 더 깊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을텐데... 또한 그 이후의 북한 도발이나 평화의댐 건설 배경 등 미리 알면 더 좋았을 것 같은 게 참 많았다.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에는 6.25에 대한 책도 많이 읽고 정보도 더 찾아보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많은걸 알게 된 후 대장정동안 갔던 곳의 사진을 보면 더욱 느낄게 많을 것 같아 기대된다.

 1년뒤 여름엔 방학도 없이 수의사 국가고시를 위해 공부를 해야한다. 그래서 실질적으론 이번이 나의 마지막 여름방학이다. 만약 대장정을 가지 않았어도 내 여름방학이 특별할 수 있었을까? 마지막 여름방학에 대장정에 참가하게 된것에 나는 정말 만족한다.

 살면서 많은 여름을 겪지만 이번 여름은 내게 가장 특별한 여름중에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가장먼저 6분대원들과 생활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같이 행군한것도 기억에 남고  분대별 행군때 빨리 가자고 달려갔던것, PX이용한다고 신나서 들뜬 나머지 5만 5천원 어치를 사버려 반도 못 먹었던 일, 흡연자인 범진이형과 무엽이가 금단증상에 시달리던 일, 우리끼리만 재미 있었던 장기자랑... 참 좋은 사람들과 많은 추억을 쌓았다.

 그리고 우리 분대 말고도 친해진 다른 분대 친구들과, 우리를 위해 잠도 못자고 수고해주셨던 스탭분들, 더 좋은 대장정이 되도록 일정이 바뀌어도 노력하시던 단장님, 부단장님과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이 우리의 여름을 특별하게 해주셨다.

 좋은 시설을 허락하신 사단장님, 노동당사에서 수박화채와 빵을 주시던 재향군인회 어머니들, 우리가 온다고 숙소와 침구류를 내주었던 군 장병들...

 이 자리를 빌어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비록 군대도 안다녀온 나였지만 이 기회를 통해 안보의식을 더욱 갖게 되었고 힘이 있을 때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번 대장정에 참가하게 된것을 행운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이 여름날의 기억을 잊지말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향군!(Konas)

 유 승 현(건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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