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③] 국가유공자인 나에게 더 큰 애국심을 갖게 해준 대장정!
나는 군복무 시절 충남 계룡시에 있는 육군본부 지휘통제실에서 근무했다. 후방 지역이다 보니 전방 지역에 대해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각종 장비와 보고서들을 통해 사진과 영상, 그리고 위성지도들로만 본 것이 다였다.
당시 군입대전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하니 최전방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나라 최전방에서 민족분단의 서러움과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있어야하는 안타까움에 대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상세히 왜곡 없는 현실이 알고 싶었다.
이런 나는 군복무중 사고로 지금은 국가유공자가 된 상태이다. 내가 국가유공자가 되면서 한 가지 가슴속을 뜨겁게 달군 것이 있었다. 바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과 자유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하신 분들과 그 유족들의 아픔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이다.
비록 국군의 심장부인 육군본부 지휘통제실이란 곳에서 간접적으로 보았지만 최전방 지역은 언제나 한번쯤 내 두 눈으로 보고 두 발로 걸어보고 싶었던 지역이었으며 사고로 인한 수술 후 나 자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때문에 이번 대장정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 대장정을 통해 알게된 소중한 인연과 추억이 있었기에 완주할 수 있었던 휴전선 155마일, 제5회 대학생 휴전선·전적지 답사 대장정 이야기를 시작한다... - “우리는 간다, 젊음을 휘날리며!”-
[O.T 그리고 분대원 결성] 6. 24 (일)
6월 24일 오후 처음으로 대장정에 참가하는 인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바로 오리엔테이션과 물품 지급 그리고 대장정 기간 중 희로애락을 함께할 분대원을 정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12개의 분대가 3개씩 보여 1개의 소대가 되는데 12개의 분대 중 어느 분대를 들어가야 재미있는 10박 11일간의 대장정이 될 수 있을지 무척이나 고민되었다.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고 군대에서는 행군을 했을 때 뒤로 갈수록 힘들다는 생각에 빨리 앞 분대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났지만 이미 중간을 훨씬 넘어간 뒤였다.
그러던 중 뭔가에 이끌리듯 나도 모르게 어딘가 줄을 섰는데 바로 9분대였다. 9분대 친구들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되었다. 우리는 어색한 분위기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서로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또한 어색한건 첫 만남이기에 당연해보였고 잠시 후 단장님께서 지급 물품을 받으러 나오라고 하셨다. 분대별로 나가서 물품을 받았는데 ‘드디어 이제 출발이구나!’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무료로 대장정에 참가하는데도 지급되는 물품은 꽤나 많았다. 물품을 받아 자리로 돌아온 뒤 단장님과 부단장님께서는 지급 물품들의 사용법에 대해 설명해 주셨고 준비를 마친 분대원들 중 집이 멀어 출발일인 6월 25일에 오지 못하는 분대원은 찜질방으로 가고 수도권에 거주하는 분대원은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인천에 거주하기에 집으로 돌아가서 미비한 준비를 마무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D-Day] 6. 25 (월)
6월 25일 아침 나는 지급된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지하철을 타지만 발걸음만큼은 가볍다. 나는 자랑스러웠다! 휴전선을 따라 155마일을 걷는다는 것과 국내외 1,428명의 대학생이 지원하여 11: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최종 선발된 140명중 1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용산 전쟁기념관에 도착했다. 곳곳에 지급된 라임색의 티셔츠와 파란 조끼들이 보였고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제 62주년 6.25전쟁 기념식에 참가하여 발대식 및 단장님의 신고를 시작으로 소중한 경험 그리고 인연을 갖게 해준 우리의 대장정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발대식이 끝나고 국립현충원으로 이동하였다. 국립현충원에서 우리는 순국선열들께 참배 후 근처 공간에 분대별로 모여앉아 지급받은 도시락을 먹으며 조금씩이나마 친해져갔다. 점심을 먹고 공군 제10전투비행단으로 이동하여 약 30분간 부대 관람 및 소개영상 시청 후 다시 평택에 있는 해군 제2함대사령부로 가서 지난번 북한의 무력도발로 반파된 대한민국 초계함 천안함을 볼 수 있었다.
처음 천안함을 보자 TV나 신문의 기사를 통해 보던 것과는 달랐다. 너무나도 참혹했고 그곳에서 작전수행 중이던 분들과 차갑고 어두운 바다 속에서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니 너무도 안타깝고 원통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중요하다. 우리의 안보의식이 무너지면 북한은 이처럼 언제든 도발을 일삼는다.
아픔을 뒤로한 채 우린 오늘 일정의 마지막 장소인 애기봉 전망대로 이동했다. 이곳은 해병 제2사단이 위치해 있었다. 전망대 내부로 이동하여 애기봉의 유래와 국가 안보적인 특징들에 대해 브리핑을 듣고 사진촬영을 끝으로 1사단 신교대대로 이동하여 2년전에 전역후 오랜만에 먹는 군부대에서의 저녁식사와 부대소개 영상 및 STAFF 소개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고 점호를 끝으로 잠들었다.
[D+1] 6. 26 (화)
오늘은 2일차, 눈을 뜨자 나는 재 입대를 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생활관 밖으로 나가 점호와 함께 체조로 하루를 시작했다. “전방에 힘찬 함성 5초간 발사!” 오랜만에 해보는 것이지만 하고 나면 가슴속이 시원하다.
아침 식사로 일명 군데리아를 먹은 후 도라 전망대와 제3땅굴을 갔는데 제3땅굴 내부는 북한은 언제든 남침을 꿈꾸며 도발을 계획 중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후 이동한 곳은 성촌동에 있는 1.21 침투로였는데 단장님의 상세한 설명으로 당시 1.21 사태의 상황이 생생하게 재현되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를 김신조 일당이 습격할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심각한데 이를 시도했다는 것은 국가안보적으로 매우 심각하다 생각했다.
점심식사 후 행군을 계속하였고 잠시 후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물을 마시려는데 너무 많은 물을 마시면 오히려 갈증이 심해진다는 말에 조금의 물만 마시고 얼마 뒤 “출발 1분전!”이라는 소리에 바로 출발 준비를 하였다. 그 후 팀원들과 친해지기 위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힘든 줄 모르고 어느새 2일차 숙영지에 도착하였다.
[D+2] 6. 27 (수)
벌써 3일차, 시간이 참 빠르다... 3일째가 되니 거의 적응한 것 같다. 28사단 신교대대를 뒤로하고 선사유적지를 거쳐 태풍 OP에 도착하였다. OP는 Observation Post로 관측소를 뜻하는데 이곳에서 최근 보급된 신형 장비들과 보급품 설명을 듣고, DMZ 지역과 북한 지역을 망원경을 통해 볼 수 있었으며 전망대로 이동하여 브리핑을 들었다.
그 후 우리는 필리핀군 참전비에서 참배를 하였다. 이날 머무를 숙소가 해당 사단의 사정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변경되는 바람에 일정도 조금 변경되었고 덕분에 남는 시간을 이용해 대원들과 스텝이 하나 되어 즐거운 축구경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숙소는 매우 오래된 막사여서 시설이 매우 열악하여 여자 대원들의 불만이 많이 들렸다.
[D+3] 6. 28 (목)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게 평상시 하던 점호와 체조 외에도 구보로 4일차가 시작되었다. 이곳을 출발해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걸어갔다. 도착한 곳은 신탄리역, 이곳은 현재 경원선 통근열차의 시종착역으로 대한민국의 최북단역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단체 사진촬영 후 분대별로 자유롭게 사진촬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우린 '남는 추억은 사진뿐'이라는 일념 하에 하늘로 높이 뛰어 오른 장면을 담기 위해 높이 뛰어보기도 하고, 분대별 사진과 3개의 분대가 모여 소대별로 사진촬영을 하기도 하였다.
그 뒤 우린 6사단 수색대대의 실감나는 모의 전투 현장과 장비관람 후 6사단장님의 배려로 6사단 포병연대의 침대가 있는 신막사로 이동하여 점심 식사 후 평화전망대와 남북분단의 상징인 ‘철마는 달리고 싶다’를 거쳐 노동당사로 이동하였다.
이곳에서는 재향군인회 여성회에서 오셔서 더운 날씨에 지친 대원들을 시원한 수박화채와 빵과 음료로 갈증을 해소시켜 주셨다. 기념사진 촬영 후 점심식사를 하였던 6사단 포병연대로 이동하였다. 도착하자 군악대의 힘찬 연주가 들려왔다!! 샤워 후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먹은 뒤 우린 처음으로 PX를 이용할 수 있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자 대원들은 PX의 저렴한 물가에 놀란 눈치였다.
[D+4] 6. 29 (금)
5일차인 오늘 하루, 결코 만만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10박 11일간의 일정 중 가장 긴 거리를 행군 일정이 잡혀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깃발을 들고 분대원들의 앞에 섰다.
오전 행군길에서 힘들었지만 일명 엄태웅길이라 불리는 곳을 걸어 고석정까지 가는 길에 자연의 아름다움에 놀랬고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이 시원했다.
휴식 후 오후 행군 출발 전 촬영 중이던 국군방송의 PD의 요청에 우린 대원들과 함께 큰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치고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얼마 뒤 잘 참고 어느 날과 다르지 않게 밝은 모습으로 걷던 동료 대원들의 얼굴에서 점점 힘든 표정이 드러났다.
목적지인 백골부대인 3사단 신교대대로 가는 길에는 산악지형도 있었고 길이 험한 편이었다. 목적지에는 군악대와 재향군인회 회장단님들과 사단장님의 위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부대로 들어갔고 격려사와 사진촬영을 끝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비록 힘든 하루였으나 완주했을 때의 기분은 그 어떤 날보다 더 보람찼다.
[D+5] 6. 30 (토)
백골부대의 아침은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요새와도 같았고 6일차인 오늘은 벌써 6월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식사 후 출발하려는데 비가 쏟아진다... 단장님 말씀이 4기 때에는 비가 상당히 많이 내렸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고 하셨기에 처음에는 이전까지 너무 더운 날씨 탓에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생각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강수량은 계속하여 늘어났고 우의를 입었음에도 신발은 물론 옷까지 다 젖을 정도였다. 산악지형이라 빗물들은 도로를 따라 빠른 속도로 흘러내렸으나 다행히 어제와는 달리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였다.
도착한 곳은 금성지구전투전적비인데 한 치의 땅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일념에 6.25 전쟁의 마지막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진 곳이라 한다. 이곳에서 아래쪽에 또 다른 추모비가 있었는데 이 추모비는 지난 1996년 7월 27일 우리가 이곳에 간 날처럼 120mm 집중호우로 일어난 산사태로 순직한 23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승리부대에서 건립한 것이라 한다. 이날도 어김없이 부대 소개 영상 시청과 점호를 끝으로 마무리 되었다.
[D+6] 7. 1 (일)
오늘은 7월의 첫날이지만 벌써 대장정의 절반이 훌쩍 넘어간 1주가 되는 7일차이기도 하다.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지만 시작할 때의 설렘이 아쉬움으로 채워진다. 아침에 잠시 흐린 날씨가 계속되었으나 곧 우리들의 열정만큼이나 뜨거운 태양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오전에 걷는 길에는 좌측으로는 꽃과 풀이 자라나고 우측으로는 시원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껏 걸었던 길 중 최고의 길이었던 것 같다. 화천대교 인근에서 우리는 휴식을 취하기로 했으나 대원들과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 후 7사단 보충대로 이동하여 점심 식사 후 이동하던 길에 6.25 참전용사님의 현지 설명이 있었고 점심 식사시간 화천지역 재향군인회에서 지원해주신 시원한 이온음료와 함께 이색적인 행군을 시작하였다. 바로 우리가 기대하던 ‘자유 행군’이다! 기존 대열을 유지한 채 이동하는 행군이 아닌 정해진 시간과 목표지점까지 분대단위로 이동하는 것이다.
가는 길에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근처 계곡에 들려 잠시 쉬어가기도 하며 때론 다른 분대와 경쟁을 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꼴지는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으로 부지런히 걸어간 우리 9분대가 1등을 하였다!
1등의 특혜는 다른 분대보다 더 먼저 도착하여 오래 쉴 수 있었다는 것과 다른 분대가 다 도착한 뒤 곧바로 숙영지인 7사단 신교대대로 이동하는 기간 동안 비교적 힘이 덜 드는 가장 최선봉에 서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수였던 내 앞에는 정말 단 한명도 없었기에 내 속도에 140명이 맞추어 걷는다는 것이 살짝 부담이 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너무 빠른 속도로 중간에서 처지기 시작하면 뒤쪽은 도미노 효과로 훨씬 더 힘든 행군이 되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인접해오자 어느 날처럼 군악대의 연주로 오늘의 행군도 무사히 완주하였다.
[D+7] 7. 2 (월)
다시 돌아온 월요일인 8일차, 오늘은 민통선이다. 민통선이란 민간인 출입 통제선으로 남방한계선 바깥 남쪽으로 5~20km에 있는 민간인 통제구역을 나타내는데 이곳은 민간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던 곳이기에 울창하고 푸른 숲과 보기 힘들었던 동물들을 비롯하여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평화롭고 고요하게만 보이는 민통선 내부의 안동철교를 시작으로 우리는 평화의 댐에 도착하였다. 평화의 댐은 북한의 금강산댐으로 인한 피해에 대비하고 상수원 공급을 위해 국민성금으로 2단계에 걸쳐 완공되었으며 이 댐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댐이다.
바로 옆에는 평화의 종이 있는데 이 세계평화의 종은 세계 각국의 분쟁 지역에서 수집된 탄피들을 모아 만든 동으로 평화, 생명,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1만관(37.5톤)으로 만들어진 종은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고자 1만관 중 1관에 해당하는 위쪽에 장식된 비둘기의 날개 하나를 때어내 9.999관으로 주조되었다가 통일의 날 때어진 1관을 추가하여 세계 평화의 종을 완성할 것이라 한다. 오늘 우리의 숙영지는 21사단이었고 원래는 신교대대였으나 부대 사정상 갑작스럽게 변경되었다.
[D+8] 7. 3 (화)
9일차인 오늘 갈 곳은 피의능선전적비이다. 이 피의능선은 983고지, 940고지, 773고지와 연결되는 산맥으로 이루어진 능선을 말하며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수일간의 고지전으로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한 곳이다. 이곳에서 참배를 마치고 우리는 제4땅굴로 향했다.
제4땅굴이 있는 곳은 지형이 펀치볼을 닮았다하여 펀치볼지구라 불리고 있었으며 땅굴 앞에는 충견 헌트 소위의 묘상이 있었다. 헌트는 독일산 셰퍼드로 임무는 수색대원들과 함께 북괴의 땅굴로 대원들보다 앞서 진입하여 유독가스와 부비트랩을 탐지하는 것이었는데 축축하고 어두운 땅굴에서 부비트랩을 발견하고 이를 대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돌아가다 수중 목함지뢰를 밟고 1990년 3월 4일 12:05경 그 자리에서 산화하고 말았다고 한다.
헌트의 묘와 묘상 앞에는 죽음으로 조국을 위해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인헌무공훈장을 받고 군견 최초 소위로 추서되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끝으로 제4땅굴 내부의 레일을 통해 관람한 뒤 12사단 신교대대로 이동 후 저녁 그동안 틈틈이 준비한 분대별 장기자랑이 이루어졌다.
[D+9] 7. 4 (수)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아쉬움이 밀려오는 10일차, 백골병단전적비로 발걸음을 향했다. 백골병단전적비는 한국군 최초의 유격부대인 백골병단을 기리는 전적비로 백골병단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으로 위장하여 후방 침투 후 적진을 교란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이후 우리가 이동한 곳은 통일전망대였다. 재향군인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사장님께서 친절히 시원한 음료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곳에서는 북한지역과 경치가 금강산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해금강이 있었다.
이곳에서 분대별로 모여 해금강을 배경으로 사진촬영 후 아래쪽으로 이동하여 전체사진을 찍은 뒤 마지막으로 이동한 곳에는 충혼탑이 있었다. 이 충혼탑은 분단의 아픔과 6.25 전쟁으로 희생된 순국지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참배를 한 뒤 내일 해단식이 있을 8군단 사령부로 향했다. 도착하여 저녁 식사 후 전야제를 위해 군 휴양지로 이동하였다. 이날 숙소는 그동안 지내온 곳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해가 지고 박세환 재향군인회장님을 비롯해 여러 분들이 우리의 완주를 축하해주러 오셨고, 학생대표 2명의 점화식으로 우리의 전야제는 막이 올랐다.
준비해 주신 시원한 막걸리와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즐거운 레크레이션으로 분위기는 캠프파이어의 불꽃보다 더 뜨거웠으며 비록 짧은 기간동안의 만남이었으나 함께 고생한 동료 대원들과 헤어질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대원들, 그동안 우리 때문에 고생 많았던 스텝들과 악수하고 포옹하는 대원도 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만남이 있었기에 헤어짐도 있는 법이며 여기서 인연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우리의 대장정은 끝나가지만 우리의 우정과 열정 만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D+10] 7. 5 (목)
11일차, 정말 마지막 날이다. 아침이 밝아 다시 8군단 사령부 충용관으로 이동하는 길에 ‘시작할 때는 길고 길게만 느껴지던 그날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도착 후 해단식이 시작되었고, 나는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깃발을 세우고 서있었다. 재향군인회장님, 8군단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귀빈들께서 오셨다. “부대 차렷! 회장님께 경례!” 단장님의 목소리에 따라 나는 기를 높이 세워 경례를 하였다. “향군!” 단장님의 해단신고를 끝으로 완주자 총 137명의 휴전선 155마일 대장정이 끝을 맺었다.
이제 우리는 회장님의 격려사 처럼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해쳐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이곳에 와서 정말 많은 것을 얻은 것 같다. 소중한 추억과 인연, 그리고 자신감까지 인생에서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보배를 얻었습니다.(Konas)
표수현(호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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