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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④] "도전하라, 한번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Written by. 이현석   입력 : 2012-08-04 오후 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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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fe is not a spectator sports." 나의 좌우명이다. 삶은 단순히 구경하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가슴속의 뜨거운 열정을 품고 도전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국토대장정’ 이것은 나를 포함한 137명의 완주자에게 분명 힘들고 고된 도전이었다. 자꾸만 커져가는 물집, 쌓여가는 피로, 참을 수 없는 배고픔, 집을 벗어난 불편함 등 겪어보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10박 11일 동안 휴전선 155마일 행군을 완주하였다. 도전하였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10박 11일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고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우리는 타 대장정과는 다르게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니라 천안함, GOP 철책선, 남침 땅굴 등 155마일에 걸친 수많은 곳의 답사를 통해 남북 분단의 참혹한 현실을 인식하고 국가 안보의 중요성, 애국의식을 고취시켰다는 점에 너무나 큰 의의가 있다.

 계속해서 ‘우리’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을 단장님, 부단장님, 스태프들, 모든 대원들, 특히 각 소대 분대 10명의 동료가 하나 되서 격려해주고 이끌어줘서 완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루어야할 목표, 많은 시련, 포기하지 않은 끈기와 열정,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동료들, 목표 성취 후 얻은 교훈. 인생이라는 긴 터널 속에 반드시 겪어야만 할 모든 과정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10박 11일의 대장정 속에 모두 녹아들어가 있다.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10박 11일. 그 속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휴전선,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 정말로 꼭 가고 싶습니다.”

 카페에서 모집 글을 보자마자 지원서를 열정적으로 작성하였다. 올해 1월 1박 2일 강화도 안보캠프를 통해 JSA, 도라전망대, 제 3땅굴 등을 봤고 남북한의 참혹한 분단 현실을 느꼈기 때문에 직접 보지 못한 천안함, 평화의 댐, 통일 전망대 등 많은 휴전선, 전적지를 답사하고 싶었다.

 걷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데 도보로 답사하는 대장정이라 정말로 참가 하고 싶었다. 1차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 세글자를 확인 했을 때 정말로 기뻤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2차 최종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다. 그러나 거기에 나는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작년 게시판 글을 꼼꼼히 확인하던 중 출발 전날에도 추가합격을 받았다는 글들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특히, 단장님과 부단장님은 카페 많은 글들에 손수 댓글을 달아주실 정도로 열정과 정이 넘치시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지 못하더라도 얼마나 간절하게 가고 싶은지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싶어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단장님께서 나의 열정을 좋게 보셨고 개인사정으로 불참하게 되는 인원들이 많이 생기면서 당당히 추가 합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추가 합격한 날 얼마나 기뻤는지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또한, 이 날 나는 인생의 교훈 하나를 배울 수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6.25일 무엇을 하며 보내니?

 매년 돌아오는 6.25일 과연 이 날 우리는 무엇을 하며 보내는가? 6.25 전쟁의 비참함, 남북 분단 현실, 이산가족의 아픔, 국가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부끄럽지만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이번 국토대장정 덕분에 6.25 전쟁 62주년인 '12. 6.25일의 가졌던 소중한 경험은 앞으로 6.25일을 바라보는 내 태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집에서는 TV로도 6.25 행사를 보지 않았는데 이 날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6.25 62주년 행사에 참석하였다. 햇빛이 쨍쨍한 무척 더운 날씨였지만 우리 대원들은 6.25 행사가 끝날 때 까지 경건하게 임했다. 국무총리님, 수많은 6. 25 참전 용사 분들, 6.25 전쟁을 도왔던 UN참전 용사 분들까지 자리에 함께 해주셨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6.25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고 국가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특히, 국가유공자분의 손녀딸이 읽은 편지를 들었을 때 가슴이 아려왔다.

 그렇게 행사가 끝나고 우리 142명의 국토대장정 대원들은 단장님의 신고와 함께 출정식을 가졌다. 이것이 바로 대망의 10박 11일의 첫 날이었던 것이다.

 출정식 이후 처음으로 국립 서울 현충원을 방문하였다. 현충원 안에 들어갔을 때 너무나 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이 자랑스럽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님 심정’은 오죽할까. 눈을 감고 조용히 목례하였다.

 공군 제 10전비, 애기봉 전망대 등 많은 곳을 갔지만 이 날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천안함이 있었던 해군 제2함대사였다. 직접 본 북한에 의해 폭침당한 천안함은 너무나 처참한 모습이었다. 장교분의 설명을 들은 후에 북한에 대한 분노가 더욱 치밀었다.

 같은 민족에게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게다가 증거가 명백함에도 아직도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반국가적 사람들이 존재한다니. 천안함 46용사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사단 신교대대에서 조원들과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 메모했던 한 줄을 그대로 적는다. “잊지 말자 6.25”

 내 생애 가장 시원한 화채

 4일차까지 많은 전적지를 보기 위해서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걷는 시간보다 길어서 힘들지 않았다. 날씨도 그렇게 덥지 않아서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4일차 노동당사 앞에서 화채를 먹기까지의 과정은 힘들었다.

 늘 그렇듯, 6시에 기상을 하였다. 4일차라 익숙할 만도 했지만 평소 잠이 많은 나로서는 지쳐만 갔다. 아침을 먹은 후 1시간 정도 도보 후에 신탄리역에 도착하였다. 신탄리역은 기차로 가는 최북단역이다.

 남북 분단 현실만 아니라면 열차는 강원도 북쪽에 자리한 항구도시 원산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한다. 분단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역(驛)인 것이다.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서 평소에도 사진을 많이 찍은 우리 1소대 2분대는 여기서 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단체 점프샷, 우리 조(組) 재치 덩어리 승현이의 열차 공중 부양... 더운 날씨에 바깥에서 사진 찍기에 너무 심층 했던 탓일까, 이때 잠깐 쉴 때 적었던 메모에 이렇게 적혀있다. “정말 덥다. 시원한 팥빙수 먹고 싶다.” 

 또한 이 날, 6사단 76포병대대의 전투시범과 다양한 박격포 등을 구경하였다. 우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멋있게 감상했지만 날씨가 정말 더워서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고생해주신 76포병대대 간부님들과 병사 분들께 한 번 더 감사를 전하고 싶다.

 평화 전망대, 월정리역을 거쳐서 드디어 4일차의 마지막 일정인 노동당사에 도착하였다. 노동당사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건축적 특징과 시대성을 반영한 것으로 1946년도 공산치하에서의 지역 주민들을 강제 노력 동원과 모금시켜 완공된 지상 3층의 무철근 콘크리트 건축물이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졌을지 짐작이 간다. 분위기가 음산해서 공포영화에 배경으로 많이 나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향군 여성회봉사단 분들 덕분에 아주 맛있는 화채를 먹었다. 더운 날씨에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다 먹은 화채라서 그런지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먹었던 화채 중 가장 시원했다. 거의 두 그릇을 먹었고 마치 CF모델이 된 것 마냥 맛있게 먹는 모습이 우리 1소대 2분대 팀장 광호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다. 정말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결국 입은 우의

 화채를 맛 있게 먹은 다음날 5일차에는 정말 많이 걸었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을 많이 구경해서 기억이 생생하다. 철원 8경의 하나인 임꺽정 전설이 살아 숨 쉬는 고석정, 나중에 반드시 여자 친구랑 오고 싶은 엄태웅 거리 등 주변 경치에 감탄하면서 분대원들과 농담하면서 재미있게 걸었다. 이때만 해도 날씨도 좋았기 때문에 다음날 비가 올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6일차에 폭우가 쏟아졌다. 개인적으로 비오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비 맞으면서 그렇게 많이 걸은 것은 25년간 처음이었다.

 한참, 버스에서 자다가 일어나서 어설프게 배낭을 메지 않고 우의를 입어서 다시 제대로 입느라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분대원들과 떨어져서 다른 분대 뒤에서 혼자 걸었다.

 이때가 10박 11일 행군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혼자 조용히 걸었기 때문에 최근 겪고 있는 많은 고민에 대해서 사색 해 보기에 좋았다.

 물론, 양말, 신발이 흠뻑 젖고 감기 걸린 듯 몸이 떨려서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이 날 하루만 비가 왔으므로 기억에 더 남을 수밖에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날에는 강원도 화천 말 고개를 봤었는데 말 고개를 본 것은 인상적이지 않았으나 말고개라는 이름이 신기해서 유래를 찾아보다가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임진왜란 당시에 왜장이 고개 부근의 천불암(千佛巖)을 지날 때는 말(馬)에서 내려야 한다는 말(言)을 무시하고 지나가다가 말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자 자기의 애마를 죽이고 그 피를 천불암에 뿌렸다고 한다.

 그 후 왜장과 군졸들이 말고개를 넘다가 벌을 받아 협곡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15사단 승리 부대 막사에 도착해서 흠뻑 젖은 신발을 건조기에 돌리고 개인정비를 하였다. 제목 그대로 결국 한번은 입은 우의이다. 애써 가져가서 입지 않았던 것보다 입어서 노란 병아리 컨셉으로 사진 또한 남겼으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울지마, 모두 정말 수고했어.

 단장님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그렇게 우리는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는 충용 오산 휴양소에서 캠프파이어를 마치고 단장님 헹가래를 하였다. 그리고 모두 끌어안고 서로를 격려하였다.

 10박 11일 동안 너무나 정이 많이 들어서 일까, 우리 1소대 2분대 10명의 분대원들의 눈에 모두 눈물이 고였다. 그 중 태엽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울지마, 정말 정말 다들 고생 많았어. 우리 이 우정 변치 말고 계속 보자.”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체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지형이는 끝까지 잘할 거면서 도중에 “오빠, 저 엠블 타고 싶어요.”등 한 번씩 어리광을 부렸다. 내가 기수를 주로해서 맨 앞에 섰는데 내 뒤에서 많이 웃어주고 힘을 주어서 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지혜, 유리, 현정이는 힘들었겠지만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잘해주었다. 선민이를 보면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행군 몇 일차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안타깝게 선민이는 행군 중 넘어져서 다리에 큰 물고기 모양의 멍이 생겼다.

 넘어지고 나서 엠블을 탔는데 선민이는 금방 다시 돌아와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었다. 아프기 때문에 엠블에 더 오래 머물 수도 있었을 텐데 선민이는 씩씩하게 걸었다. 여자애라서 흉한 멍에 가슴이 아팠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고 늘 그렇듯 10박 11일 동안 밝게 웃었다.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고 불만이 많던 나는 그녀 덕분에 긍정적으로 사는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조금 있으면 군대 간다고 놀려도 귀엽게 웃던 막내 재준이, 해병대 출신으로 뒤에서 힘찬 구령으로 분대의 활기를 불어넣어줬던 태엽이, 나랑 같은 나이의 친구로 항상 분대의 웃음을 도맡았던 승현이, 마지막으로 모든 일에 열정적인 책임감 있는 분대장 광호.

 잠만 많고 게을렀던 나에게 이렇게 든든한 9명의 동료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있었기에 휴전선 155마일의 대장정의 길을 완주 할 수 있었다. “아싸, 2분대.”

 마지막으로 전방 부대 사정상 늘 일정의 변동이 있었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로 뛰고  고생 많으셨던 박대수 단장님, 송필근 부단장님과 통제를 위해 싫은 소리를 했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나이의 또래로 남모르게 많은 고생을 한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정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번 5기는 영원한 5기입니다. 잊지 말고 모두 연락하고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간다, 젊음을 휘날리며.” 그리고 앞으로도 마음속으로 애국정신을 가지고 6기, 7기 등과 함께 계속해서 갈 것이다, 소중한 추억을 휘날리며.(Konas)

 이현석(단국대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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